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군위 인각사와 학소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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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9   |  발행일 2015-10-09 제38면   |  수정 2015-10-09
‘삼국유사’의 고향…학 떠난 학소대·인각 없는 인각사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두껍고 육중한 단애다. 매운 끈기가 느껴지는 부동의 직립이다. 이런 끈기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데가 있다. 아래에는 천이 흐른다. 좁고 가난하게 흘러온 물은 벼랑 아래서 활짝 펼쳐져 잠시 머무르다 다시 좁고 가난하게 흘러간다. 이 벼랑 앞에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쓰며 생의 마지막 5년을 보낸 인각사가 자리한다. 기린의 뿔 인각(麟角)은 독각(獨覺)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절집에 앉아 글 쓰던 선사에게 이 벼랑과 천은 위엄 있는 독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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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각사 앞 학소대.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 절벽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 기린이 뿔을 걸고 학이 둥지를 틀던 학소대

벼랑은 학소대, 옛날 학들이 이 벼랑에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한다. 학소대 좌우는 송림이 우거진 석산이다. 벼랑 아래에는 위천(渭川)이 흐른다. 여름 동안 물놀이객으로 가득했다는 천변에는 낮곁을 소요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을 뿐. 스치는 바람도 내린 빛기둥에도 벌써 차가움이 배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각사는 화산에 있으며, 동구에 바위 벼랑이 우뚝한데, 옛 말에 기린이 이 벼랑에 뿔을 걸었으므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으로 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린(麒麟)은 용, 봉황, 거북과 함께 상서로운 영물로 여겨지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 말을 닮은 발굽과 갈기를 갖고 있는 기린은 살아있는 풀을 밟는 일 없고, 다른 짐승을 해치지 않는다는 영물이다. 곰이 인간이 되었다는 기이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삼국유사를 쓸 때 일연선사의 눈에는 저 벼랑에 서린 인각의 자취가 보였는지도 모른다.

화산(華山)이 기린을 닮았다고도 한다. 화산의 북쪽 기슭, 즉 기린의 뿔 자리에 절집을 짓고 인각사라 했다는 이야기다. 이 또한 그럴 듯하다. 선사는 인각처럼 앉아 독각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 몇 해 전 보았던 인각사의 풍경 속에 이 단애가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는 나쁘면서도 편리한 시절이었나. 여러 해가 지나도 변함없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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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각사 전경. 왼쪽부터 일연학연구소, 종무소, 극락전, 명부전, 국사전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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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28호인 보각국사정조지탑과 경북 유형문화재 제339호인 인각사 석불좌상.



◆ 학소대 앞 인각사

인각사는 조금 변했다. 건물들이 조금 더 들어선 듯하고, 나란히 모셔놓은 석불좌상과 일연선사의 사리탑 아래 석축단이 높아졌다. 미륵당의 석불 좌상도 변한 모습이다. 머리에 씌워져 있던 원통형의 모자가 없어졌고 허리 아래를 감싸고 있던 법의도 사라졌다. 법의를 벗겨낸 자리에 핏빛의 얼룩이 보인다. 어쩐지 엄숙하고 소슬한 기분이 든다. 코를 떼어 내 가루로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이 남긴 수난의 모습은 여전하다. 현재 경내에는 극락전, 국사전, 명부전, 미륵당, 산령각, 보각국사비, 삼층석탑, 일연학연구소, 일연선사 생애관, 종무소, 요사채 등이 자리한다. 지금 인각사의 건물은 거의 대부분 최근의 것이다.

 

인각사의 대부분 건물은 최근 것
일연선사 생애관에선 특별전
인각사 옛터는 여전히 발굴중
고려시대 절 규모 밝혀 복원 계획

 


일연선사 생애관에서는 ‘일연선사와 삼국유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특별전은 그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전시 내용은 특별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실망스럽지만 사실 근 1천년 전의 인물에 대해 더 이상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불을 켜고 들어가 불을 끄고 나오는 몇 분 사이 너그러움이 생긴다. 전시실 앞에 서면 인각사의 대부분 당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각사를 둘러싼 산들은 높지 않지만 손과 손을 맞잡고 빙 둘러서서 이 절집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부모가 갓 태어난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듯, 조심스럽고 온화하게. 절집은 아이의 잠처럼 고요하다. 터의 내력은 오래되고 역사의 무게 또한 무겁지만, 현대는 신생아처럼 고독하다. 인각사의 당우들은 이 고독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물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정신은 큰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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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인형극장. 인각사 가는 길 도로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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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선사 생애관 내부. 현재 ‘일연선사와 삼국유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 인각사는 지금도 발굴 중

인각사의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선덕여왕 1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선덕여왕 12년에 원효선사가 창건했다는 것이다. 인각사의 안내판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사찰이라고 적혀 있다. 인각사는 고려 충렬왕 10년인 1284년에 왕명으로 크게 중건되었는데, 당시 구산문의 도회(都會)를 개최할 정도로 사세가 컸다 한다. 바로 그 시절에 고려의 국존인 일연스님은 인각사에서 생의 마지막 5년을 보내며



삼국유사를 비롯해 불교 서적 100여권을 저술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인각사는 거의 폐사되었고 그 역사는 흙속에 묻혔다. 여러 세기의 영광과 변화를 거쳐 퇴락에 이르렀지만 그 터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1992년부터 순차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기록이 전무했던 고려 이전의 인각사는 사세가 미미했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발굴을 통해 지방사찰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륵당의 뒤편, 크게 휘도는 도로변에 키 낮은 잡풀로 뒤덮인 대지가 펼쳐진다. 인각사의 옛 터로 지금은 발굴을 마치고 터를 다져놓은 모습이다. 그 속에 역대의 부도탑과 재현된 보각국사비가 서있다. 종무소 뒤쪽 도로에 면한 부지에서는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 고려시대의 절 규모를 밝혀 복원할 계획이다.

떠나는 길에 도로변에 만국기를 펄럭이며 서있는 ‘삼국유사 인형극장’을 본다. 창고형의 소박한 이 극장에서 지난 8월, 제1회 인형극제가 열렸다. 일연스님과 삼국유사를 주제로 한 인형극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성황을 이뤘다 한다. 전설과 설화의 보고(寶庫)인 삼국유사는 또한 군위의 보고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군위IC에서 내려 28번 국도를 타고 의흥, 고로 방향으로 간다. 화수삼거리에서 좌회전해 908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보면 오른쪽에 삼국유사 인형극장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인각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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