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 사이] 지금이 그 시점 아닐까?

  •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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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22 08:10  |  수정 2024-04-22 08:33  |  발행일 2024-04-22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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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서울에서 아는 분이 전화했다. 큰아이가 초등 5학년인데 의대에 보내고 싶어 지방으로 이사 갈 생각이 있는데 확신이 안 선다고 했다. 지방 의대 정원이 늘어나고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 뽑으라고 한 방침 때문이다. 그분은 살아보니 안정된 직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지금으로서는 의사가 제일 좋은 직업인 것 같다고 했다. 왜 벌써 지방 이주를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지역인재전형은 중학교 때부터 다녀야 한다는 말이 있어 그렇다고 했다. 이야기 끝에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키워야 할지 도무지 감을 못 잡겠다고 했다.

로봇이 AI라는 강력한 두뇌를 장착하면서 영화 속 터미네이터가 급속히 현실화하고 있다. 이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고, 인공두뇌를 가진 휴머노이드가 육체노동과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의사가 하는 진단과 치료 과정 중 많은 부분도 AI와 휴머노이드가 담당할 것이다. 최근 미국 빅테크 CEO들이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AI) 등장 시기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인간 수준의 인식을 가진 AGI(범용인공지능)를 가장 똑똑한 인간보다 더 똑똑한 AI라고 정의한다면, 아마도 내년 아니면 그다음 해 그런 것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AI 붐 선두 주자인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CEO는 "그런 AI가 나오려면 5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어쨌든 조만간 인간과 비슷하거나 인간을 능가하는 AI가 나올 것이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현재 안정적인 고소득 직종이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최근 AI 개발자조차도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앞으로 인류는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인간'과 '과학기술이 낳은 성과물과 빅데이터에 좌우되고 조정되는 인간'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절대다수의 사람은 새로운 기술과 빅데이터의 노예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라는 생물학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과학기술의 발달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창의력'과 '상상력'이 강력한 생존 수단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창의력'과 '상상력'이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냥 초원을 자유롭게 뛰어다닌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이룩한 지적 성과를 두루 섭렵하면서 '통찰력과 직관력', 그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초전도체에서의 터널 효과'를 처음 발견한 공로로 197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일본의 에사키 레오나 교수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유형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퍼스트 러너(first runner)는 창조적 실패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발견에 전념하는 사람이다. 세컨드 러너(second runner)는 전례나 선례, 관례, 본보기 같은 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지금 의대에 목숨을 거는 학생과 학부모는 세컨드 러너다. 그는 "세컨드 러너는 도전과 모험을 극도로 자제한다"고 했다. 변화가 느리던 시절에는 전례나 선례에 따라 안전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었다.

세계영재학회 회장을 지낸 독일의 클라우스 우어반 교수는 21세기 격변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 학생들의 선행학습이 '반복 연습(dry drill)'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창의성은 물론 추후 학교 공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이 계산해 주고 답을 찾아주는 시대엔 단편적 지식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독창성과 호기심, 지식에 대한 욕구 등을 키울 수 있는 환경 제공을 강조했다. 우어반 교수는 "정답을 찾아야 한다. 순서대로 해라. 그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규칙을 따라라. 현실적으로 돼라. 생각 없이 마구 놀지 마라. 어리석게 굴지 마라. 실수를 하지 마라. 너는 천재가 아니고 아인슈타인(피카소)도 아니다." 이런 말들이 창의성을 말살한다고 했다.

창의적 사고란 같은 대상에서 남이 보지 못한 것을 찾아내고,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무리 지어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할 때도 많겠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과감하게 남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모험심과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지금이 그 시점일 수 있다.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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