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돌은 ‘300년 살아 숨쉬어 온 역사’…달성공원에만 9천여개 박혀있어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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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22   |  발행일 2014-08-22 제34면   |  수정 2014-08-22
[인문·자연지리 보고서 대구GEO] 대구읍성돌을 찾아라
20140822
계성학교 아담스관 벽에 박혀있는 대구읍성 성돌. 300년 가까이 된 성돌이 고풍스러운 건물에 무수히 박혀있다는 게 놀랍다.

읍성에 총 10만여개 성돌 사용
2008년부터 돌 모으기 캠페인
계성학교·동산동·대구향교 등
대구 전역서 3만여개 발견돼
회수할 수 있는 돌은 1만여개

대구시 중구청은 2008년부터 ‘대구읍성 돌 모으기’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기초 조사가 미비한 데다 시민의 참여 부족으로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중구청이 본격적으로 수거에 나선 건 2012년부터다. 북·서성로 대구읍성 상징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장소성과 역사성을 소재로 한 성곽의 의미를 부여하고, 읍성돌 분포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중구청과 도시만들기지원센터는 2012년 4~12월 탐색조사, 현장심층조사, 자문회의 등을 통해 총 80곳 3만819개의 성돌을 찾아냈다. 성돌의 유형은 크게 성벽돌, 장방형 건물석, 장대형 건물석 등 세 가지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성벽돌이 가장 많이 발견됐다. 성벽돌은 가로, 세로가 40~70㎝X40~70㎝로 연한 보라색을 띤 퇴적암 계통의 역암이나 사암이 많았다. 지산동이나 칠곡 등지서 채석된 것으로 제일중학교 거북바위나 건들바위와 같은 재질이다.

가로세로 30~50㎝X30~50㎝ 크기의 화강암으로 된 건물석(장방형)은 주로 금호강 건너 팔공산 채석장에서 운송한 것으로, 읍성파괴 후 ‘돌 1개를 1냥에 팔았다’는 기록으로 볼 때 1906~10년대 건축물의 주요 석재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명됐다. 폭 20~25㎝, 길이 50㎝~2m 크기의 또 다른 장대형 건물석(화강암)은 건물의 기단에 사용된 것으로, 주로 화단의 경계석으로 사용됐다.

성돌이 발견된 곳은 크게 계성학교 일대(5천793개), 동산병원 선교사주택을 비롯한 동산동 일대(7천294개), 달성공원 일대(9천464개), 서성로 일대(471개), 북성로 일대(101개), 대구향교 일대(6천627개), 남산동 일대(624개), 삼덕동 일대(347개) 등지다.

계성학교에서는 아담스관(1천290개)과 고교 건물 서북편 옹벽(3천800개)에서 가장 많이 발견됐다. 이 밖에 맥퍼슨관, 계성중 운동장 계단, 테니스장 옹벽에 수백여 개가 남아있다. 이들은 주로 성벽돌로 원형이 잘 보전돼 있다.

지난 16일, 계성학교 아담스관을 찾았다. 고풍스러운 건물은 대구 근대의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이 건물은 1908년 3월 건립된 지상 2층, 지하 1층의 영남지역 최초의 양옥건물이다. 서구 건축양식에 한식기와를 이어 교회당의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붉은 벽돌로 벽을 마감했는데 정면과 뒷면, 북쪽과 남쪽 벽에 대구읍성 성돌이 수십개 규칙적으로 박혀있다. 이 밖에 지하에도 300여개의 성돌이 있다. 읍성돌을 대체한 대리석 재질의 머릿돌에 ‘이 돌은 읍성돌이며 북쪽 벽 모서리에 있던 머릿돌 1개를 1995년 계명대 성서캠퍼스 본관을 건립할 때 가져갔다”고 쓰여 있다. 300년 가까이 된 성돌이 1908년에 지은 건물에 박혀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놀랍다. 역사가 숨 쉬고 있는 건물이다.

계성고 건물 서북편, 서문시장 공주네식당(중구 큰장로 26길 36-8) 뒤편 옹벽은 마치 일본의 구마모토 성벽이나 오사카 성벽을 연상케 했다. 담인지 성곽인지 구별이 모호할 정도로 위용이 있다. 이곳에는 옛 대구읍성의 성돌로 추정되는 석재가 서문시장 남쪽과 계성고 서북쪽 담장에 길이 70m, 높이 4m로 규칙적으로 쌓여 있다. 담장의 길이는 약 70m다.

권상구 위클리포유 대구지오 자문위원은 “성돌의 상태가 양호하고 다른 석재와 섞이지 않았다”며 “옹벽 위 시멘트담장을 제외한 돌담은 1908년 아담스관을 지은 다음 1920년대 천왕당지를 매립하고 서문시장을 옮길 때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예명해 대구대 건축학과 교수는 “읍성돌로 추정되는 옹벽은 규모도 크고, 돌도 밀집돼 있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해도 무방하다”며 “입구에 돌의 유래에 대한 세밀한 안내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중구 동산동 일대 선교사주택에서만 총 6천682개의 성돌이 발견됐다. 특히 스위츠주택에선 3천537개가 발견됐다. 이 건물은 1910년대 미국인 선교사가 지었다. 건물 안내판에 ‘대구읍성을 철거할 당시 나온 성돌을 기초로 해서 지었다’고 쓰여 있다. 건물 기단부와 입구 계단, 테라스의 기초로 사용한 것이 금방 눈에 띈다. 지하에도 수백 개의 성돌이 보인다. 울퉁불퉁하지만 망치로 깎은 흔적이 뚜렷하다.

달성공원에만 해도 총 9천여 개의 성돌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드러난 곳은 입구 오르막이다. 이 밖에 공원 내부 관풍루 계단을 비롯해 토성주변에 무수히 읍성돌이 발견됐다. 달성공원에는 희귀한 동물만 있는 게 아니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역사가 묻어 있다.

대구시민회관 맞은편 대구청소년경찰학교(옛 역전치안센터) 앞 화단에는 거북모양을 한 조각상이 있다. 전 계성학교 한문교사 신태관씨는 이 석조거북상이 대구읍성의 주요건축물에 사용됐다고 한다. 거북 등에는 홈이 있어 기념비나 표식, 이정표 등으로 사용했을 개연성이 있다. 거북상의 설명에 ‘조선 중기 이전 큰 비석의 받침돌로 주로 사용했다’고 나와 있다. 북성로가 대구에서 처음 생긴 신작로이기 때문에 성돌의 사용이 용이했으리라고 추정한다. 이 주변에는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 남아 있어 많은 성돌이 건축물의 기단부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대구향교 일대에는 봉산동과 대봉동 등지의 주택에서도 많이 발견됐다. 특히 제일중학교 남측 옹벽, 경북여고 남동쪽 옹벽, 이천동 배수지 주변 옹벽에서 수천개의 성돌이 발견됐다. 남산동에는 상덕사문우관 주춧돌, 남산동 아미산 일대 옹벽 등지에서 많이 발견됐다. 이 밖에 삼덕동에선 관음사 건물기단에서 300여 개의 성돌이 발견됐다.

발견된 총3만여개의 성돌 중 회수가 가능한 돌은 1만여 개다. 2만여 개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의 건축자재로 사용돼 회수가 불가능하다.

권상구 대구지오 자문위원은 “대구읍성에 10만여 개의 성돌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그중 30%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전영권 대구지오 자문위원은 “대구읍성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대구읍성 4대문 자리나 근처에 성돌을 활용한 관광홍보부스 등을 설치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공공건물 옹벽에 사용된 성돌도 그 자체가 역사이므로 정보를 알려주는 안내판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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