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3월의 설국 울릉도 여행(1)긴 바다끝、雪國이 있었다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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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5 07:30  |  수정 2024-03-15 07:48  |  발행일 2024-03-15 제11면
동해 건너편 눈 덮인 신비의 섬
'3월의 설국' 울릉도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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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분지 전망대에서 본 울릉도 나리분지 전경. 마을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

일본 문학사상 중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이 아닐까 싶다. 책의 한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열차 속에서 보이는 눈 덮인 마을이 그려졌다. 다 읽고 나서도 이 서두 문구로 모든 배경이 설명 가능했다.

이 책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소설 '설국'이다. 1968년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됐다. 뛰어난 감각적인 문체와 인물들의 감정 묘사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특히 자연 풍경과 풍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정교하게 담겼는데, 작가는 작품의 모티프를 주로 풍경에서 얻어 12년에 걸친 기간 다듬었다고 한다.

설국의 배경은 일본 니가타현이다. 니가타현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터널을 통해 도쿄에서 니가타현을 세 번 방문한다. 첫 문장의 '국경의 긴 터널'에서 '국경'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나라 간의 경계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지역 간의 경계란 의미로도 쓴다. 여기서도 지방의 경계를 말한다. 따라서 터널은 이쪽 세계(도쿄)와 저쪽 세계(설국·니가타현)의 경계를 가르는 역할을 하며 일상과 비현실의 세계, 도시화와 전통의 세계를 구분한다. 시마무라가 터널을 빠져나와 설국에 들어설 때 차창에 비친 소녀의 모습과 겨울 풍경은 이 소설이 그려내는 미(美)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니가타현은 설국으로 표현돼 눈 덮인 신비로운 마을로 묘사된다. 눈으로 둘러싸인 눈앞의 정경, 코가 빨개진 시골 사람들, 순백색의 순수함…. 이 모든 묘사를 관통한 표현이 책의 첫 문장이다. 이 책에 대해 많은 사람이 눈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라 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런 강렬한 힘으로 설국의 첫 문장은 현재도 끊임없이 패러디되고 있다. 오늘처럼.

이번 위클리포유에서도 서두에 설국의 첫 문장을 인용했다. 3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아직 설국인 신비로운 곳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다녀온 울릉도다. 포항에서 긴 바다를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약 7시간 동안 크루즈를 탄 뒤 섬에 도착하니 한겨울의 추위가 느껴졌다.

차를 타고 해안길을 따라 달리니 아직 추운 날씨로 높은 파도도 볼 수 있었다. 억센 파도로 물방울이 차창에 튀기도 했다. 짙은 푸른색의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니 강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가만히 놔주지 않았다. 그렇게 'B급'으로 시작된 사진들을 간직하며 설국 여행을 시작했다.

식당에 들어가면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서 오이소"라는 구수한 경북 사투리가 손님을 반겨준다. 인기 있는 맛집들의 메뉴는 이곳의 특산물인 오징어와 부지깽이·명이나물 등의 산나물. 몸에 좋은 건 꼭 챙겨 먹는다는 한국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음식들이다.

전국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답게 여행하는 내내 눈이 내렸다. 눈으로 인한 기상 악화로 출입이 통제된 곳들이 많았다. 최대 다설지인 나리분지는 3월에도 일본 삿포로 못지않게 많은 눈이 쌓여 있었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마을 전체가 설경이었다. 아름다운 장관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믿기지 않는 풍경에 다른 나라에 온 것만 같았다.

봄이 오던 육지와 달리 눈의 고장이었던 울릉도. 비현실적인 눈의 고장 설국. 이번 주 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는 '3월의 설국(雪國)' 울릉도 여행기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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