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당신”越男北女 31년간의 러브레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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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2-19   |  발행일 2014-12-19 제33면   |  수정 2014-12-19
■‘세기의 사랑’ 팜녹 칸씨 인터뷰
20141219
지난 13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근교 한 호텔에서 팜녹 칸씨를 만났다. 칸씨가 영희씨와의 절절한 러브스토리를 들려주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위클리포유는 2012년 2월 영국의 BBC가 방영했던 ‘세기의 사랑’편 베트남 청년 팜녹 칸씨와 북한 여성 리영희씨와의 러브스토리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싣는다.

이 둘은 1971년에 처음 만나 시련과 역경을 딛고 31년의 긴 기다림 끝에 2002년에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지난주 기자는 하노이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팜녹 칸씨를 만났다. 그를 만나 3시간 이상 국경과 세월을 건너 뛴 세기의 러브스토리를 들었다. 그의 아내 리영희씨는 북한국적이어서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칸씨와의 단독 인터뷰가 끝난 뒤 영희씨가 자정쯤 오토바이를 타고 그를 데리러 왔다. 그녀는 칸씨가 한국기자와 만나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기자를 만난 영희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기자와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고 영희씨는 칸씨와 함께 호텔을 나섰다. 둘은 다정히 손을 잡고 오토바이를 탔다. 운전대는 칸씨가 잡았다. 영희씨는 뒤에서 칸씨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하노이의 어두운 밤을 헤쳐 나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운명적 사랑을 만나다

1968년 전선은 먹장구름처럼 베트남전역으로 확대됐다. 하노이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군 B52폭격기의 무자비한 공습이 이어졌다. 고막을 찢는 사이렌소리, 불을 뿜는 대공포, 부상자의 아우성소리, 어느 누구도 이 전쟁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다.

‘아!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뒤로 하고 유학을 가야하나.’

팜녹 칸은 남부전장으로 떠난 친구들을 생각하며 유학을 갈 것인가를 고뇌했다. 하지만 ‘조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누군가는 피폐해진 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호찌민 주석의 대의를 거역할 수 없었다.

그해 봄, 20세의 칸은 호찌민장학생에 뽑혀 중국을 경유해 북한의 함흥화학공업대학으로 갔다. 그와 함께 간 200여명의 베트남 유학생은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과대학, 원산농업대학, 청진광산대학 등지로 흩어졌다. 북한 말고도 수천명의 호찌민장학생이 동유럽이나 소련, 중국 등지로 유학을 갔다.

칸이 운명의 여인 리영희를 만난 건 4학년 여름이었다. 그는 함흥화학공업대 인근에 있는 북한 최대의 흥남비료공장에 한 달간 실습을 하러가게 됐다. 실험실과 분석실을 오가면서 현장에 있던 북한 노동자들과 만나기도 했지만 단순한 일 때문이었다.

하루는 창문을 통해 시료분석실에서 일에 몰두하던 한 여성의 옆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마치 전생에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여인이었다. 칸은 태어나서 한 번도 이성에게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이끌림을 갖게 됐다.

‘아, 저 여인이 나의 짝이 돼 평생을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칸의 머릿속은 온통 그녀의 생각밖에 없었다. 이튿날 칸은 그 여성이 누구인지 알아봤다. 이름은 ‘리영희’, 나이는 그보다 한 살 많은 24세, 비료공장의 시료분석실 조장이었다. 칸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하루는 분석실로 가다 우연히 복도에서 그녀와 마주치게 됐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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