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前 대사 외교인생사 “난 ‘외로운 늑대’ 스타일…파나마·과테말라·멕시코 등 險地를 돌아다녔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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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21   |  발행일 2014-11-21 제34면   |  수정 2014-11-21
20141121
잉카마야박물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 전 대사 부부.

부인 주미영씨와 외교부 커플
영어·독일어 등 6개국어 구사
2005년 韓-과테말라 대통령
긴급 정상회담 미션 완수 보람
볼리비아 대사땐 한글보급도


김홍락 전 볼리비아대사 부부는 사내커플이다. 전도가 창창한 잘생긴 젊은 외교관과 외교부 국장의 비서로 소문난 미녀였던 주미영씨는 외교부청사에서 처음 만났다. 첫눈에 서로 반한 두 사람은 3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해 1982년 함께 칠레로 떠났다. 이후 중남미 8개 나라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해외공관 생활 28년 가운데 대부분을 중남미 국가에서 보냈다. 중남미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다. 법대에 다녔는데 법학보다 외국어 과목 점수가 높았다. 특히 독일어를 좋아했다. 외교관이라면 영어는 물론 2~3개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는 고급인 편이고 중국어, 일본어 등도 조금은 한다. 준비된 외교관이라고 할까.(웃음) 3등서기관 부영사로 칠레에 갔는데 칠레 사람이 좋고 그 나라 문화가 좋더라. 사람들이 대부분 친근하고 오픈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칠레는 다른 나라 사람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다. 초급외교관으로 총무, 영사, 통신업무 등을 하면서 3년간 근무한 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외교관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2년간의 석사과정을 끝내고 89년 경제담당 2등서기관으로 다시 멕시코에 갔다.

-초임지에서 스페인어를 해, 중남미국가 전문외교관이 된 것 같다. 멕시코는 어떤 나라인가.

“마야문명을 처음 접하게 됐다. 특히 AD 1~7세기, 신의 도시라고 불리는 ‘테오티우아칸’에서 ‘태양의 피라미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 파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더 크고 웅장하다. 멕시코시티 북동쪽에 있는데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큰 고대 유적지다. 이런 거대한 문명이 지구 반대편 아시아에서 베링해를 건너왔다는 게 신기했다. 이곳 원주민은 몽골반점이 있으며 한민족의 문화와 닮은 점이 많다. 에네켄 줄기에서 아구아미엘(꿀물)을 발효시킨 멕시코의 전통주 데킬라도 우리의 막걸리 제조법과 유사하다.”

-멕시코시티는 고원지대다. 생활은 어땠나.

“2년6개월간 있었는데 공기가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들었는데 고지인 데다 분지라서 스모그가 많았다. 담배까지 피우면 건강에 해롭겠다 싶어서 담배를 끊었다. 당시 멕시코는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했는데 우리 경제권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정보수집활동을 했다. 그때 참 열심히 일을 했다. 그간 열심히 공부한 스페인어를 완벽하게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갈 생각은 없었나. 스페인도 있을 텐데.

“당시 외교부에선 험지에 가면 다음번 임지는 선진국으로 간다든지 하는 냉·온탕제도가 있었는데 멕시코보다 더 험지인 파나마로 갔다. 속이 조금 쓰렸지만 다 뜻이 있겠지 싶었다. ‘외로운 늑대’ 스타일이라서 혼자 개척하길 좋아하는 편이다. 명예, 출세도 좋지만 어디에 가든 밀알이 되고 벽돌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파나마는 최악의 히터웨이브(뜨거운 바람)로 찜질방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공기가 무척 맑았다. 멕시코에선 건조해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파나마에선 땀구멍이 다 열렸다. 금방 적응되더라.”(웃음)

김 전 대사는 파나마에서 서울 외교부로 와 남미과장을 1년간 역임했다. 다시 OAS(미주기구) 파견관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근무하다 애틀랜타총영사를 거친 후 99년 에콰도르로 부임했다. 다시 귀국해 서울에서 중남미심의관을 하다 2003년 외무고시 동기 가운데 처음으로 과테말라대사 겸 온두라스 겸임 대사로 갔다. 험지에서 근무한 경험이 많은 중남미전문가를 찾던 참여정부의 인사정책 덕분이었다.

-과테말라에서는 대사 직책을 맡았다.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나.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7월에 코스타리카에서 중미 5개국과 정상(SICA)회담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마침 정상회담 당일 오스카 베르셰 과테말라 대통령이 브라질 대통령 룰라와 정상회담 일정이 미리 잡혀있었다. 5개국 중 과테말라만 빠지게 됐는데 정말 걱정되더라. 기어코 과테말라 대통령이 참석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했다(김 전 대사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하루는 오스카 대통령과 헬기에 동석했다가 고장으로 헬기가 비상착륙을 하는 바람에 생사고락을 같이한 친밀한 사이가 됐다. 이후 오스카 대통령에게 ‘대통령 전용헬기는 결코 고장이 나서도 안 되고 조종사는 책임을 면할 수 없는데 당신은 조종사의 허물을 덮어주었다. 당신 타입과 너무나 흡사한 비권위적인 한국의 대통령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당신을 만나러 오는데 2시간만 코스타리카 오면 안 되겠느냐’ 하며 가까스로 설득해 오스카 대통령이 1+5 중미5개국정상회담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 코스타리카 미션을 완수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 전 대사는 과테말라의 산 카를로스 국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후 미국의 하버드 웨더헤드센터에서 1년간 공부를 했다. 그는 2007년 이탈리아공사로 잠시 갔다가 이듬해 볼리비아 창설대사로 나가게 됐다. 그는 퇴직할 때까지 볼리비아에서 근무했다.

-볼리비아는 어떤 나라인가.

“부임하던 날 볼리비아 좌파정권이 미국대사를 쫓아낼 정도로 반미감정이 강한 나라다. 부임하기 전 박건우 전 주미대사가 ‘미국대사만 대사가 아니라 험지에서 일하는 대사가 진짜 대사’라고 격려해줬다. 볼리비아는 천연가스를 비롯해 아연, 구리 등 각종 자원의 보고다. 특히 세계 최대의 리튬이 매장돼 있는데 리튬 확보를 위한 자원외교 확보에 힘썼다. 일본, 프랑스 등이 먼저 선점한 상태에서 한국정부와 MOU 체결까지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볼리비아 대사 시절 한글보급에 힘써 뉴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던데.

“볼리비아는 36개 인디언부족으로 된 다민족국가다. 이 가운데 아이마라 인디언부족이 250만명으로 케추아족에 이어 둘째로 많다. 하지만 말만 있지 문자는 없다. 스페인어 알파벳으로 원어민 발음을 표기했는데 정확한 발음이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한글표기로 하면 어떨까 싶어 토요일마다 아이마라 인디언말을 배워 한글로 아이마라어를 표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무척 재미있어 하더라. 한 아이에게 한글을 1시간 가르쳤더니 자기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기초 ‘아이마라 한글교본’을 만들었다. 아이마라족에 대한 한글보급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다른 부족, 더 나아가 중남미인디언의 한글화도 가능하리라 본다. 다만 우리 문화의 일방적 전파로 자존심 강한 부족의 반감을 살 수도 있으니 문화회관 건설 등 지역개발사업과 병행해 추진하면 좋을 것이다. 볼리비아 외교장관이 관심을 가져 현지 볼리비아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웃음)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를 우리말로 번역한 적도 있던데.

“2008년 볼리비아 외무장관으로부터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 체 게바라의 일기 사본을 받았다. 담배자국이 있는 복사본이었다. 체 게바라는 과테말라에서 혁명을 생각한 뒤 볼리비아에서 처형당했다. 평생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섰던 그의 삶이 마음에 들어 한번 번역해보고 싶었다. 지금은 잉카마야문명과 볼리비아인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남미의 오지전문 외교관이었는데 외교관은 어떤 직업인가.

“화려해 보이지만 오지에서 고생하는 외교관이 많다. ‘외교인 상’을 수상한 이유도 음지에서 고생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3천m 이상 고지대에 살면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 투철한 사명감과 국가관이 없으면 힘들다. 오지에 있었기에 감사하게도 지금의 유물도 수집할 수 있었다. 사재를 털어 잉카마야박물관을 설립한 목적도 한국에 중남미문화를 알리고 우호친선관계를 민간차원에서 하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아내가 내조를 잘 해야 외교관 업무를 잘 수행할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부인인 주미영 관장은 어떤가.(웃음)

“아내가 스페인어를 잘 한다. 볼리비아에선 외교관부인회 부회장을 할 정도였다. 유물수집을 처음 시작한 것도 아내다. 아내는 예쁘고 귀여운 것을 주로 수집했는데 난 귀신 대가리부터 모았다.”(웃음)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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