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미디어의 사투리 왜곡, 오해와 진실 (1) 경상도식 애교 아닙니다 단순한 호칭입니다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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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8 07:54  |  수정 2024-03-08 07:55  |  발행일 2024-03-08 제11면
특정 지역의 문화 나타내는 언어
드라마 속 잘못된 사투리 억양은
지역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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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한때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즐겨 봤다. 특히 첫 번째 시리즈인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을 재미있게 봤다. 응칠은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를 주제로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대 부산의 분위기와 지역민들의 특성을 잘 담고 있다는 점이 재미 요소였다. 평생을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지역에 대한 애정을 자극했다. 몇 번이고 정주행을 했다.

응칠의 훌륭한 연출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뇌리에 박히는 것은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다. 그동안 많은 배우의 어설픈 사투리 연기에 신물이 나던 참이었다. 그런데 응칠에서는 지역 출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모두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경남지역 살 적에 듣던 억양 그 자체였다. 알아보니 응칠의 첫 캐스팅 조건은 경상도 사투리 구사 능력이었다고 한다. 남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서인국은 "감독님이 드라마를 기획했을 때 주인공들이 사투리를 본토 발음으로 하는 사람을 바랐다"고 했다. 서인국도 극 중 명장면·명대사로 꼽히는 "만나지 마까?"라는 대사를 오디션에서 잘 소화해내 드라마에 합류하게 됐다고 한다.

배우들이 구수한 사투리를 재현할 수 있었던 것에는 피나는 노력과 재능도 뒷받침됐겠지만 그 지역에 대한 이해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서인국은 울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여주인공 역을 맡은 정은지도 부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사투리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지 않을까. 그들에게 극 중 언어는 이방인의 언어가 아니다. 말하고 듣고 자란 이미 익숙한 언어다. 이런 덕에 응칠은 부산이란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데 충분했다. 부산에 연고를 둔 사람들에게는 친근함과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연고를 두지 않은 이들에게는 부산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를 높였다. 그렇게 응칠은 '응답하라 신드롬'을 쏘아 올린 첫 신호탄이 됐다.

이처럼 잘 쓴 사투리는 극의 현장감을 높이고 흥행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모 배우가 경상도 인물 역을 맡았는데, 부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로 비판을 받았다. 몰입감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배우는 고향이 전라도라 경상도 사투리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그 지역에 연고가 없기에 언어 등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낮아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전라도와 연이 없기에 호남 방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이해가 간다. 아무리 배우라도 과하게 비판받는 일은 안타깝다.

그렇지만 미디어에서 사투리를 잘 다루는 것은 중요하다. 사투리는 특정 지역의 문화와 지역민들을 나타내는 고유하고 독특한 언어인데, 미디어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잘못된 사투리 재현은 그 지역 문화에 대한 오해를 부르기 쉽기 때문이다. 일례로 경상도 말투는 '무뚝뚝함'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자, 아나' '어어어' 등처럼 건조하게 던지는 표현이 많다.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과하게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오빠야'가 대표적이다. 실제 이 말은 여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근한 남성에게 가볍게 쓰는 말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경상도 여성을 수동적으로 나타내거나 애교 많은 모습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쓰일 때가 있다. 이런 탓에 경상도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 중에는 '오빠야'를 단순한 호칭이 아닌 '여성의 애교 표현'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다.

언어의 속성 중 '사회성'이란 것이 있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한다. 언어와 사회는 동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미디어가 사투리를 왜곡해 재현하는 현상도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있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여러 사례와 다각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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