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13> 주왕산 ‘용추협곡’

  • 류혜숙 객원
  • |
  • 입력 2016-07-12   |  발행일 2016-07-12 제13면   |  수정 2021-06-17 18:02
하늘 찌르는 단애 사이로 난 ‘仙界의 門’
용추협곡 가운데 ‘학소대’ 청학·백학 한쌍이 살던 곳
20160712
용추협곡은 주왕산 응회암이 치밀하게 엉긴 산 중심 부분에 발달해 있다. 길게 이어진 협곡을 따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장관을 연출한다. 옛 선비들은 이 협곡을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여겼다.
20160712
무인기 드론으로 촬영한 용추폭포.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건강한 심장의 심실처럼 계류를 시원하게 뿜어낸다.
20160712
용추폭포의 폭호는 시리도록 맑으나 그 깊이는 쉬이 가늠되지 않는다.



협곡 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학소대. 오후의 빛 가득한 3시 즈음에도 학소대는 슬픔처럼 응달져 있다.

하늘 가까운 바위 위에, 옛날 청학과 백학 한 쌍이 살았다 전해진다. 어느 날 사냥꾼이 백학을 쏘았고, 홀로 남은 청학은 슬피 울며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한다. 학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들이 있다.

여헌 장현광의 기록에는 청학이라 불리는 이상한 새 한 마리가 살았고, 한 무인이 둥지 옆에 화살을 쏜 이후부터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하음 신집은 학이 2월에 와서 둥지를 틀다 7월에 돌아간다고 했고, 호우 이환은 학이 4월에 와서 깃들어 살다가 8월 새끼가 자라면 데리고 간다고 했다. 노애 류도원의 기록에는 학은 떠나 둥지가 비었으나 봄날 저녁 구름 사이로 울면서 날아갈 때가 있다고 한다.

이야기들은 분분하나 학을 실제로 보았다는 이는 드물다. 조선시대에는 학소대 밑에 학소암, 학소대 맞은편에 청학암이 있어 두 암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주왕계곡은 명승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막막히 사로잡힌다. 철갑부대에 에워싸인 듯하다. 처음엔 천천히 다가오더니 어느덧 어깨를 밀어넣듯 바짝 다가와 이내 둘러선다. 무리 지은 듯하나 따로이고, 서로가 서로를 수도하듯 면벽하면서도 기세는 제각각이다. 우듬지는 가맣고 발아래는 해연처럼 먹먹하다. 추상같은 기상에 걸음이 허영해진다. 톺아볼 만한 것은 눈앞의 한 치뿐인, 협곡이다.

 

‘주왕의 늑골’ 용추협곡
주방계곡 따라 북동 방향 1㎞ 구간
응회암 주상절리 수직으로 갈라져
가파른 골짜기 빚고 폭포도 만들어

‘주왕의 심장’ 용추폭포
산의 중심 해발 320m 지점에 위치
낙차 1∼5m 내외 3단 폭포로 구성
물이 낙하해 큰 폭호·포트홀 형성



#1. 주왕산의 늑골, 용추협곡

주방계곡을 따라 주왕산을 오른다. 길은 유순히 나아가고, 계곡은 천천히, 천천히 좁아진다. 계류에 발 담근 바위들이 천천히 커지고, 그리 멀지 않은 능선에 잿빛 바위들이 고개 들기 시작한다. 숨어있던 군인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듯 하더니, 곧 거대하고 위압적인 무리가 되어 나타난다. 자하교를 지나면서부터다.

왼쪽으로는 연꽃을 닮은 연화봉과 병풍바위가 잇대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망월대로부터 급수대를 거쳐, 학소대로 연결되는 암석 단애들이 수직의 벽을 이루고 있다. 시루교에 이르면 시루봉이 거석의 기둥처럼 하늘을 찌르며 기립해 있고 그 양쪽으로 거침없는 기세로 시립한 암벽들이 주왕산의 늑골처럼 드러나 있다. 학소교를 지나자 엄청난 암석 단애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길은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단애의 틈을 비집고 나아간다. 가까이 바짝 다가서는 철갑 같은 암석들에 붙잡혀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주왕산의 가슴우리 뼈와 같은 그 속, 그 한가운데에서 폭포가 쏟아진다. 용추(龍湫)폭포다. 폭포는 놀란 심장처럼 쾅쾅 울리며, 건강한 심실처럼 계류를 뿜어낸다. 폭호는 시리도록 맑으나 그 깊이는 쉬이 가늠되지 않는다.

자하교에서부터 용추폭포까지, 주방천을 따라 북동 방향으로 약 1㎞. 이 계곡을 용추협곡이라 한다. 옛 선비들은 이 계곡을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생각했고, 좁은 문을 지나 다다를 수 있는 무릉도원이라 여겼으며, 청학이라 불리는 기이한 새가 산다 하여 청학동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학자 여헌 장현광은 청학동에서 ‘바위 뿌리가 각기 사람과 겨우 지척지간에 있는데, 바위 모서리가 곧바로 구름이 다니는 하늘로 솟아 있어 하늘과 해가 참으로 우물 안에서 보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2. 협곡의 생성

주왕산은 산 가슴 전체가 협곡이다. 협곡은 골짜기 양쪽에 늘어선 벼랑이 급경사를 이루는 좁고 깊은 계곡을 말한다. 산은 그리 높지 않은데 협곡은 까마득히 높고 날서있다. 이 모습의 시작은 약 7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대에 화산 폭발이 있었다. 무려 아홉 번에 이르는 엄청난 폭발이 이어졌고,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쌓였다. 연속적으로 분출한 고온의 화산재는 점차 냉각되면서 응회암으로 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주왕산이다.

주왕산 응회암은 냉각으로 인해 수축되고, 수축되면서 용접한 듯 단단해졌다. 이 과정에서 암석은 체적이 줄고 수직으로 갈라져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를 이루었다. 주상절리가 발달하는 응회암은 절리를 따라 쉽게 낙석이 발생한다. 수직의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칼로 벤 듯 가파른 절벽이 생겼고, 떨어져 나간 벼랑의 조각은 골짜기를 구르며 다양한 모양의 암괴로 쌓였다. 그 계곡에 물이 흐른다. 물은 바닥을 깎아 골짜기를 깊게 하고, 폭포를 만들고, 바윗덩어리를 쪼개고 뒤흔들어 다양한 지형을 빚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용추협곡이다.

용추협곡은 주왕산 응회암이 치밀하게 엉긴 산 중심 부분에 발달해 있다. 벼랑의 높이는 100m 이상이다. 경사는 거의 수직을 이루고 횡단면은 수직에 가까운 V자형을 이루고 있다. 바닥의 폭은 자하교에서 학소대까지는 10~20m 정도지만 점점 좁아져 용추폭포 부근에서는 3~5m 내외로 매우 좁아진다. 폭포의 침식 작용으로 깊이가 더욱 좁아진 것이다.

#3. 청학동 용추폭포

광해군 때의 문인인 호우 이환은 ‘발을 포개면서 나아가고 몸을 던지면서 건너뛰어 다리의 힘이 다 빠져나간 뒤’에야 비로소 다다르게 되는 곳이 용추의 입구라 했다. 용추의 서쪽 봉우리는 만학봉(晩鶴峯), 북쪽은 천심대(川心臺), 동쪽은 수학대(壽鶴臺)로 세 봉우리가 합쳐져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길이 열려있는데, ‘돌 틈을 잡고 배를 바위 모서리에 붙이고 한 굽이를 돌아’서 용추에 이를 수 있었다 한다. 조선 선조 때 학자 여헌 장현광도 ‘다리 힘이 건장한 자가 아니면 반드시 넘어지고 만다’라 했고, 18세기 선비 노애 류도원 역시 ‘다리는 절로 떨리고 머리는 바위가 짓눌러 고개 들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바위 뿌리가 보이는 곳도 있고, 암괴들이 으르렁대는 곳도 있지만 해구처럼 깊고, 아예 해연처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곳도 있다. 옛사람들은 저곳을 기어 걸었을 것이다. 이 아찔한 지형을 만든 공범 중 하나가 용추폭포다.

폭포는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과 2단 폭포는 폭이 2m, 낙차가 1~2m로 소규모다. 폭포 아래에는 절구와 같이 움푹 파인 포트홀이 발달되어 있다. 1단의 포트홀은 폭 3m, 깊이 2m로 선녀탕이라 부르고, 2단의 포트홀은 폭 8m, 길이 5m, 깊이 1m로 구룡소(九龍沼)라 부른다. 연이어 제 3단 폭포가 떨어진다. 폭은 2m, 낙차는 5m 규모로 용추폭포에서 가장 크다. 아래에는 커다란 폭호가 형성되어 있고, 10㎝ 내외의 표력(지름이 256㎜ 이상인 큰 자갈)들이 쌓여 있다.

포트홀과 폭호의 발달 과정은 유사하다. 물이 낙하하면 하상 암반의 오목하거나 깨어진 부분에 와류가 생기고, 그 틈으로 들어간 자갈과 모래 등이 와류에 휩쓸려 돌면서 맷돌처럼 암석 바닥을 깎는다. 이러한 작용이 계속되면 자갈은 구멍 안에 갇히고 계속 회전하면서 처음에는 비교적 작았던 구멍을 넓고 깊게 만든다. ‘새나 넘어갈 길’에 지금은 평평한 산책로가 놓여 있고 새처럼 내려다볼 수 있으니 옛 님들 대하는 마음이 우쭐해진다.

‘용추(龍湫)’란 용이 폭포에 살다가 하늘로 승천한 웅덩이란 뜻이다. 구룡소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 한다. 주왕산의 높이는 해발 721m다. 용추폭포는 해발 320m 지점에 위치한다. 산의 중심 부분에 용이 살던 폭포가 있다. 주왕산의 심장은 용의 집이었던 게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류혜숙 객원기자 archigoom@naver.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전임길 객원기자 core8526@naver.com

 

☞여행정보

주왕산의 입구인 대전사에서 용추폭포까지는 2㎞ 남짓하다. 

폭포까지는 무장애 탐방로로 휠체어나 유모차 등도 올라갈 수 있다. 

학소대 앞에는 주왕산 숲 속 도서관이 자리한다. 

탐방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쉼터로 여행, 환경, 문학 등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다. 

또한 숲 속 도서관은 국립공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그린 포인트 적립 장소로 쓰레기 등을 수거해 가져오면 그 양만큼 포인트로 돌려준다. 

이 포인트로 공원 시설을 무료로 이용하거나 등산용품을 받아 갈 수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