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영화‘로봇, 소리’해관役 이성민

  • 윤용섭
  • |
  • 입력 2016-01-29   |  발행일 2016-01-29 제40면   |  수정 2016-01-29
“영화 배경이 대구라 좋아…고향에서 찍는다는 생각에 늘 들떠 있었다”
20160129

고향은 봉화이지만
대구는 내 연기 인생의 뿌리이다
2000년 상경하기 전까지 연극활동

나처럼 평범하게 생긴 배우 흔찮아
해관役 연기에 장점이 됐던 것 같다
캐릭터에 몰입돼 감정 억제 힘들어

결혼 10년차 때 경주 여행간 이후로
바쁘다는 핑계 대고 가족여행 못 가
올해는 꼭 여행 가는 것이 목표다

영화 검사외전·리얼로도 찾아뵐 것

오늘도 어김없이 해관은 10년 전 실종된 딸 유주(채수빈)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선다. 모두가 포기하라고 말하지만 그는 이 일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정체불명의 로봇이 나타난다. 전세계 언어에 능통하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인식할 수 있으며, 목소리나 전화번호만으로 위치 추적이 가능한 신통방통한 능력을 지녔다. 해관은 이 로봇이 자신의 딸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긴다. 게다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까지 갖췄으니 막다른 길에서 고군분투하는 해관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로봇에게 ‘소리’라는 이름까지 지어준 해관은 이제 그를 길동무삼아 딸을 찾는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영화 ‘로봇, 소리’의 줄거리는 이렇다.

“한국에서 흔치 않은 소재에 이야기까지 감동적이어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한 이성민은 자신이 연기한 해관을 “자식을 둔 부모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부모는 자식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지 않나. 그 점에서 가족이 보면 좋은 영화다. 잃어버린 딸을 찾아 다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특히 이번 작품은 뭔가 새로운 작업을 해본다는 의미에서 이성민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반면, 데뷔 후 첫 원톱 주연이라는 부담감과 책임감도 함께 따랐다.

“상업영화에서 내 이름이 크레딧의 맨 처음에 나온 건 처음이다. 그래서 무척 부담되고 긴장된다. 얘(소리)라도 말을 할 줄 안다면 그나마 좀 의지라도 하겠는데.(웃음) 영화가 잘못되면 그 책임은 온전히 내가 다 짊어져야 한다. 때문에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잠을 통 못잤다. 역시 주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그동안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내가 ‘너무 무심하고 소홀했구나’하는 반성이 절로 들었다.”

무뚝뚝하지만 정 많고,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로 돌아온 이성민과 로봇과의 만남, 분명 관객의 기대와 관심을 끌어올리는 요소다. 드라마 ‘미생’과 ‘골든타임’ 등을 통해 국민 멘토로 수식되는 이성민의 이색 케미스트리라는 점에선 특히나. 이성민 역시 “로봇과 연기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나”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소리를 보는 재미가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리가 연기를 아주 기막히게 잘한다.”(웃음)

20160129

▶로봇(소리)과 호흡을 맞췄다. 낯선 작업이었을 텐데 어땠나.

“나름 재미있었다. 소리는 대부분 계산된 연기를 한 셈이라 서로의 호흡이 관건이었는데 의외로 호흡이 잘 맞았다. 물론 현장에서 소리를 조종하는 분과 가이드 연기자가 따로 있긴 했다. 특히 그분들의 기발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동작과 애드리브가 참 주효했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소리를 다시 만났을 때 소리가 반갑다는 표시로 한 바퀴 돈다거나 하는 장면들이다. 소리와 감정적인 교감을 나누는 부분 역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소리의 왼쪽 눈이 항상 카메라 렌즈 때문에 빨간 불빛이 반짝였는데 나는 그 눈을 보면서 소리가 감정을 지닌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연기에 임했다. 다만 아쉬운 건 소리의 목소리를 (심)은경이가 담당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교감이 이뤄질 수 있었을 테고 연기적인 접근도 훨씬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소리와의 호흡이 좋았다.

“그만큼 은경이가 잘 해준 거다. 특히 좋았던 건 나도 미처 생각을 못한 건데 소리 목소리에 변화를 준 점이다. 내비게이션처럼 늘 한결같거나 정확한 목소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기자시사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은경이가 극의 진행상황에 따라 조금씩 목소리에 미묘한 변화를 주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덕분에 소리와의 교감이 더욱 깊이 있게 담겨진 것 같다.”

20160129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로봇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일단 호기심을 자극했다. 읽어보니 시나리오도 좋았고 새롭고 신선했다. 특히 결정적으로 좋았던 건 배경이 대구라는 점이었다. 고향은 봉화지만 대구는 내 연기인생의 뿌리이다. 2000년 서울로 올라가기 전까지 줄곧 대구에서 연극활동을 해왔으니 나에겐 제2의 고향과 같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고향에 가서 찍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항상 들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항상 느끼는 건 어떤 역할이든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함과 보통사람의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의도적인 접근이었나.

“맞다. 그렇게 접근하는 편이다. 검사, 변호사, 형사, 의사 등 많은 직업군을 연기했지만 캐릭터의 장르적 면에 맞추기보다는 최대한 일반화하려고 했다. 살아오면서 만나본 사람 대부분이 그렇더라. 행색이나 외형, 말투를 보고 그 사람의 직업을 짐작하기는 참 힘들다. 그런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연기를 해온 세월도 있으니까 이젠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별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었을 때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그랬는데 이 일을 계속하면서 차츰 내 방식과 철학이 만들어진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앞서 말한 일반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이다. 그건 배우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연기적 의지이기도 하다.”

▶해관은 일반적 기준에서 보면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다. 어떻게 접근했나.

“10년 동안 실종된 딸을 찾아 다닌다는 건 사실 일반적이진 않다. 그의 모든 일상은 딸의 행방을 찾는 데 집중돼 있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을 테고 때문에 해관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봤다. 10년 동안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으니 행색이 좋을 리가 없다. 꺼칠한 피부와 손질하지 않은 머리 등 피로감에 찌든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데 솔직히 배우 중에서도 나처럼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생긴 사람은 흔치 않다. 그 점이 장점으로 작용해 해관의 모습이 좀 더 사실적으로 보여진 것 같다. 아무튼 그 점을 보더라도 나같은 배우들이 먹고 살 수 있다는 건 한국영화의 어마어마한 변화다. 예전같으면 절대 배우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할 얼굴들이 지금 주목을 받고 있다. 누구보다 (송)강호 형의 영향이 크다.(웃음) 덕분에 사투리도 단점이 아닌 세상이 됐으니까. 사투리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가 상영된다는 건 그만큼 대중도 다양함을 수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집에서는 어떤 아빠인가.

“나는 해관처럼 소통이 안 되거나 가부장적이진 않다. 아이(중학교 3학년)를 학원에 데려다줄 때 차 안에 음악을 최대로 틀어놓고 간다. 딸이 ‘EXO’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내가 미리 CD를 챙긴다. 아무튼 집에서 서열을 매긴다면 3위다. 딸에게는 100전98패이고 아내에게는 100전100패다. 그래서 내가 만약 극중 상황에 똑같이 처한다면 해관처럼 딸을 찾아다닐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봤다. 사실 해관이 이렇게 행동하는 건 실종될 당시 딸에게 준 상처와 아픔 때문이다. 그런 죄책감과 미안함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거지. 그런 경우라면 나도 아마 딸을 찾아다닐 것 같다. 물론 유주는 대구지하철 참사 때 죽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애써 딸의 죽음을 부정하며 그녀를 찾는 일종의 고행을 자처한다. 딸을 가진 아빠로서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말도 마라. 편집된 장면에선 더했다. 그런데 매번 감정이 들어갈 만하면 감독님이 ‘커트’를 외치는 거다. 후반부를 위해 조금 참아보자고 하더라. 그런데 공원에서 유주 친구를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했다. 10년을 찾아 헤매다가 처음으로 딸의 목소리가 담긴 메시지를 들었는데 어떻게 울지 않겠나.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됐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이 장면에선 좀 더 (감정을) 밀어붙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도 참으라는 거다. 감정적으로 (관객에게) 너무 무리를 주지 않으려는 감독님의 의도이자 성향인 듯했다. 사실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우리와는 좀 다른 것 같고. 그렇다면 사고가 난 지하철 선로에서의 장면도 그렇게 감정을 억누르고 있어야 되는지 물었다. 솔직히 그 장면까지 감정을 참기가 참 힘들었다. 다행히 거긴 계산된 장면이니까 마음껏 울어도 좋다는 거다. 아무튼 해관의 감정을 이해하고 캐릭터에 이입된 나로서는 그 점이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감정을 참았던 게 클라이맥스를 위해 옳았다고 본다.”

▶작품마다 감정 몰입을 많이 하는 편인가.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좀 예민한 건 있다. 그래서 오류도 나곤 하지만 일단 질러본다.”

▶소리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없었나.

“딱히 에피소드가 있는 건 아닌데 소리가 타고 있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할머니들을 몇 번 봤다. 한번은 골목에서 촬영을 하는데 휠체어가 혼자 어디로 가고 있는 거다. ‘뭐지? 소리가 혼자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하면서 의아해하고 있는데 나중에 똑같은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오고 있는 거다. 쉼표의 기능으로 그런 신을 넣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임시완 인터뷰 때 겸손에 대한 당신의 얘기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고 말하더라.

“그런가. ‘겸손해야 돼’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건 아니고 ‘미생’이 끝나고 단체로 세부로 놀러갔을 때 시완, (변)요한이와 같은 방을 썼다. ‘미생’에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나왔고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덕에 순식간에 삶이 뒤바뀐 주인공들이 생겨났다. 두 사람도 거기에 해당되겠지. 나는 이미 드라마 ‘골든타임’ 때 그런 경험을 했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주변상황이 바뀌고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대중은 배우를 사랑할 권리도 있지만 잊어버릴 권리도 있다. 시완이 같은 경우는 나이에 비해 과할 정도로 생각이 깊고 티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잘 해나갈 것 같다.”

▶그렇다면 ‘골든타임’ 이후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되는 건 뭔가.

“일단 내 삶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판타스틱해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고.(웃음) 공연 끝나고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보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는 거다. 애써 태연한 척은 했지만 집에서도 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무척 어리둥절하고 힘들어했다. 혼란스러웠겠지. 만약 젊었을 때 그런 경험을 했다면 아마 수습이 안 됐을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연기를 하겠다고 목표를 삼은 건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리겠다는 것 아닌가. 그게 이루어지는 순간이니 기쁜 건 사실인데 왠지 모를 허탈감이 느껴졌다.”

▶올해 계획이 있다면.

“영화 ‘검사외전’과 ‘리얼’ 그리고 드라마 ‘기억’으로 다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가족 여행을 갈 생각이다. 아니, 꼭 가야 한다. 결혼 10년차에 간 경주 이후로 지금껏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가족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너무 미안해서 이제 여행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뤄야 할 목표가 됐다.”(웃음)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 프리랜서 dada2450@hanmail.net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