[윤성은의 천일영화] 개미들의 호쾌한 반격, '덤머니'

  • 입력 2024-01-19 07:06  |  수정 2024-01-19 08:45  |  발행일 2024-01-19 제26면
정당하게 승리 못한 기업들
개인투자자를 덤머니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줘
호구로 무시당하던 이들의
힘과 가능성 부분엔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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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영화평론가

금융문맹이라 할지라도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 소위 '개미'들은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덤머니'(감독 크레이그 질레스피)를 관람할 필요가 있다. '덤머니'는 코로나 기간 중 월 스트리트에서 개미들이 거대 기업을 상대로 똘똘 뭉쳐 저항했던 기념비적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역설적으로 개인투자자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용어(dumb money)를 제목으로 달았다. 이는 개미보다는 '호구' 정도의 뉘앙스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게임스톱 사태는 절반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는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에서처럼 거대 기업에 다니는 고졸 직원들이 소주주들의 동의를 받아 기업의 운명을 바꿔 놓는 통쾌함까지는 없을지라도, 호구로 무시당하던 이들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올라오는 뭉클함이 대단하다.

금융 애널리스트이자 개인투자자인 '키스 길'(폴 다노)은 콘솔 비디오게임 체인점인 '게임스톱' 주식에 큰돈을 투자한다. 반대로 헤지펀드사들은 온라인 마켓이 대세가 된 지도 한참인 데다 코로나까지 겹치자 게임스톱 주가가 떨어질 거라며 공매도에 나선다. 길은 개인 방송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이들을 비판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을 설득하는데, 매일 자신의 자산을 다 공개하는 길의 미더운 태도와 확신에 대학생 커플, 게임스톱 점원, 간호사 등 많은 이들이 게임스톱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한다. 길의 영상이 인기를 얻고, 개인투자자들이 주가가 올라도 매도하지 않는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증권가도 이들을 주시하지만 게임스톱의 공매도를 주도해왔던 '멜빈 캐피털'의 '게이브 플롯킨'(세스 로건)은 계속 덤머니를 무시하다가 파산하고 만다. 길을 위시한 개인투자자들이 단합해 기업의 공매도에 맞선 이 사건은 결국 월 스트리트의 억만장자들이 구원 등판해 게임스톱의 주가를 폭락시키면서 일단락된다.

세계적 부호 몇 사람이 수많은 서민들의 희망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는 점도 황망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식거래 앱인 '로빈후드'가 개인투자자들만 게임스톱 매수를 정지시키는 초유의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관계자들 누구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개탄스럽다. 그러나 게임스톱 사태는 주식계의 프랑스혁명으로 불리며 기울어진 운동장의 실태 및 기관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반발심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공매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점검하게 하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얼마 전 개봉한 디즈니사의 100주년 기념 애니메이션, '위시'(감독 크리스 벅)도 절대 군주의 마법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봉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대에 소수 기득권층의 오만함과 비윤리적 행위를 비판하는 작품들이 유독 많이 나오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게임스톱의 주가가 다시 폭락했다는 점을 들어 저항의 결과는 늘 실패라고 비관하는 이들도 있고, 기업 가치에 대한 정확하지 못한 정보가 서민들의 비극을 낳았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덤머니'는 기업들이 정당한 방법으로는 승리하지 못했고, 그들도 앞으로 개인투자자를 덤머니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러니 패배주의에 젖어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식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서사를 따라가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덤머니'를 보다 세세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공매도와 관련된 전문용어 몇 개 정도는 알고 보기를 권한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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