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부산 기장군 신평리 신평소공원, 우뚝한 돛대·반짝이는 조타륜…배 조형물 전망대 금방이라도 출항할 듯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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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8 08:10  |  수정 2024-03-08 08:11  |  발행일 2024-03-08 제15면
바닷가 벼랑길 따라 소공원 조성
'윷판대' 바위엔 왜장 물리친 전설
인근 백악기 이천리층 암석 신비
9천만년전 공룡발자국 화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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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리 남쪽 끝은 암석지대로 산책로와 벤치, 정자, 야외무대,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 등을 갖춘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해안 끝에 아주 작은 몽돌 해변도 있다.

신평리(新平里) 바닷가 마을 앞길이 아주 넓다. 아예 운동장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빽빽하다. 아예 주차장이다. 마을은 작고, 대지의 기울기는 미미하고, 마을 뒤로 멀리 산도 낮다. 땅이 마을 이름의 뜻을 알려준다. 신평은 평탄한 들 가운데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다. 고종 때 신평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지명을 한자화하기 전에는 새들, 새버든, 새버들, 새각단이라고도 불렀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센 편이지만 마을은 평온해 보인다. 마을의 남쪽 끝은 암석지대다. 카페와 곰장어 식당 사이 고샅길을 지나 벼랑에 오른다. 철썩, 부서지는 파도가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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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머리 전망대와 알 모양의 조형물. 전망대는 길이 18.86m, 폭이 12m인 배다. 돛대의 높이는 15.5m로 곧 출항할 기세다.

◆신평소공원

벼랑의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고, 길 따라 벤치와 정자, 운동기구, 야외무대,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 일대를 신평소공원이라 한다. 공원은 바다와 좁은 도로 사이에 압도적이지도 않고 실망스럽지도 않은 규모와 풍광으로 자리한다. 도롯가에는 식당과 카페들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반투명한 창속에 사람들의 형상이 빼곡하다.

뱃머리 전망대로 오른다. 길이는 18.86m, 폭이 12m인 배다. 돛대의 높이는 15.5m로 곧 출항할 기세다. 공원이 준공된 것은 2010년 봄이다. 준공 표지석에 공원녹지계장과 지방시설서기가 함께 설계, 부산의 건설업체가 시공, 농림과장과 또 다른 공원녹지계장이 준공검사를 했다고 새겨져 있다. 한 지역 사람들의 합작품이다. 배의 이름은 없지만, 오늘은 2024년의 봄, 14년 된 조타륜은 반짝반짝하다. 뱃머리 옆에 툭툭 놓여있는 새알 같은 하얀 조형물도 생채기 하나 없이 말갛다. 역시 이름은 없다. 쓰레기도 하나 없다. 잘 관리한다는 뜻이겠다. 이곳에서 종종 웨딩 촬영을 한단다.

산책로 초입에 윷판대라는 바위가 있다는데, 안내판만 보일 뿐 실물을 찾지 못하겠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우리나라 장수와 왜나라 장수가 맞붙었다고 한다. 몇 날을 겨루었지만 승부가 나지 않자 윷놀이로 결판을 짓기로 했단다. 칼로 바위에 윷판을 새겨 종일 겨루어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왜장은 바다를 향해 서서 윷판이 잘 보이도록 더욱 깊고 굵게 새겼는데, 그때 우리 장수가 왜장을 바다로 뻥 차버렸다고 한다. 왜장을 바다로 던져버린(擲) 대(臺)라고 하여 척사대(擲柶臺)라고도 한다. 벼랑의 윷판대 안내판 앞에서 줄곧 저 아래 바위만 열심히 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서 있던 그 벼랑이 바로 척사대였던 듯싶다.

줄곧 열심히 보았던 바위들은 신평소공원에서 가장 멋있고 신비로운 요소다. 이 일대의 바위들에는 퇴적층이 아주 뚜렷이 나타나 있는데 후기 백악기 이천리층이라 불린다. 경상분지의 동남부다. 뱃머리 앞쪽의 암석은 이천리층 중 가장 하부에 해당하는 퇴적단면을 보여준다. 아래에서부터 습윤, 건조, 습윤한 기후변화가 나타나는데 건조한 기후였던 중층부에서 공룡 발자국과 침엽수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곰장어 가게가 올라앉아있는 벼랑은 이천리층의 가장 상부에 해당하는 퇴적단면이다. 영암과 사암, 이암층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습윤한 기후가 지배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야외무대 앞쪽의 암석은 하층부에서는 습윤한 기후가, 중상부로 갈수록 건조한 기후가 지배적인 호수 주변부의 퇴적모습이 나타난다. 이곳의 건조한 시기 퇴적층에서 각종 공룡 및 특이형태의 척추동물, 새의 발자국 화석과 식물화석, 공룡 뼈 화석이 발견되었다. 그러고 보니 새알 같던 조형물은 공룡의 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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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리 공룡발자국. 용각류의 보행렬 화석으로 작은 것은 앞발, 큰 것은 뒷발이다. 추정되는 지층의 나이는 대략 9천만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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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리 암석지대의 바위에는 퇴적층이 아주 뚜렷이 나타나는데 후기 백악기 이천리층이라 불린다. 당시의 다양한 지질과 생물기록들이 압축되어 있다.

◆백악기의 공룡발자국

야외무대의 축대 아래에 신평리 공룡발자국과 화석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공룡발자국은 2020년 3월에 발견된 것으로 영남지방의 공룡 발자국 중 가장 늦은 시기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닷가로 내려선다. 거친 파도에 움찔한다. 그러나 파도는 거칠게 바위를 때리고는 저만 부서지기를 반복하고, 부글거리는 거품들이 바위 안쪽에 갇혀 풀풀 날린다. 공룡 발자국이 여럿 있다는데 하나의 보행렬 만이 확연하다. 공룡은 바위 면을 기준으로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걸어갔다. 20㎝ 안팎 크기의 발자국이 10여 개, 걸음새는 쿵---쿵이 아니라 쿵, 쿵, 쿵, 쿵, 제법 경쾌하고 재다. 발견된 보행렬은 3점으로 두 발로 걷는 조각류의 것이 2점, 목이 긴 용각류의 것이 1점 확인됐다고 한다. 추정되는 지층의 나이는 대략 9천만년 정도다.

백악기 때 기장군 일대에는 건조한 기후의 영향을 받는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호수는 공룡을 비롯한 동물들의 서식지였고 물과 먹이를 제공하는 공급처였다. 토양은 끈적끈적한 성질의 흙으로 이루어져 있어 공룡이 거대한 몸으로 쿵쿵 걸을 때면 발자국이 그대로 남곤 했다. 발자국은 대부분 금세 지워졌지만 드물게는 다른 흙이나 암석, 용암 등에 덮여 굳어졌다. 굳어진 발자국은 오랜 세월 동안 지층 속에서 변성작용을 거쳐 지금과 같은 형태의 화석이 되었다고 한다. 초식공룡이 먹이로 삼았을 식물의 흔적도 곳곳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공룡화석과 먹이인 식물화석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국내에서 드문 사례다. 물결무늬도 발견되는데, 호숫가에 물이 차올랐다가 빠지는 잔물결이 반복되면서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눈 밝은 사람은 처트(규질암)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평리층에 콕콕 박혀 있는 붉은 색의 암석인데, 선캄브리아시대 이후 바다에 떠다니며 사는 원생동물(방산충)이 무수히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이 암석의 모체는 한반도가 아닌 일본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처트는 한반도의 공룡 시대에 동해가 없었다는 증거로 꼽힌다. 그때는 한반도와 일본이 연결되어 있었다. 백악기 이곳에 발자국을 남긴 공룡들, 이곳에 살았던 식물들, 잔물결 일던 호수는 저 바다를 보지 못했다. 무섭게 파도치는 바다, 성난 거품을 일으켰다가 풀풀 날려버리는 바다, 저 깊고 넓은 바다를 그들은 보지 못했다. 괜히 으쓱해진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간다. 대감분기점에서 600번 부산외곽순환도로 기장 방향으로 가다 기장IC로 나긴 뒤 기장일광 톨게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톨게이트 앞 사거리에서 온산, 서생방향 31번 국도를 타고 약 3.2㎞ 직진, 청광리, 동백리, 신평리 방향으로 나가 우회전해 직진, 동백교차로에서 왼쪽 동백리 방향으로 간다. 동백리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북향하면 바로 윗마을이 신평리다. 동백리 지나 신평리가 시작되는 언덕바지에 신평소공원이 위치한다. 공원 주차장은 5대가량 규모로 협소하다. 길가에 주차할 공간도 여의치 않다. 공원 주차장에서 약 130m 더 직진해 신평리 마을로 들어서면 바닷가에 공터가 아주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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