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포항 구룡포 과메기가공공장 사람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5-01-30   |  발행일 2015-01-30 제36면   |  수정 2015-01-30
“딱 4번 칼질에 말끔한 살코기만 남아…한 사람이 하루 2천마리 작업”
20150130
밤 10시부터 꽁치의 뼈와 내장을 제거하는 작업을 한 후, 새벽 5시가 되면 손질한 과메기를 깨끗이 씻어 20마리씩 가지런히 대나무 꼬챙이에 넌다. 잘 정리된 과메기는 오전 11시면 해풍에 내다 널어 말린다.



20150130
20150130
‘남양수산’의 김성호(46)·하수미씨(44) 부부.
20150130
과메기 가공공장 ‘수성수산’의 최주호 사장(67).



10월 중순부터 설 전까지
주말도 없이 일해
숙련공 일당은 약 20만원

해풍에 3일간 말려 숙성
첫날은 햇빛에
둘째·셋째날은 그늘에서


“저는 안 할래요.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여러 직업현장을 다니다 보면, 취재하기 쉽지 않은 직업들이 있다. 분명히 그 일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으니 직업인 것은 분명한데,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할지 망설여지는 직업들. 연탄배달을 하는 부부는 신학기마다 아이가 갖고 오는 부모님 직업 조사란에 ‘운송업’이라 쓴다 했다. 기와공장에 다니는 아주머니들은 그냥 ‘회사원’이라고 쓴다 했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 그 직업 ‘명칭’이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관해 얼마만큼 말해주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하나의 단어, 명쾌한 직업 명칭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일들도 있다. 여기, 과메기 가공공장도 마찬가지다.

1. 겨울에만 죽도록 바쁜 사람들

“하루에요? 요즘 같으면 2천 마리쯤 딸걸요?”

새벽 2시, 이곳은 포항 구룡포에 있는 과메기 가공공장 ‘남양수산’의 작업장이다. 일렁이는 파도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바다는 캄캄한데, 대낮처럼 훤히 불을 밝힌 작업장 안에는 9명의 아주머니가 저마다 하나씩 칼을 들고 앉아있다. 꽁치 한 마리가 그들 앞에 놓이면 딱 네 번의 칼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망설이면 안 돼. 아가미 아래 칼을 일단 꽂았으면 꼬리까지 한 번에 쫙 배를 따야 돼. 뒤집어서 똑같이 또 한 번. 그러면 이렇게 머리랑 가운데 뼈가 빠지잖아? 그러면 살을 펼쳐 양쪽 가장자리로 쫙, 쫙, 잔뼈 정리해주고.”

끝!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한 5초나 걸렸을까? ‘과메기 배 따기’만 10년째라는 배 따기 달인 임금순씨는 손이 어찌나 빠른지, 칼질하는 오른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왼손으로 꽁치를 놓고, 뒤집고, 펼치는 세 동작만을 본 것 같은데, 벌써 끝! 뼈는 물론 내장까지 깨끗하게 제거된 순살 꽁치가 상자에 쌓여간다. 이렇게 동이 트기 전까지 2천 마리쯤 작업한다고 했다.

“아니요, 혼자서 2천 마리죠!”

아주머니가 9명이니까 2천 마리면 하루에 1만8천 마리 하고…. 혼자 중얼중얼 계산을 하고 있자니, 남양수산의 김성호 사장(경력 11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한 상자당 꽁치가 70마리 가까이 되거든요. 그걸 30상자, 40상자씩 손질해요. 전부 한 십몇 년씩 한 분들이니까, 그런 숙련공들은 일당도 많이 받죠.”

최고 숙련공의 일당은 하루 약 20만원. 최근엔 전국적으로 택배 물량이 늘어나면서 10월 중순부터 설 전까지는 비만 안 오면 주말도 없이 일한다고 했다. 하루 20만원에 한 달 30일이면…. 우와, 이게 얼마야?

“이게 얼마냐 싶죠? 그런데 이게 딱 한철이에요. 과메기철 아닐 때는 일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니까. 게다가 말이 쉬워 40상자이지, 처음 일 배울 때는 한 상자 손질하고 몸살 났어요.”

요즘은 잠도 두세 시간밖에 못 자고 일한다는 남양수산의 안주인 하수미씨(경력 11년)는 손질된 과메기를 척척 포개어 옮기더니, 본격적인 세척작업에 들어간다.

“손질은 밤새 하고요, 새벽 6시부터 11시까지 세척, 세척 끝나면 그때부터 건조, 오후 4시부터는 또 택배포장 하거든요. 저녁 8시까지 택배 부치고 마무리하면 밤 11시예요.”

그야말로 24시간 돌아가는 공장. 과메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몸이 너무 힘들어서 매일 울면서 일을 배웠다고 했다. 10여 년 전 그때, 일 나가면 엄마 가지 말라며 목놓아 울던 두 남매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포항 시내에 나가 공부한다.

“지들끼리 밥해 먹고 학교 다녀요. 이거 돈 벌자고 애들은 애들끼리 객지에서 고생한다 생각하면 또 눈물 나죠. 그래도 어쩝니까? 애들 때문에 이 일 하는데, 애들도 참고, 저도 참고….”

20150130
겨울철 구룡포읍 해안에는 과메기가 주렁주렁 걸린다.

2. 숙성 시간이 담아내는 깊고 진한 바다 맛

“이렇게 20마리씩 널어 해풍에 3일간 말리는데, 첫날은 햇빛에 말리고 둘째, 셋째 날은 서늘한 그늘에 보관합니다. 이게 단순히 건조만 하는 게 아니라 숙성시키는 것이거든요. 숙성이 되면 몸에 좋은 DHA라든지 오메가3가 증가하는 거예요.”

구룡포에서 배를 타다 10년 전부터 과메기 가공공장을 하고 있는 ‘수성수산’의 최주호 사장은 과메기 자랑을 하면서도 연신 덕장을 손질한다. 배를 가른 과메기는 바람이 잘 통하도록 등끼리 마주 보게 널어놔야 하는 것이다.

연한 속살을 밖으로 드러낸 채 꾸덕꾸덕 굳어가는 과메기를 보고 있자니, 맛을 내는 일이란 게 참 고된 과정이구나 싶다. 몸속 심지처럼 박혀있던 등뼈도 걷어내고, 잡념 같던 잔뼈도 깨끗이 잘라내고 찬 바닷바람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 하는 그 모진 과정이 ‘숙성’이란다. 그 과정을 거쳐야, 여린 살이 단단하게 응축되면서 고소하고 깊은 맛이 살아나는 것이다.

“오징어 건조할 때도 오징어 다리가 저희들끼리 붙어 있으면 잘 안 마르거든요. 건조하는 틈틈이 발을 떼줘야 하는데, 이거는 우리 손자 손녀들 몫이지. 여기 와서 용돈 벌어 가는 거예요. 여기는 일할 게 많거든.”

최주호 사장은 뉴스를 볼 때마다 젊은 사람들 일할 데가 없다고 야단인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여기는 일할 거 천지이고, 일손이 부족해서 난리인데. 초등학생인 손주들도 방학이면 와서 제 용돈 벌어 가잖아요. 밥 다 먹여주지, 돈 벌어가지, 여기 와서 일하면 돼요. 물론 힘은 들지만, 다들 싱싱한 사람들이 왜 그러나 몰라.”

오징어 탱기치기(작은 대나무를 오징어 발에 끼워 펼쳐주는 작업) 하고 발 떼기 작업을 하는 데 한 축에 600원씩. 어지간하면 일당 15만원은 나온다고 했다.

“힘들어도 주문이 들어오면 신이 나서 춤추면서 일해요. 과메기가 잘 되면 우리 가족, 나뿐 아니라 구룡포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 직업은 ‘내세울 것도 없고, 딱히 할 말도 없다’더니, 이야기를 풀면 풀수록 깊은 얘기가 쏟아진다. 어릴 적 아버지의 일이 힘들어 보여서 어부가 되기 싫었다던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돕다 보니 과메기와 오징어를 말리는 부모가 되었다 한다. 그래도 내 자식들 먹여 살리는 일이다 생각하면, 일이 많을수록 춤을 추게 된다는 사람들. 그들의 직업은 어쩌면 그냥 ‘부모님’이 아닐까? 의사, 변호사, 선생님같이 ‘부모님의 직업’란에 명쾌한 답을 적어 넣긴 힘들지만, 이름값도 못하는 수없이 많은 번드르르한 직업보다 훨씬 더 자신의 일에 진지한 삶이 여기에 있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

글=이은임 방송작가 sophia9241@naver.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