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고는 없다···재난, 언제까지 과실로 치부할 텐가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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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26  |  수정 2024-07-26 07:59  |  발행일 2024-07-26 제16면
방대한 문헌데이터 분석·현장취재

지난 한 세기간 사고의 역사 추적

실수 탓 책임회피 사회시스템 지적

[신간] 사고는 없다···재난, 언제까지 과실로 치부할 텐가
지난달 25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간] 사고는 없다···재난, 언제까지 과실로 치부할 텐가
제시 싱어 지음/김승진 옮김/위즈덤하우스/456쪽/2만3천원

지난달 24일 경기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공장에선 화재로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역대 최악의 공장 화재로 기록됐다. 이 참사는 많은 사상자가 나온 것은 물론이고, 위험물 보관 및 취급에 관한 규제 불이행 등 안전 문제가 취약했던 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화재로 숨진 23명 가운데 20명이 중국, 라오스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여서 산업 현장의 불평등도 드러났다.

이러한 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일까. 아니면 예방이 가능한 일일까. '사고는 없다'는 교통사고부터 산업재해, 재난 참사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고와 지난 한 세기 동안 일어난 사고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저널리스트이자 안전 시스템·부상 예방·위해 감소 문제 전문가, 안전한 거리를 위해 싸워온 활동가인 저자는 '사고'라는 말이 어떤 죽음과 손상을 감추고 결국 그것이 반복되게 만드는 것에 관해 이 책에서 밝히고자 했다.

저자는 2006년 미국에서 화제가 된 자전거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고 사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사고 및 위험에 관한 문헌과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고속도로부터 원자력 발전소까지 다양한 사고 현장의 사례를 취재했다. 또 관련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 활동가, 사고피해자 및 유가족과 가해자를 인터뷰해 책에 담았다.

책에선 과실, 조건, 위험, 규모, 낙인 등 10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논의를 해나간다. 저자는 사고의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인적 과실(실수)'과 '위험한 조건(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 사고 현장에서 우리는 사고를 유발하는 환경보다는 인적 과실을 탓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봐왔다. 책에서 소개되는 미국의 사례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1910년대 미국 최초의 노동자배상법이 통과되자 고용주나 사업장 소유주는 그에 맞서 '사고 유발 경향성이 있는 노동자'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장치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려 했던 자동차 제조사들은 '무단횡단자'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운전석의 미치광이'를 비난하기도 했다.

저자는 199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햄릿의 한 육가공 공장에서 노동자 25명이 사망한 화재 사고에서도 '인적 과실설'이 시스템의 책임 면피용으로 쓰였다는 점을 짚는다. 대부분이 흑인 여성인 노동자 25명이 사망한 이 화재를 통해 피해자의 정체성에 따라 사고 이후 대응과 비난의 방향이 어떻게 달라지고, 나아가 인종·계급, 성별에 대한 낙인이 사고에 대한 해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책에선 사고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일에 기여한 이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한 비행기 추락사고를 계기로 사고와 부상의 원리를 연구해 훗날 사상을 최소화하는 안전벨트와 운전대를 고안한 휴 디헤이븐, '사고'로 치부되는 일상적인 재해를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배상법의 기초가 되는 뉴욕주의 개혁법을 처음 발효시킨 저널리스트이자 사회학자인 크리스털 이스트먼 등이다.

책에서 저자는 "사고는 없다"고 말한다. 사고 대부분이 무작위로 닥치는 게 아니라 예측과 예방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책을 쓰는 내내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사고이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했다고 한다. 누구나 이 두려움 때문에 '사고'를 과거로 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남의 탓 남의 불행으로 여기며 나와 분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에 저자는 오히려 질문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무언가가 사고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한가?"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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