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시집 '마카다' 펴낸 김계희씨(2)음식하다 깃든 사색, 詩로 풀어…"마카다 잘 사는 세상 만들고 싶어서예"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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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5 07:47  |  수정 2024-04-05 07:51  |  발행일 2024-04-05 제12면
편지 자주 쓰다 글쓰기에 흥미…시 공부는 따로 해본 적 없어
휴대전화 저장한 글 지인에 보내자 '재밌다' '울컥했다' 호평
신선하고 구수한 표현 압권…"사투리로 또 시집 써보고 싶어"
시집 '마카다' 저자 김계희씨가 시집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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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 이후 글을 따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대신 젊을 때부터 편지 쓰기를 좋아했어요. 객지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고향에 있는 부모님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편지를 참 많이 썼습니다."

40년간 공사현장 식당(일본어 '함바')에서 일한 할머니가 첫 시집을 냈다. 경북 안동 출신인 김계희씨는 칠순을 맞아 지난달 23일 시집 '마카다'를 출판했는데, 1970년대 중학교 졸업 이후 시(詩)는 물론 글공부도 특별히 한 적이 없다. 그런 김씨가 시를 쓰게 된 건 글쓰기에 대한 애착이다. 그는 젊을 적부터 가족과 지인들에게 편지를 즐겨 썼는데, 이런 습관이 글쓰기에 대한 흥미로도 이어졌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나서부터는 휴대전화에 여러 이야기를 틈틈이 기록했다. 어릴 적 추억부터 최근 있었던 일, 사물과 자연을 보며 든 생각까지. 소재가 다양하다며 운을 떼니 그는 남들보다 생각이 많은 편이라며 살갑게 웃었다. "원래 사색을 즐겨 해요.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죽는 건가…이런 생각을 특히 많이 해요. 함바집에서 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음식 하나를 봐도 인생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서 글로 옮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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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시집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건 주변인들의 칭찬으로 시작됐다. 휴대전화에 기록해둔 글들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낼 때마다 '재밌다' '울컥했다' '구수하다' 등의 답장이 이어지면서 시 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기존에 쓴 짧은 구절들을 다듬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장문으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그때부터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후 언어유희 등 시적 요소를 추가해 글을 쓰면서 내 글들을 시집으로 내보자 생각했죠."

김씨의 시집 '마카다'는 그의 한평생 추억이 담긴 이야기다. 총 99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시집은 가족, 음식, 고향, 인생, 자화상으로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는데, 어릴 적 가족과의 추억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가 대다수다. 그런 만큼 1950~1970년대 살아온 사람들이 공감할 요소가 많다. 김씨는 안동 길안면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가족에 대한 시들은 궁핍한 시절 시골에서의 정겨운 생활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 등엔 언제나/ 찌든 땀 냄새/ 풀 냄새/ 볏짚 냄새'(지게) '허겁지겁 산길 내려와/ 풀숲에 주저앉아 펼쳤더니/ 고추 된장에 버무린 주먹밥 서너 덩이/ 군침이 마중물이 되어/ 게 눈 감추듯 먹었다'(나무꾼과 도시락).

김씨의 에너지 넘치는 성격이 시에도 고스란히 담겨 신선하고 구수한 표현도 많다. 김씨는 매년 봄이면 고향으로 봄나물인 두릅을 따러 가는데, 몇 년 전 무리하게 채취를 시도하다 손목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일화를 추억하며 나물을 면밀히 관찰한 작품이 '두릅'이다. '독한 놈/ 몸뚱이에 가시로 무장하고/ 살아야 한다며/ 봄볕 따사로운 날/ 전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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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희씨의 휴대전화 메모장. 메모장에 기록한 이야기들이 모여 시집 '마카다'가 나왔다.

대표 시이자 표제인 '마카다'는 '모두'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김씨가 대표 시를 '마카다'로 정한 이유는 타인에 대한 애정에서부터다. 개인주의가 심화된 세상이지만 혼자 잘 사는 것보다 가족, 친구, 지인들과 어울려 모두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가치관이 담겨 있다. 실제 김씨는 모임에 나가면 '분위기 메이커'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별명이다.

김씨가 '함께'의 가치를 배우게 된 건 그의 언니로부터다. 김씨의 언니는 칠남매의 맏이로서 어릴 적부터 그의 동생들을 반듯하게 키웠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그 빈자리까지 채울 만큼 넉넉함을 실천했다고 한다. '마카다'도 그런 언니에 대한 김씨의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한 시다. 그는 눈물을 훔치며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희 집은 어릴 때부터 형제들 간 우애가 남달랐는데 언니의 역할이 컸어요. 동생들과 돈독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늘 말하면서 동생들을 잘 챙겨줬죠. 그랬던 언니가 지금 아픈 상황이에요. 옛날 일은 기억하지만 당장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해요. 언니에게 이렇게 고마움이 큰데…." 그는 인터뷰 중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의 향후 계획은 경상도 방언이 담긴 시집을 내는 것이다. 그는 "마카다로 시집을 내고 나서 경상도 방언으로 시집을 구성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언 중에는 재미있고 특이한 말들이 참 많은데, 지역 사람들에겐 친근하고 타지인들에겐 흥미로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신춘문예에 도전할 거란 목표도 살며시 내비쳤다. 신춘문예는 일간 신문사가 문학 작품을 공개 모집해 신인 작가를 등단시키는 제도다. 김씨는 시집을 낸 후 시에 대한 흥미가 커져 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찾아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욕심이 생겨 신춘문예에도 도전해보려 해요. 아직 시를 전문적으로 쓰진 못 하지만, 문학을 더 공부하고 사색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글=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사진=B-stor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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