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드래프트 데이·테레즈 라캥

  • 윤용섭
  • |
  • 입력 2014-07-11   |  발행일 2014-07-11 제42면   |  수정 2014-07-11

드래프트 데이 (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우리가 몰랐던 신인선수 드래프트의 심리전

20140711

1년에 단 하루, 미국 전역의 이목이 한 곳에 집중된다. 북미 최대 스포츠인 미식축구 팀의 미래를 결정하는 신인 선수 선발전(NFL) 드래프트가 열리는 뉴욕 ‘Radio City Music Hall’이다. 향후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최고의 신인을 자신의 팀으로 데려와야 하는 만큼 이날 각 팀에서는 사활을 건 치밀한 심리작전과 물밑작업이 활발히 이뤄진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다. 영화 ‘드래프트 데이’는 이 순간에 주목해 북미 미식축구 리그의 최대 메인 이벤트가 열리는 생생한 드래프트 현장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팀의 단장 써니(케빈 코스트너)는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선수 선발전을 앞두고 있다. 구단이 몇 년째 슬럼프에 빠져있기에 어느 때보다도 이번 선발전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타 구단과의 거래를 통해 3년간 1순위 지명권을 넘기는 대신, 올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이 소식은 전광석화처럼 퍼져 ‘마법콩을 사기 위해 소를 팔았다’는 일부의 비아냥까지 받는다. 하지만 우승을 점칠 수 있는 최고 기량의 선수를 데려올 기회라는 점에서 구단주와 대다수 지역팬들은 반색한다. 써니는 확실한 한 방을 보여주길 원하는 그들의 기대와 자신이 희망하는 팀을 꾸려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미식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국내 관객들에겐 다소 낯선 종목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미식축구는 특유의 프런티어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그들을 대변하는 스포츠다. 미국 프로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을 미국 인구의 절반 가까운 1억5천만명이 시청하고 평균 시청률 또한 50%에 이른다는 건 이에 대한 방증이다. 따라서 그 전초전 격인 드래프트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건 당연하다.

영화는 드래프트가 이뤄지는 긴박한 그 하루를 숨 가쁘게 좇아간다. 게임의 룰을 몰라도,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없어도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예측불허의 상황과 그들 간의 뒷거래는 충분히 흥미롭다. 이반 라이트만 감독이 “스포츠를 재현한 영화가 아니라 스포츠 정신이 녹아있는 영화”라고 말한 건 그런 이유다. 감동의 드라마를 펼쳐간다는 점에서 ‘제리 맥과이어’(1997)와 ‘머니볼’(2011)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드래프트 데이’가 보여주는 접근 방식은 보다 구체적이다. 촌각을 다투며 서로에게 유리한 협상을 하려는 그들 간의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심리전과 두뇌싸움은 웬만한 스릴러를 능가할 만큼 짜릿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프로미식축구 리그의 생생한 묘사로 사실감을 더한 점도 ‘드래프트 데이’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60년 전통의 명문 구단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팀이 실제로 이야기의 중심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다른 주요 구단의 시설과 경기장이 현장감 있게 카메라에 담겼다. 또한 현재 필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이 곧 지명될 신인 선수로 등장해 실제 운동 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리얼리티를 제공했다.

이반 라이트만 감독은 ‘고스트 버스터즈’ ‘친구와 연인 사이’ ‘클로이’ ‘인 디 에어’ 등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즐겁고 유쾌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와 함께 자신의 또 다른 장기인 멜로를 써니와 그의 수석매니저 알리(제니퍼 가너)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알리는 써니의 가장 든든한 업무파트너이자 연인으로 그에게 합리적인 판단과 명쾌한 조언으로 힘을 보태주는 인물. 영화는 마지막 1분 1초를 다투며 최고의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고전하는 순간에도 그런 두 사람의 관계에 주목해 팽팽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극 분위기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식의 기회를 제공한다. 색다른 긴장감과 스릴이 드라마와 어우러져 독특한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다.


테레즈 라캥 (장르:드라마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욕망에 굶주린 그녀, 치명적 사랑에 빠지다

20140711

“하느님은 가져가실 때 다른 걸 주신다. 카미유(톰 펠튼)에게서 건강을 가져간 대신 널 주셨다. 넌, 그 애의 수호천사다.” 테레즈(엘리자베스 올슨)는 라캥 부인(제시카 랭)의 뜻에 따라 사촌인 카미유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모인 라캥 부인에게 맡겨진 뒤 병약한 카미유와 함께 성장했다. 아들 카미유에게만 집착하는 라캥 부인에게 테레즈는 무의미한 존재나 다름없지만 아들을 옆에서 보살펴 줄 유일한 여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테레즈는 사랑도 욕망도 억압당한 채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간다.

‘테레즈 라캥’은 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가 19세기에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당시 파격에 가까웠던 섹스와 살인이라는 금기 소재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 열정, 욕망 등을 정교하게 파고든 과학적이고 냉철한 접근 방식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영화는 테레즈가 결혼 후 파리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본격적인 서스펜스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과정에서 카미유의 오랜 친구인 로랑(오스카 아이삭)과의 만남은 파국으로 치닫는 도화선이 된다. 파리에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던 로랑은 병약한 카미유와 달리 남성적인 매력이 충만한 인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이끌린 두 사람은 이후 도덕적 규율에서 벗어나 본능에 충실한 관계를 이어간다. 테레즈는 그를 통해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일깨우게 되고, 외면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테레즈는 말한다. “저들은 나에게서 너무 많은 걸 빼앗았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다 타버린 심지와 한 가닥 연기 뿐이었다”고. 따라서 테레즈의 육체적 구애는 보다 적극적이다. 그렇게 횟수를 늘려가며 밀회를 즐기던 두 사람은 차츰 과감한 행동을 하게 되고, 카미유를 자신들이 꿈꾸는 완벽한 사랑의 걸림돌로 여기게 된다. 결국 카미유는 그들의 계획에 의해 제거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사랑과 욕망에 대한 섬세한 고찰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섬뜩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적나라하고 날카로운 묘사와 탐구로 촘촘하게 엮어간다. 카미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완벽해질 줄 알았던 테레즈와 로랑은 죽음의 늪과 같은 카미유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후 이야기를 관통하는 건 그들을 끊임없이 옥죄는 죄책감이다.

12년이 넘도록 원작의 스토리를 연구했다는 찰리 스트레이턴 감독은 “성욕과 충동적인 행동, 죄책감이라는 원작의 테마가 무엇보다 흥미롭고 도발적이었다”며 “사랑에 대한 집착이라는 거대한 터널에 빠져들어 가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생생히 살아 있다는 점은 특히나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테레즈 라캥’은 원작에 충실한 편이다. 무엇보다 에밀 졸라 작품의 순수함과 그가 그린 세계의 맥락을 유지하고 싶었던 감독은 “단지, 텍스트로 구현할 수 없었던 원작의 팽팽한 속도감과 동적인 에너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영화적 기법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재현해낸 감독의 연출력에 더해 영화의 완성도에 깊이감을 보탠 건 테레즈를 섬세하게 묘사해낸 엘리자베스 올슨이다. 그녀는 순진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지닌 가녀린 여성에서부터 욕망에 눈이 멀어 잔혹하게 변하는 여인의 입체적인 모습을 예사롭지 않은 연기력으로 승화시켜 매혹적인 테레즈 캐릭터를 구현해냈다.

‘테레즈 라캥’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박찬욱 감독은 “소설에 가깝게 옮겨진 영화를 보니 찰리 스트레이턴 감독이 정말 부러웠다”며 “이 영화는 ‘박쥐’로 옮겨오면서 불가피하게 생략하거나 바꿔야 했던 요소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