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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
한 달 전 나는 경주에 있었다. 겨울이 긴 캐나다에 살며 짧은 봄이 가장 아쉬웠는데 오랜만에 찾은 봄의 경주는 그야말로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날씨는 눈부시게 화창했고 보문호 주변 7㎞를 달리면서 연초록의 잎과 나무들, 공기 속 봄냄새에 가슴 깊은 곳에서 기쁨과 감사가 솟아오르며 눈물이 났다. 다른 날은 80대 아빠와 대구 이월드 튤립축제에 가서 알록달록 선명한 빛깔의 꽃밭에서 그네도 타고 회전목마도 탔다. 비오던 어느 날은 백화점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들을 만나고 동촌유원지 뷰맛집 식사 후 비냄새 맞으며 산책도 했다. 출국 하루 전날은 대구 산불 뉴스에 우리 동네까지 매캐한 연기냄새가 밀려와 걱정도 했다. 캐나다에서도 산불이 나지만 한국은 더 좁아서인지 다른 곳의 재난이 내 삶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 느낌이었다.
5월은 캐나다에서 아시아 문화유산의 달이다. 내가 공동의장으로 준비한 5월1일 오프닝 패널토론 초청연사 중 밴쿠버에서 오신 우리 대학 동문 한인이 계셔서 만나뵈었다. 90세에 아직도 마라톤을 뛰신다는 은퇴한 교수님은 미소가 따뜻하고 겸손하셨다. 1960년대 가난한 유학생으로 캐나다에 오신 삶의 스토리부터, 두 개의 행사를 하루에 소화해 내시며 마라톤 연습까지 하시는 모습은 영감과 감동을 주었다.
지난 주에는 학회 기조연설자로 초청받아 차로 2시간쯤 떨어진 거리의 도시 무스조(Moose Jaw)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인구가 3만5천명 정도라는 무스조에 일식-한식 레스토랑이 2개나 있음이 신기했다. 학회는 무스조에서 10여분 거리의 Caronport라는 마을의 작은 기독교 사립대학 캠퍼스에서 열렸는데, 외국인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곳에서 외국어로서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이 작지만 아주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영국 출신의 교수 부부가 20여년 전 정착하여 설립하고 가꾸어 온 프로그램이라는데 학생들의 실력과 인성이 뛰어났고 강한 공동체 의식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감동이 컸다. 돌아오는 길, 갓 대학을 졸업했다기엔 매우 성숙한 영혼을 가진 두 명의 새로 만난 교사들과의 로드 트립과 광활한 캐나다의 자연 속 시골길 풍경, 그 노을의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한국은 대선이 이제 한 달 조금 못 되게 남았다. 짧은 시간 같지만 또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후보자들도 유권자들도 기존의 정보를 자동처리하는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의식적으로 새롭게 경험하고 판단하여 지금 한국에 꼭 필요한 마음과 자질을 가진 리더를 잘 선택하면 좋겠다.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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