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영웅들과 맞짱 뜨러 ‘웃픈’ 그가 온다

  • 윤용섭
  • |
  • 입력 2015-04-13 08:16  |  수정 2015-04-13 11:27  |  발행일 2015-04-13 제24면
영화 ‘약장수’ 김인권
20150413

그는 늘 ‘웃프다’. 짙은 페이소스와 코미디적 요소가 흥미롭게 공존하는 김인권의 스크린에서 비치는 모습은 그랬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통해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소시민적 캐릭터를 완성했다. 인물이 처한 상황의 비루함을 삶의 리듬과 유머로 승화시키는 능력은 특히나 빛났다. 그건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김인권의 연기 행보에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가 다시 특화된 자신의 이미지를 최적화시킨 ‘약장수’의 일범 역으로 관객을 찾았다. 장편 상업영화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의 적은 예산과 출연료지만 그는 시나리오가 지닌 이야기의 힘에 매료돼 선뜻 출연을 결정했다.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내 삶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었다. 내 연기인생의 한 지점에서 특별한 의미로 남을 고마운 작품이었다”고 김인권은 말한다.


벼랑끝 가장의 처절한 생존기
엄마들에 사랑받는 몸 만들려
두달을 소파서 먹고자며 살 찌워
엉덩이 깜짝 노출하는 연기도

반지하방에 세들어 살던 시절
영화 찍으며 새록새록 떠올라

난 무비스타보다 코미디언
뭔가를 계속 보여주고 싶어
가끔은 재벌2세 역할도 욕심


‘약장수’는 약장수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한 남자의 처절한 인생을 통해 부모와 가족, 그리고 사회의 역할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일범은 그 중심에서 벼랑 끝에 서있는 소시민을 대변한다. 딸은 아프고 집세는 몇 달째 밀렸지만, 신용불량자에 아무런 기술도 없는 그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일범은 외로운 엄마들의 딸과 아들을 대신해 웃음과 눈물을 파는 약장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무엇보다 세 딸을 둔 가장 김인권의 실제 삶이 투영된 눈물 겨운 생존기라는 점에서 더없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약장수’는 ‘방가? 방가!’(2010) ‘전국노래자랑’(2012)에 이은 소시민 3부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맞는 옷을 점점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소시민이나 약자 등 평균보다 밑에 있는 캐릭터들을 줄곧 해왔는데, 사실 감성적으로나 내가 살아온 환경을 보더라도 그런 역할들이 내게 맞는 것 같다. ‘약장수’는 다양한 연기적 접근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이젠 세 딸을 가진 아빠로서 그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영화에서처럼 첫째가 폐렴에 걸려서 고생한 적이 있다. ‘해운대’를 찍을 때였는데 수시로 병원과 촬영장을 오갔다. 딸은 아프고 나는 돈을 벌어야 했던 당시의 기억과 감정들이 이번 작품에 많이 투영됐다.”



-일범처럼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

“부모님이 하시던 사업이 잘 안 됐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서 오랜 시간 반지하 방에서 자취하다시피 살았다. 당시 네 가구가 반지하방에 세 들어 살았는데 조금 가격이 높은 곳은 방 두 개에 화장실이 딸려 있지만, 내 방은 화장실도 밖에 있는 최악의 방이었다. 겨울에 세수를 하려면 보일러를 켜놓고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작은 행복이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다가 첫째가 태어나면서 드디어 아파트에 입성하게 됐는데 1층인 데다 오래된 아파트라 겨울에는 추웠고 여름에는 벌레와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그래도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캐릭터 준비는 어떻게 했나.

“홍보관을 찍어놓은 영상을 봤다. 감독님이 몰래 홍보관에 잠입해서 찍은 건데 대략 현장의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일범 캐릭터를 잡아갔고, 동시에 몸을 만들었다. 물론 남성미를 과시하는 근육질이 아닌, 엄마들에게 귀여움을 받을 만한 통통한 몸이다. 정말 두어 달을 소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근육질 몸을 살로 덮게 만들었다.”(웃음)



-그렇게 만들어진 누드신(?)이 인상 깊었다.

“그 장면은 나한테 어떤 동기가 되었다. 사실 현장 여건상 그 장면은 포기하려고 했다. 빡빡한 예산인지라 정해진 회차를 넘길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장면의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 만에 콩 볶듯이 찍은 장면이다. 시나리오에선 엉덩이만 살짝 보이는 정도였는데 한 시간 안에 찍는다고 하니까 좀 자유로워졌다. 결과적으로 그 장면을 찍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



-스스로는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나.

“배우는 크게 무비스타와 코미디언으로 나눌 수 있는데, 무비스타는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코미디언은 관객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배우다. 뭔가를 계속 보여주고 싶다. 이번 영화처럼 내가 주도하는 작품을 하게 되면 나 스스로 뭔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이런 기회가 자주 왔으면 좋겠다.”



-연기적 고민이 있다면.

“비슷한 이미지로 계속 소모되는 것은 아닌지 가끔 불안하다. 이제 캐릭터 변주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점에 온 것 같다. 소시민도 좋지만 가끔은 그와 정반대인 재벌 2세 같은 역도 해보고 싶다. 나름대로 그런 역할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무엇보다 작은 차이의 변화라도 관객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그게 나의 커다란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막강한 경쟁작인 ‘어벤져스’와 개봉날짜가 같다.

“지금 ‘약장수’가 ‘어벤져스’와 맞붙는 구도로 돼있어 아주 흥미롭다.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어벤져스’가 2시간 동안 삶을 잠시 잊을 수 있게 만드는 영화라면, ‘약장수’는 삶을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재미난 이야기와 볼거리로 2시간을 즐기게 해드리는 것도 배우의 역할이겠지만, 민감한 문제를 민감하지 않은 척 재미나게 들려주는 것도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약장수’는 그런 노력과 메시지를 담았다. 다만 그런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프리랜서) 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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