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어느 에이즈 감염인 이야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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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01   |  발행일 2015-05-01 제33면   |  수정 201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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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 리본

레드리본은 유엔 에이즈(UN AIDS)가 에이즈운동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채택한 인식리본이다. HIV/AIDS가 피의 교환에 의한 질병이고, 감염인의 인권을 지지하며 이해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아이가 무슨 병이냐고 묻더군요
사실대로 말했지요
얼굴이 하얗게 변하던 아이 모습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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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분을 든 여운이 카페 ‘빅핸즈’입구 계단 벽에 걸린 대형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엔 혼자라고 쓰여 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다.

‘해밀.’‘해가 밀고 나온다’의 줄임말이다. 해밀은 2010년 대구경북 에이즈(HIV/AIDS) 감염인이 만든 자조(自助)모임이다. 회원은 8명. 지난달 22일 오후 카페 ‘빅 핸즈’(대구시 동구 안심로 50길 25 리버뷰빌딩 3층)에서 해밀 회원들을 만났다.

“천둥이 치고 비가 오면 마음이 괴롭잖아요. 해가 구름을 밀고 나오면 고요와 평화로움이 찾아오듯 해밀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운(62·가명)은 해밀의 회장이다. 그는 부산 출신으로 전직 요리사다. 부산에서 결혼을 한 뒤 두 아이를 뒀다. 이후 서울로 올라가 한 식당에서 주방장을 했다. 그는 2008년 이맘때 부산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 진단을 받았다.


“2007년 봄부터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팠습니다. 병원을 예닐곱 군데 다녔는데 치료가 안 되더군요. 하루는 지하철을 탔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과에 갔습니다. 의사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며 수면제를 주더군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의 몸은 쇠약해져 밥알도 넘길 수 없었다. 설탕물로 끼니를 대신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후 그는 종합병원에서 결핵진단을 받아 치료를 하던 중 다시 쓰러져 119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여운은 일주일간 종합검진을 받고 자신이 HIV/AIDS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약이 입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염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복기가 7~8년, 늦어도 10년 후에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60㎏ 전후였던 몸무게가 40㎏대로 줄었어요. 어느 날엔 계단을 오르다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었어요.”


대부분의 감염인이 가족에게 감염사실을 숨기는 것과는 달리 그는 아내와 자녀에게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 했다.


“아이가 저를 보고 무슨 병이냐고 묻더군요. 전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해 ‘에이즈란다’라고 했지요. 아빠의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변하던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아내와 이혼한 뒤 희망을 잃고 방황했다. 이렇게 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자는 생각이 들어 자살시도만 네 번이나 했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대구로 삶의 터전을 옮긴 건 우연이다.


“부산에 있는 동네보건소에서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연락이 왔더군요. 풀이 죽은 목소리로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말했더니 대구경북에이즈예방협회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협회 차명희 상담팀장과 전화 상담을 한 후 고민 끝에 대구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여운은 대구의 에이즈예방협회 쉼터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했다.

“쉼터에 입소하기 전 무작정 갓바위로 가는 버스를 탔어요. 2층 계단도 겨우 올라가는 체력에 수십 번을 쉬다 가다 하며 4~5시간 만에 갓바위에 도달했습니다. ‘나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부산에 있을 때 여운은 모든 생각을 부정적으로 했다. 하지만 에이즈협회 김지영 사무국장과 차 팀장의 끈질긴 설득과 보살핌으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협회에선 김지영 사무국장이 감염인 가족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차 팀장이 어머니 역할을 합니다. 쉼터는 여느 일반 가정집과 다르지 않아요. 다들 다정하고 편안하게 서로를 대해줍니다. 그럼에도 전 밤이 되면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지요.”


여운은 2년 전 한 강연회에서 자신의 마음에 거울을 달아보면 자신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결정적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꿨다. 여운은 5년여간 쉼터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대구시 남구의 한 빌라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보금자리가 생긴 뒤 커다란 거울부터 마련해 방 입구에 걸어두었다. 앞으로 계속해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작은 의식이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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