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허굴산(해발 682m,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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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5   |  발행일 2016-02-05 제39면   |  수정 2016-02-05
정상 아래 동굴에 부처님 있는 것 같아 올라가보면 온데간데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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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사에서 농로를 따라 장단교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허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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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흔들바위를 닮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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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직전에 만나는 거대한 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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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에 만난 전망바위에서 보이는 조망. 금성산과 오른쪽으로 악견산이 나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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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창의기념관


들머리 지나면 아기자기한 바윗길
한 고빗길 오르니 흔들바위에 이어
용써 오르면 10년 더 산다는 용바위

정상보다 하산길 전망바위에 서면
멀리 팔공산 능선까지 한눈에 조망

신령 배꼽의 돌멩이 뽑자 김 빠지며
산 전체가 속이 비었다 해서 붙여진
마고할미-신령 얽힌 산이름도 재미

유난히 포근한 겨울을 보내며 겨울다운 겨울산행에 목말라하던 차, 주말부터 한파가 몰려온다는 소식이다. 그래, 추워야 겨울이지. 눈이 쌓였을 법한 산을 꼽아두고 산행에 나선 당일에는 전국에 한파특보가 내려지고 국립공원 10곳이 출입이 통제된 상황이다.

대구를 벗어나자 밤새 내린 눈으로 길까지 얼어붙었다. 엉금엉금 들머리에 도착하니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다. 추위에 대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을 하고 차에서 내리니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칼바람이 불어댄다. 장단교를 건너면 농로를 따라 왼쪽으로 돌아 오르도록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아무도 내딛지 않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7분 정도 오르니 무덤 1기를 지나고 곧 바윗길이 시작된다. 20분을 더 오르자 발아래 장단리 마을 뒤로 금성산(609m)이 마주하고 있고, 그 오른쪽으로 악견산(634m)이 포개져 보이는 북쪽 방향이 트인 바위를 만난다. 허굴산과 더불어 합천 대병면의 삼산으로 불리는 산으로 높이도 비슷하고 아기자기한 바윗길인 데다가 생김도 비슷하다.

백두대간의 남덕유산에서 뻗어 내린 지맥 하나가 월봉산(1천288m), 검은산(1천351m), 누룩덤(1천331m) 등의 고봉을 일으키고 3번 국도의 바라기재를 지나 낮은 산들로 변해 나아가다 크고 높은 황매산을 이룬다. 여기서 한 줄기가 뻗어 허굴산과 금성산으로 이어진다.

허굴산은 산 전체가 속이 비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황매산에 살던 마고할미 박랑이 가려움증에 시달려 고생하고 있는데 꿈에 황매산 발치에 사는 허굴산 신령이 나타나 “나는 몸속에 더운 김이 가득 차 고생하고 있으니 그대가 내 배꼽 부분에 박힌 돌멩이를 뽑아 달라. 그러면 더운 김이 그곳으로 빠져 고통이 멎을 것"이라며 통사정을 했다. 박랑 할멈이 배꼽 부분에 박힌 돌멩이를 뽑자 허굴산 속에 가득 찼던 더운 김이 왈칵 빠져 나오면서 박랑의 온몸을 감싸는 바람에 가려움증이 씻은 듯 나았다고 한다. 또 정상 아래 동굴에 부처님이 앉아있는 것같이 보여 길을 가던 스님이 바랑을 벗어놓고 산을 올라가보면 부처님은 온데간데없고 빈 굴만 있다 하여 허굴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한참을 올랐으니 추위가 가실 법도 한데 도리어 손끝이 아려 두꺼운 장갑을 하나 더 끼고 귀까지 덮이는 모자로 바꿔 써본다. 간사하게도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껴입어도 몸이 오그라들어 마디마디 시려드니 웬 추위가 이리도 매서울까 볼멘소리가 절로 나온다. 바윗길 사이로 오르는 길은 눈이 덮여 있어 네 발로 기어오르거나 눈을 쓸어내고 디뎌야 해 발디딤이 조심스럽다.

한 고빗길을 오르니 마치 설악산의 흔들바위를 닮은 바위가 벼랑에 위태롭게 서있다. 동행한 친구 둘이서 흔들어 보지만 꿈쩍도 않는다. 10분 정도 오르니 오른쪽으로 가운데가 갈라진 바위인데 올라서면 평평한 바위를 만난다. ‘용바위’라 불리는데 용을 써서 오르면 10년을 더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이 얼어붙어 오를 엄두를 못 내고 곧장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경사가 다소 완만하다가 정면으로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도록 길이 나있다. 이 구간만 올라서면 크게 어려움 없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정상을 바로 앞두고 특별한 이정표 없이 왼쪽으로 표식기가 주렁주렁 걸린 갈림길을 만난다. 청강사에서 올라 만나는 지점인데 길은 희미하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숲이 가려 조망은 어렵고, 바위 위에 금속으로 만든 정상 푯말이 세워져 있다. 하산은 오르던 길 정면의 길과 왼쪽 아래쪽으로 두 갈래로 갈라진다. 정면은 허굴산성터를 지나 진동골로 향하는 길이고, 왼쪽은 약샘을 지나 청강사로 가는 길이다. 일행은 왼쪽 청강사 길을 택한다. 내리막 경사가 심해 스틱이며 아이젠까지 야무지게 챙겼는데도 바윗길이라 잡을 수 있는 나뭇가지를 잡는 것이 더 편하다.

작은 능선 끝에 탁 트인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합천 일대의 산들이 도열해 있고, 멀리 팔공산 능선까지의 조망이 시원스럽다. 바위를 내려서서 골짜기 안쪽으로 가면 10여m 높이의 바위 아래에 샘터가 있다. 겨울 가뭄과 한파에도 얼지 않고 대나무로 만든 홈통을 따라 콸콸 샘물이 흘러내린다. 위장병과 피부병을 고친다는 약샘이다. 보통 때면 이가 시릴 정도이겠지만 상대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지는 약수를 한 모금 하고 내려서면 곧 밤나무 밭 사이로 길이 나 있다. 밤나무 밭을 가로질러 청강사로 향하는데 눈길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 멧돼지 발자국처럼 큰 발자국과 고라니 발자국처럼 작은 발자국들이 길게 이어지더니 눈길에 미끄러진 듯 선명하게 찍혀 있다. 적잖게 당황했을 거라는 생각,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상상으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암자 같은 작은 사찰인 청강사 입구에 이르자 몇 마리의 강아지가 짖어대는 통에 잠시 둘러보려다 그냥 돌아선다. 15분 정도 시멘트 포장길을 따르면 오른쪽으로 축사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넌다. 장단마을 앞까지 가서 도로를 따라도 되지만 왼쪽 하천 둑 농로를 따라 들머리인 장단교로 간다. 왼쪽으로 지나온 산 능선을 바라보며 장단교까지는 20분이면 다다를 수 있다.

대구시산악연맹 이사 apeloil@hanmail.net

☞ 산행길잡이

장단교 -(60분)- 너럭바위 전망대 -(50분)- 갈림길 -(10분)- 정상 -(30분)- 약샘 -(25분)- 청강사 -(20분)- 장단리 -(20분)- 장단교

허굴산은 경남 합천군 대병면의 삼산으로 불리는 산 중 하나로, 시간 여건에 맞추어 마주한 금성산과 연결해도 하루 산행이 가능할 만큼 비교적 짧은 코스다.

정상부의 기암괴석으로 산행의 지루함을 덜 수 있어 좋고, 진달래며 철쭉이 피어나는 봄에도 괜찮은 산행지가 될 것 같다. 순수 산행은 약 6㎞로 3시간30분이 소요된다.

☞ 교통

88고속도로 고령IC를 빠져나와 좌회전으로 삼거리까지 간 다음 합천·고령 방향의 33번 국도로 진주 방향으로 합천읍까지 간 다음 남정교차로에서 합천호 이정표를 따라 조정지댐과 영상테마파크를 지나 용문2교를 건넌다. 약 3㎞를 더 가면 합천호휴게소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왼쪽으로 난 포장길을 따르거나 1026번 지방도로를 따라 합천호관광단지로 향하다 첫 삼거리에서 좌회전으로 진행하면 합천호휴게소에서 진입한 길과 만나 성리삼거리까지 간다. 성리삼거리에서 우회전으로 약 2.5㎞를 가면 장단마을을 지나 왼쪽에 장단교가 나온다. 경남 합천군 대병면 장단리 1162-1(장단교 150m 앞)

☞ 볼거리

임란 창의기념관

임란 창의기념관에는 임진왜란 당시 상황도와 그 당시에 사용된 화살과 칼, 갑옷, 창이 전시되어 있다. 충절의 고장인 합천군 역사의 재조명은 물론 임진왜란 당시 전국 의병의 실제적 효시가 된 합천의병사와 내암 정인홍 선생 및 남명학파의 구국정신과 선현들의 정신을 기리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합천 영상테마파크

2004년에 건립된 합천영상테마파크는 1920년대에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국내 최고의 특화된 시대물 오픈세트장으로 드라마 ‘각시탈’ ‘빛과 그림자’ ‘서울1945’ ‘에덴의 동쪽’ ‘경성스캔들’ 영화 ‘써니’ ‘태극기 휘날리며’ 등 67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전국 최고의 촬영세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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