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5] 김천 고대국가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4> 천혜의 자연조건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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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7   |  발행일 2015-05-27 제29면   |  수정 2021-06-16 16:49
甘川(감천) 풍부한 물과 개령 비옥한 평야 통해 富 축적…독자 문화 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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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지류이자 김천시민의 젖줄인 감천(甘川)에서 바라본 김천시 개령면 일대의 충적평야(沖積平野). 김천의 읍락국가 감문국(甘文國)은 감천변의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나라의 힘을 키웠다. 감문국이 ‘작지만 강한 나라’였다는 주장의 저변에 감천이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스토리 브리핑

김천의 읍락국가(邑落國家) 감문국(甘文國)은 기원전 2~3세기경 건국돼 번성한 나라다. 백두대간의 산악 지형 탓에 고립될 수도 있었지만, 독자적 정치세력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다. 낙동강 지류 감천(甘川)의 풍부한 물과 개령평야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실제로 감문국 유적에서는 가야식 토기가 출토되는 등 신라와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감문국은 험한 산세에도 불구, 사통팔달의 지리적 요건을 갖춰 경제적으로도 번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령의 대가야(大伽倻)는 물론 상주의 사벌국(沙伐國), 신라의 모태인 경주 사로국(斯盧國)과 교역하며 탄탄한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 향토사학계 의견이다.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 4편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바탕 삼아 번성한 감문국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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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지도첩인 동여비고(東輿備攷)에 표현된 김천의 모습. 산지에 둘러싸인 감문국의 중심(개령·開寧) 한가운데로 감천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김천향토사연구회 제공>

# 작지만 강한 나라 감문국


18세기 조선의 역사학자 이종휘(李種徽·1731~1797)가 지은 ‘동사(東史)’에는 감문국의 규모를 짐작할 만한 기록이 나온다. 기록에는 “아포가 반란을 일으키자 삼십인의 대군으로 밤에 감천을 건너려 했으나 물이 불어나 되돌아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30인을 대군이라 표현한 사실로 미뤄봤을 때, 감문국의 규모는 600~700가구(인구 4천여명) 정도로 추정된다. 일부 향토사학계는 “30인이라는 표현이 상징적이어서 더 많은 군사가 (감문국으로)쳐들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감문국의 규모 또한 더 크게 보는 견해도 있다.

비록 나라의 크기는 작았지만 다른 읍락국가의 침략이 빈번했다는 기록은 감문국의 경제적 상황과 문화적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문국이 상주지역의 읍락국가 사벌국처럼 드넓은 평야를 가졌다거나, 고령의 대가야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독자적 문화를 향유했다는 증거다.

향토사학계는 감문국의 역사가 신라에 의해 가려졌지만 매우 찬란했다고 주장한다.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감문국의 문화가 찬란하고 고도화됐기 때문에 신라가 탐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 위원은 “승자의 역사에만 집착하면 패자의 역사는 잊어진다. 역사적 사료와 함께 구전(口傳)에도 귀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김천지역에는 감문국과 관련한 수많은 구전이 전해져 내려온다. 기록에는 없지만 대를 이어 감문국의 이야기가 이어져 오고 있다. 감문국 공주와 신라 청년의 러브스토리에서부터 신비의 우물물을 마시고 천하장사가 됐다는 감문국 원룡장군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감문국 멸망 당시 김천시 감문면 백운산 속문산성에서 저항했던 80명 군사에 대한 이야기도 구전으로 이어져 온다.

감문국이 독자적 세력을 유지했다는 증거는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3세기 후반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의 기록에 따르면 3세기 중엽 영남지방에는 가야 계열인 변한계 12국이 있었다고 하는데, 감문국 또한 변한에 속한 김천지방의 소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근구 전 김천향토사연구회장 또한 감문국을 가야권(伽倻圈)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는 감문국을 신라 중심의 진한 연맹체 일원으로 보는 학설과 대비된다. 동사(東史) 가야세가(伽倻世家)편에서도 ‘대가야는 고령을, 소가야는 감문소국을 말한다’고 밝혀 놓아 감문국이 독자적 문화를 향유한 국가였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백두대간 줄기에 둘러싸인 지형 덕
의식주 등 차별화된 고유특성 가져
‘빗내농악’도 감문국 군사굿서 전래

다른 읍락국가의 침략 빈번 기록은
경제·문화수준 아주 높았다는 방증

18세기 문헌엔 “소가야는 감문소국”
‘신라 중심의 진한 연맹체’說과 대비
‘가야-신라 중개무역’ 국부축적說도

 

 


# 감천(甘川) 줄기에서 번성한 감문국

향토사학계는 감문국이 번성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조건으로 지형적 특성을 꼽는다. 백두대간 줄기에 둘러싸인 감문국이 의식주에서부터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감문국의 군사굿에서 비롯되었다는 김천의 빗내농악이 김천만의 독특한 문화로 인정받는 것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천시 개령면 일원의 충적평야 또한 감문국이 성장의 주요 배경이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감천의 물은 매년 범람해 감문국의 농토를 비옥하게 만들었다. 별다른 시비법이 없었던 삼한시대에도 감문국 농민들은 높은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감천이 선사한 풍요로움은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동시에 수많은 물산의 생산과도 직결되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전후까지 김천시 어모면에서 생산된 왕골 돗자리는 영남지역 일대에서 강화도 화문석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했다. 어모면의 돗자리는 감천변의 비옥한 습지에서 자라난 왕골로 만들었다. 감문국은 감천이 선물한 자원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문국의 중심지인 감천 하류지역은 역사적으로도 전략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2선봉장을 맡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영남에서 전라도와 충청도로 향하는 길목인 감천변에 보급기지를 두고 전투를 지휘했다. 20세기 초 경부선철도가 개통됐을 때에도 감천변인 김천시 어모면의 기차역에서는 큰 장이 섰다.

감천의 맑은 물도 감문국의 융성에 한몫했다. 대리석이 많은 감천 발원지 주변 산지의 특성 덕분에 하천에는 늘 모래가 풍부하다. 모래는 물을 정화했고, 상류부터 하류에 이르기까지 감천에 기대어 살던 많은 사람들은 맑은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맑은 물과 넘치는 농업생산량은 가축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됐다. 김천은 과거 전국 규모의 우시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토종 돼지인 지례돼지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향토사학계는 “가축생산까지 더해지면서 감문국은 더 강한 경제력을 지닌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활발한 대외교역을 펼치다

감문국이 활발한 대외교역을 펼친 국가였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진·변한의 읍락국가와 교류하면서 이익을 남겼다는 것. 감문국은 금강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영남권의 다른 읍락국가보다 북방의 문화를 빨리 흡수할 가능성이 높았다. 감천으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증대 또한 활발한 대외교역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 향토사학계 주장이다.

특히 감문국이 고령의 대가야 세력과 활발한 교류를 펼쳤다는 주장도 있다. 감문국이 가야세력과 신라 간 중개무역을 했다는 의견이다.

감문국 유적에서 다량 출토된 토기 역시 교역의 주요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조성시기는 알 수 없지만 김천시 대항면의 추풍령 일원에는 옛 가마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석호 김천향토사연구회장은 “어릴 때 (추풍령 부근)그곳에서 수많은 토기 파편이 나왔다. 감문국이 토기생산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토기와 관련된 지역의 내력 덕분인지 김천은 ‘옹기(甕器)’로도 유명했다. 구한말 조정의 탄압을 피해 김천의 산골로 흘러들어온 가톨릭 신자들은 옹기를 구워 내다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할아버지가 김천 직지사 아래에서 옹기를 구웠으며, 김 추기경의 호(號) 또한 ‘옹기’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참고문헌 =‘유적으로 고찰한 감문국’ ‘(진·변한사 연구)진·변한의 성립과 전개’ ‘계명사학 제23집’ ‘국역 김천역사지리서’ ‘디지털김천문화대전’
▨ 자문단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이석호 김천향토사연구회 회장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공동기획 :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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