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5] 김천 고대국가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22> 감문국의 전설 ② 나벌들·장수천(개령면 신룡리)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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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30   |  발행일 2015-09-30 제24면   |  수정 2021-06-17 15:05
羅씨 부부, 예언 좇아 ‘곰 형상’의 山 아래 터 잡으니 ‘장군’을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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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개령면 신룡리에 위치한 나벌들. 감문국 시절 나씨 성을 가진 장군이 들판에 있던 장수천의 물을 마시고 힘이 세어졌다고 해서 나벌들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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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브리핑>


김천의 읍락국가 감문국은 1천500여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전설은 현재까지 남아 전해진다. 해당 전설은 감문국이 남긴 무형(無形)의 유산으로, 감문국이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상상력을 전설에 덧대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 22편은 ‘나’씨 성을 가진 감문국 장군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는 나벌들과, 물을 마시면 힘이 세어진다는 장수천 전설에 관한 이야기다.


“임신할 아이는 장차 장군될 인물
남서쪽으로 가 새의 안내 받으라”
노인의 말 듣고 정착하고선 득남

하지만 아들 유난히 병치레 잦아
어느날 다시 찾아온 노인 말하길
“여의주 같은 돌 놓인 곳에 우물 파
그 물 마시면 금방 힘이 세질 것”
신비한 ‘장수천’ 전설로만 전해

 

 

◆ 노인의 예언을 듣다

가을 해가 설핏하니 서편으로 기울 무렵, 소나무가 우거진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남녀가 있었다. 먼 길을 떠나온 듯 지치고 피곤한 기색의 젊은 남녀였다. 등에 진 허름한 봇짐이나 남루한 입성으로 봐선 몹시 가난한 집안의 부부로 보였는데 여인은 임신한 듯 배가 불러 있었다.

“다리가 아프군요. 잠시 쉬었다 가면 어떨까요.”

가쁜 숨을 내쉬며 여인이 물었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이 가까운 소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 동안 남자는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문득 남자의 얼굴에 반가운 표정이 떠올랐다.

“여보, 저길 보구려. 당시 노인이 예언했던 게 바로 저 산 아니오?”

남자가 가리키는 산등성이에 시선을 주던 여인의 표정에도 기쁨과 경이의 빛이 어렸다.

“그렇군요. 완연히 곰이 머리를 내민 모양새네요.”

부부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까치 한 마리가 길섶에 내려앉더니 두어 번 깍깍거리며 울었다. 그런 다음 종종거리며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어서 자신을 따라오라는 몸짓 같았다.

“노인의 예언이 틀림이 없는가 보오. 어서 저 까치를 따라갑시다.”

남자가 여인을 독촉해 길을 서둘렀다.



◆ 까치를 따라온 부부

사실 그들 부부는 난생 처음으로 정든 고향을 등지고 먼 길을 떠나온 것으로, 그렇게 된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원래부터 가난한 집안에다가 어려서 양친을 여읜 탓에 남자는 머슴살이 등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천성이 어질고 착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어느덧 청년이 된 남자는 이웃집 노파의 중매로 역시 가난한 집안의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이었다.

해가 어둑할 무렵, 고을을 지나던 한 초라한 행색의 노인이 부잣집 대문을 두드렸다. 욕심 많고 성정이 사나운 부잣집 주인은 걸인을 당장 내치라고 하인들에게 호통을 쳤다. 당시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남자는 쫓겨난 노인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초옥으로 데려갔고 하찮은 좁쌀죽이나마 정성껏 대접했다.

음식을 먹으며 형형한 눈길로 부부의 관상을 살피던 노인은 혀를 차며 말했다.

“두 사람은 여기서 이렇게 고생을 하며 살 팔자가 아니오. 곧 부인이 임신을 할 것이고, 그 아이가 자라면 나라에 큰 공을 세울 장군이 될 것이니 속히 여길 떠나시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부부에게 노인은 길을 떠나 남서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곰이 고개를 내민 형상의 산을 만날 것이며, 새가 안내한 자리에 터를 잡으면 장차 훌륭한 인물이 날 것이라는 기묘한 예언을 남겼다. 노인이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놀랍게도 임신을 했고,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부부는 결국 길을 떠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까치를 따라 얼마간 산길을 내려와 보니 소담한 고을이 부부의 눈에 들어왔다. 앞쪽은 맑고 깨끗한 시내가 흘렀으며 양편으로 비옥한 토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또 고을 뒤편으론 나직한 산들이 팔로 감싸듯 둘러서 있어 첫눈에도 여유롭고 살기 좋은 지형이었다.

고을에서 약간 떨어진 외진 곳에 오막살이를 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는 아이를 낳았다. 사내아이였는데, 무슨 까닭인지 유난히 병치레가 잦아서 부모의 속을 끓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잘 자라지도 않고, 몸이 비쩍 말라가기만 하는 것이 조만간 죽을 것만 같았다.



◆ 감문국 장군이 된 소년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집을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예전의 그 노인이었다. 아이의 상태를 살피던 노인은 안타까운 얼굴로 혀를 차며 말했다.

“내 이럴 줄 알고 부러 시간을 내어 여기를 찾아왔소이다. 깜빡 잊고 말하지 못했지만 이 고을 위쪽 산 아래에 연못이 하나 있소. 그 연못은 뒤편 산자락의 물줄기가 내려온 것으로, 마치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국으로 생겨 있어 장차 장군이 될 아이의 기를 억누르고 있소. 따라서 그 물을 마실수록 아이의 기운은 더 약해질 뿐이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부부에게 노인이 방법을 일러주었다.

“저 아래쪽 초지를 살펴보면 여의주처럼 둥글고 하얀 돌이 놓인 장소가 있을 터이니 그 자리에 우물을 하나 파시오. 그 물을 마시면 아이는 금방 건강을 되찾아 튼튼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장차 나라에 큰 공을 세울 장군이 될 것이오.”

노인의 예언대로 새롭게 판 우물의 물을 먹은 뒤로 아이는 놀랍도록 건강하게 성장했고, 열두 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 완력이 장정 열 명을 상대할 정도였다. 열다섯에 자진하여 병사가 된 소년은 곧 힘과 지략, 용맹을 인정받아 마침내 감문국의 장군으로 발탁되었다. 노인의 예언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감문국 사람들은 나 장군이 마시고 힘이 세진 신비의 우물을 장수천(將帥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울러 후일에 감문국을 정벌한 신라장수 석우로가 장수천의 물을 마시고 감문국에 훌륭한 장군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장수천이 있던 하신마을을 통째로 폐동시켰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온다. 

 

박희섭 <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 참고문헌= ‘유적으로 고찰한 감문국’ ‘(진·변한사 연구) 진·변한의 성립과 전개’ ‘계명사학 제23집’ ‘국역 김천역사지리서’ ‘디지털김천문화대전’ ‘대구·경북 신석기 문화 그 시작과 끝’ ‘신라문화 제38집 별쇄본. 삼국사기 열전에 보이는 4~5세기 신라인의 활약상’ ‘김천시사’ ‘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지표조사’ ‘대구·경북 문화재 약탈 스토리(영남일보)’
 

▨ 자문단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이석호 김천향토사연구회 회장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노중국 계명대 사학과 명예교수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권태을 경북대 명예교수

공동기획:김천시


■지명 유래>>>> 장수천 있던 들판 ‘나벌들’이라 불려

나벌들·장수천 전설의 배경인 김천시 개령면 신룡1리의 다른 지명은 ‘곰내기’다. 

‘곰내기’는 마을 뒷산인 광덕산의 형태가 곰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광덕산의 모습이 마치 곰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 같다고 해 ‘곰내미’라고 하다가 ‘곰내기’로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곰내기는 조선시대까지 개령현 서면에 속했으며, 상신·중신·하신마을로 구성돼 있었지만 하신마을은 일찍 폐동됐다고 전해진다. 

상신·중신 두 마을은 1914년 인근의 오룡동과 통합해 중신의 ‘신(新)’자와 오룡의 ‘용(龍)’자를 합쳐 신룡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장수천은 지금은 폐동이 돼 농경지로 변한 옛 하신마을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감문국 시절, 나씨 성을 가진 장수가 장수천의 물을 마시고 힘이 세어졌다고 한다. 

또 장수천이 있던 마을 앞 들판은 나 장군의 성을 따 ‘나벌들’이라 불리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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