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피 같은 수액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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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2 03:33  |  수정 2024-03-12 06:57  |  발행일 2024-03-12 제23면

고로쇠나무·신나무·거제수나무 등의 수액(樹液) 채취가 한창일 때다. 이들 수액은 하나같이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뇨병·신경통 등 만성질환 뿐만 아니라 술독을 풀고 위장을 튼튼히 하는데도 효험이 있단다.

이른 봄에 수액을 채취당하는 나무들은 얼리버드족(Early bird 族), 아니 얼리웜족이다. 이들은 땅이 풀리자마자 뿌리로 땅속의 물을 흡수하고 이 것을 목부의 도관을 통해 가지로 보낸다. 이 때 물의 흡수는 삼투압에 의한 이동이다. 겨울 동안 뿌리는 탄수화물을 비롯해 많은 영양소를 저장하고 있어서 농도가 매우 높다. 농도 차이로 땅속의 물을 빨아 들인다. 빨아들인 물은 어떻게 상승할까? 나무에 잎이 있을 때는 잎 표면에서 수분이 증발하는 힘을 원동력으로 하지만 이 때는 잎이 나오기 전이다. 수목생리학자들은 물이 상승하는 에너지를 수목 내부의 물에 녹아있는 이산화탄소에서 찾는다. 낮에 햇볕을 받아 나무의 체온이 올라가면 이산화탄소가 팽창, 압력이 높아 지면서 물을 상승시킨다는 것. 상승하는 물 속에는 겨우내 저장해 놓은 탄수화물과 질소·인·칼륨·마그네슘 등 나무의 생존에 필요한 무기물이 들어 있다. 나무는 새잎과 꽃을 만들기 위해 이 물질들을 몸 곳곳에 보낸다. 피와 같은 것이다.

"식물을 가리키며 '이게 몸에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듣는 식물은 얼마나 무섭고 기분 나쁘겠습니까?" 수 년 전 식물 관련 강좌를 들을 때 첫 번째 실습지인 달성공원에서 담당 교수가 한 말이다. 살아 있는 나무의 피부를 뚫고 호스를 박아 수액을 채취하는 촬영물을 볼 때 마다 되살아 나는 말이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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