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곰 ‘19禁 테드’ 광해·간첩 잡을 수 있을까
한가위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덩달아 몸도 마음도 들뜰 법하지만 예년에 비해 유독 짧아진 연휴에다 그마저도 주말과 겹친 탓에 올해는 차분한 추석맞이가 될 듯하다. 여행을 떠나기도 그렇고, 집에만 있자니 가족들의 눈치도 보인다. 이럴 땐 영화가 좋은 해결책이다. 그런 예비 관객들을 위해 제작·배급사들은 개봉날짜까지 조정해가며 일찌감치 판을 벌였다. 특히 올 추석 극장가는 최근의 활황을 말해주듯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무장한 한국 영화들의 각축전이 예상된다. 2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위시해, ‘점쟁이들’ ‘간첩’ 등이 그 뒤를 바짝 쫓아가고 있는 양상. 상대적으로 해외영화들은 기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하지만 리암 니슨의 첫 방한으로 분위기를 띄운 ‘테이큰 2’와 ‘레지던트 이블 5:최후의 심판’ ‘본 레거시’ 등은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이 기회를 이용해 일전불사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니 2012년 추석 극장가가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광해·간첩·점쟁이들
피에타·공모자들…
한국영화 장르 다양
명절 대목 이끌 듯
외화는 액션 대세 속
19禁멜로 주목할 만…
테이큰2 세계 첫 개봉
‘천재사기꾼 돈’은
인도식 액션스릴러물
메리다·늑대아이 등
가족용 애니도 눈길
◆ “한국영화 흥행은 우리가 잇는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추석 극장가의 유일한 사극이다. 당대와 현대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왕 광해를 다룬 최초의 영화이자 실제 역사에 신선한 발상을 더한 팩션물로, 영화는 왕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천민이 왕이 되어가는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와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1인 2역을 담당한 이병헌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판단력을 잃고 폭군이 되어버린 예민한 광해와 만담꾼 특유의 넉살과 소탈함을 지닌 하선의 캐릭터는 이병헌의 섬세하고 탄탄한 연기력이 더해져 완연히 다른 존재감의 상반된 두 캐릭터로 완성됐다.
‘간첩’은 ‘남북 관계가 원만해진 지금 간첩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간첩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과 현실적인 고민을 보여주며 휴머니즘까지 녹여내고자 했던 것. “간첩들도 우리와 똑같이 고민하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우민호 감독의 연출 의도처럼 영화는 실제 우리 주위에 있는 평범한 이웃·동료·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생활형 간첩들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포개 놓았다. 후반부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총격신은 또 다른 볼거리.
‘시실리 2㎞’(2004) ‘차우’(2009)를 통해 한국형 ‘코믹호러’라는 신 장르를 탄생시킨 신정원 감독의 ‘점쟁이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신들린 마을 울진리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양한 재능을 지닌 점쟁이들이 힘을 합쳐 실마리를 풀어간다는 내용. 영화는 무서울 때 확실히 무섭고 웃길 때 확실히 웃기는 신정원 감독의 특장을 제대로 살려냈다. 그만큼 관객들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수축과 이완의 절묘한 조화에 절로 웃음을 터뜨리게 될 듯하다.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피에타’는 김기덕 감독 작품 중 11년 전 개봉했던 ‘나쁜 남자’ 이후 처음으로 전국 50만 관객(25일 현재)을 돌파했다. ‘피에타’는 악마 같은 남자 강도 앞에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가 찾아와 두 남녀가 겪게 되는 혼란, 그리고 점차 드러나는 잔인한 비밀을 그린다. 여전히 희망보다는 절망에 천착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을 다루지만, 예전에 비해 좀 더 대중적인 접근방식으로 대다수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함과 동시에 김기덕 감독 고유의 색깔도 고스란히 녹여냈다.
‘공모자들’도 개봉 4주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꾸준한 관객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 전반 깊숙이 뿌리내린 장기밀매의 충격적 진실을 전하고 있는 ‘공모자들’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행되어 온 장기밀매를 통해 누구나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각인시키며 묘한 섬뜩함을 선사한다.
◆ “화끈한 액션물 당기지 않으세요”
미국보다 한 주 앞서, 전 세계 최초 국내 개봉한 ‘테이큰 2’는 딸을 납치한 인신매매범을 향한 분노를 화려한 액션으로 승화시킨 ‘테이큰’의 4년 후 이야기다. 가족의 목숨을 빼앗은 브라이언(리암 니슨)에게 인신매매범 일당은 이를 똑같이 되갚아주기 위해 자신들의 조직력을 총동원, 그와 가족을 위협한다. 파리에서 이스탄불로 무대를 옮긴 ‘테이큰 2’는 업그레이드된 스케일과 액션을 자랑한다. 영화의 방점 역시 이스탄불 구석구석을 누비는 현란한 카 체이싱과 군더더기 없는 논스톱 액션에 찍혀 있다.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화려한 볼거리를 원한다면 강추다.
‘본 레거시’ 역시 ‘본 시리즈’의 신화를 잇는 액션물이다. 지난 세 편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한 ‘본 얼티메이텀’과 동시간 대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인 애론 크로스(제레미 레너)는 제이슨 본과 달리 CIA가 아닌 미(美) 국방부에 소속된 아웃컴 프로그램의 최정예 요원. 국가를 위해 스스로를 헌신해왔던 만큼 자신을 제거하려는 국가 조직에 대해 더 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들을 옥죄게 된다. ‘본 시리즈’ 특유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리얼한 액션을 앞세운 토니 길로이 감독은 이를 통해 보다 정교하고 차가우면서도 인간적인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인기 비디오 게임 ‘바이오 하자드’를 원작으로 한 ‘레지던트 이블’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블록버스터 시리즈. ‘레지던트 이블’ 탄생의 산파격인 폴 W.S. 앤더슨이 메가폰을 잡은 ‘레지던트 이블 5’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빠진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앨리스(밀라 요보비치)가 옛 동료들과 힘을 합쳐 악의 화신인 엄브렐라에 맞서 전쟁을 벌이게 된다는 내용. 탄생 10주년에 걸맞게 풀 3D로 촬영된 ‘레지던트 이블 5’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이 두드러진다. 마치 커다란 비디오 게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홍콩 영화 ‘나이트폴’ 역시 하드보일드 액션을 표방한다. 홍콩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무간도’를 뛰어넘는 ‘홍콩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살인죄로 20년을 복역한 후 가석방된 양원양과 또 다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그를 의심하는 임 반장을 중심으로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두뇌 게임을 펼쳐간다. 홍콩 도심을 무대로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긴박감 넘치는 추격신과 액션에 더해, 중국의 국민배우로 떠오른 장가휘와 홍콩영화의 전성시대를 이끈 임달화의 불꽃튀는 연기대결도 볼 만하다.
그런가 하면 인도 영화 ‘천재 사기꾼 돈: 세상을 속여라’는 이야기 대신 노래와 춤이 중심을 이루는 이른바 ‘맛살라(Masala) 스타일’을 과감히 털어 내고 세계 시장을 겨냥해 제작된 액션물이다. 독일 DZB 은행의 지폐 인쇄판을 훔치기 위해 벌이는 악당들간의 신경전과 함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과 스릴도 만날 수 있다. 암흑가의 제왕인 악당 돈 역은 인도 최고의 국민 배우 샤룩 칸이 맡아 영화의 색다른 재미를 더했다.
◆ “가을하면 멜로…청소년은 안돼요”
‘럼 다이어리’는 조니 뎁과 각별한 우정을 과시하던 세계적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헌터 S. 톰슨의 자전적 소설을 각색한 작품. 돈과 술 그리고 여자에 인생을 탕진하던 신참기자 폴 켐프(조니 뎁)가 지역 개발 이면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기자로서의 정체성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자본과 기업 위주의 개발일로의 정책이 만든 1960년대 카리브해의 현실과 미국인들의 턱없는 환상을 바라보는 씁쓸한 시선은 유쾌함 속에서도 진정성과 긴박감을 부여하며 영화의 품위를 더한다.
‘19곰 테드’는 북미와 유럽에서 R등급 코미디 사상 최고의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영화다. 이 흥행의 원동력은 발칙한 곰인형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설정과 그것을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표현한 연출의 힘 덕이다. 어린 아이들의 친구 테디베어가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된다는 기발한 발상에서 출발한 영화는 주인공 테드의 깜찍한 외모와 상반되는 능청 맞고 발칙한 행동으로 전세계 성인남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생의 절정기가 지나간 후 나머지 95퍼센트의 당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맥팔레인 감독의 말처럼, ‘19곰 테드’는 그저 가볍게 웃고 즐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공감대도 이끌어낼 수 있는 성인 코미디다.
◆ “아이들 손잡고 애니 보러 오세요”
디즈니·픽사 작품 최초로 여자주인공을 앞세운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마법에 걸린 가족을 구하기 위한 천방지축 프린세스 메리다의 특별한 모험을 그린다. 첫 번째 여자주인공인 만큼 메리다는 일반적인 프린세스의 상식을 넘어서는 특별한 매력을 선사한다. 스코틀랜드의 공주이지만 드레스와 구두보다는 활쏘기와 말타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메리다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모험을 꿈꾸는 천방지축 캐릭터.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메리다만의 개성은 바로 곱슬거리는 빨강머리로 그녀의 독특한 매력은 3D 기술을 통해 한껏 부각된다. 마크 앤드류스 감독은 “영화를 보다보면 손을 뻗어 만지고 싶어질 만큼 아주 풍부하고 촉각적”이라고 말했다.
‘테드:황금도시 파이티티를 찾아서’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보이스카우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정의감과 모험심이 가득해 고고학자를 꿈꿔온 주인공이라는 점과 반쪽 석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 등은 ‘인디아나 존스’의 판박이지만, 그만큼 성인관객들에겐 흥미로운 볼거리로 작용할 듯하다. 영화는 3D 효과와 개성넘치는 캐릭터 외에도 남미 50여 장소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신비로운 풍경이 시종 화려하게 펼쳐진다.
애니메이션계의 세계적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손꼽히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아이’는 늑대 인간을 사랑하게 된 하나와 신비로운 운명을 살아가게 되는 하나의 늑대아이들 아메와 유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썸머워즈’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설레는 첫사랑의 순간, 가장 행복한 순간에 다가온 예측하지 못한 이별 등을 다룬 하나의 러브 스토리로 관객들에게 섬세한 감성과 설렘을 전달한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 작품 특유의 유쾌한 재미와 따뜻한 감동이 동시에 녹아있는 수작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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