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15> 청송 얼음골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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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6   |  발행일 2016-07-26 제11면   |  수정 2021-06-17 18:10
산기슭 급사면에 수백만 ‘응회암 大軍’…“32℃ 이상 되면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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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드론으로 촬영한 청송얼음골 전경. 거대한 응회암 암벽(탕건봉)이 자리한 일대가 얼음골로, 굽이치는 소하천과 함께 장관을 연출한다. 여름철 기온이 높아지면 얼음이 어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청송의 대표적인 지질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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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얼음골은 비가 오면 얼음이 녹고, 무더위가 지속되면 또다시 얼음이 생긴다. 장맛비에 얼음은 녹았지만, 얼음골 빙혈에서 나오는 찬바람에 이끼에 이슬이 맺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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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골의 애추지형. 20~30㎝ 크기의 모난 돌들이 산기슭에 쌓여있는데, ‘너덜겅’ ‘너덜지대’ ‘돌서렁’이라고도 한다. 날씨가 더울수록 차가운 바람이 나오고, 냉각의 정도가 심하면 아래쪽에 얼음이 어는 빙혈이 만들어진다.

 

좁은 산길에서 가까운 산사면의 너덜을 만나면 움찔한다. 산속에 포복해 있던 백만 군사의 은밀한 움직임을 순간 알아차린 것마냥 움찔한다. 그런가 하면 저것은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라 가만가만 숨을 쉬며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 가만히 얼굴을 맞대어 들여다본다. 그러면 아, 환상이 아니다, 상상이 아니다. 너덜은 숨을 쉰다. 뜨거울수록 더욱 서늘한 숨을 내뿜고 있다.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계곡
주왕산 남쪽, 영덕 달산면 가는 산길
높이 62m 탕건봉 산자락에 들어서면
냉장실에 있는 듯 냉기가 뿜어져 나와
비오면 녹고 무더위 지속되면 또 얼어

너덜지대로 불리는 애추지형
응회암 단애 20∼30㎝ 크기로 쪼개져
산기슭에 쌓여 반원추형 지형 만들어
무수히 쌓인 돌 틈새로 들어간 공기가
차고 습한 공기와 만나 얼음 만들어져


 

 

#1. 뜨거울수록 얼음 어는 이상한 계곡

주왕산의 남쪽, 영덕 달산면으로 향하는 산길을 달린다. 비교적 느슨하게 나아가던 산길이 내룡리를 지나면서 좁고 깊게 휘휘 돌아나가다 갑자기 원을 그리듯 급하게 휘는데, 거의 멈춤에 가깝게 속도를 줄이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거대한 암벽 하나가 길을 막아선다. 모르고 지나던 이도 설 수밖에 없을 이곳, 얼음골이다.

이곳은 한여름철 기온이 높아지면 얼음이 어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얼음골이다. 비가 오면 얼음이 녹고 무더위가 지속되면 또다시 얼음이 생긴다. 자연의 속셈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보통 32℃ 이상이 되면 얼음이 얼고 32℃ 아래로 떨어지면 얼음이 녹는다고 한다. 정수리에 연기가 폴폴 무성한 날일수록 바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얼음골이다.

길 막은 암벽은 높이 62m로 탕건봉이라 불린다. 그 모양새나 표면의 야성적인 절리들이 과연 말총을 길게 줄을 세워 뜬 탕건과 닮았다. 어떤 이들은 이 멋있는 암벽이 신비로운 재주를 가져서 얼음을 얼게 할까 생각한다. 아니다. 그럼 암벽 아래를 흐르는 소하천의 숨겨진 능력일까. 그것도 아니다.

탕건봉의 오른쪽 산자락에 얕은 동굴 모양의 약수터가 있다. 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 약수터와 가까워질수록 시원함이 커지고 냉장실에 들어앉은 듯 온 몸이 싱싱해진다. 그럼 약수의 힘일까. 역시 아니다. 약수터 위쪽에 너덜겅이 흐르고 있다. 차가운 기운은 저 무수한 돌멩이들의 강, 너덜겅에서부터 뿜어져 나온다.

#2. 빙하기가 만든 애추, 애추가 만드는 얼음

너덜이란 20~30㎝ 크기의 모난 돌들이 산기슭에 잔뜩 쌓인 것으로 ‘너덜겅’ ‘너덜지대’ ‘돌서렁’이라고도 한다. 학계에서는 ‘애추(Talus)’라 하는데, ‘풍화된 암석이 중력의 작용으로 급사면에서 떨어져 내려 퇴적한 반원추형의 지형’이라 정의한다. 얼음골에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는 애추지형이 총 4군데 있다. 100m 이상의 규모인 곳도 있고 40m 정도로 비교적 작은 곳도 있다. 얼음골을 이루는 애추는 경사면의 각도가 45도에 달하고 애추를 이루는 암석들은 크기가 30㎝ 내외로 각이 져있다.

청송 얼음골의 너덜은 응회암 덩어리들이다. 이곳의 응회암은 무포산응회암에 속한다. 무포산응회암은 신생대 제3기 전기 때의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주왕산에서 남쪽으로 약 5㎞, 얼음골에서 북서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솟아있는 무포산(霧抱山) 지역에 가장 넓게 분포한다. 또한 북쪽으로 태행산까지, 남동쪽으로는 내연산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이후 신생대 제4기 최후의 지질시대에 들어 한반도에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잇따라 출현했다. 탕건봉과 같은 응회암 단애의 절리나 틈에 함유되어 있던 수분이 얼고 녹기를 반복했고, 그로 인해 팽창과 수축이 거듭되었고, 틈을 따라 균열되어 떨어져 나간 암석이 하나둘 아래로 굴러내려 쌓였다. 이 과정이 오랜 세월 반복되어 상부에는 작은 암설이 그리고 하부에는 큰 암설이 쌓인 너덜을 이루었다.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크고 모난 바위들의 틈새로 들어간 공기는 온도가 낮고 습한 지하의 영향을 받으며 바위틈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아래쪽에서는 차갑고 습한 공기가 바깥쪽으로 빠져나오면서 따뜻하고 건조한 외부 공기와 만나게 된다. 이때 공기 중의 습기가 기화하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해 온도가 더욱 낮아지는데, 냉각의 정도가 크지 않으면 차가운 바람이 부는 풍혈이, 냉각의 정도가 심하면 얼음이 어는 빙혈이 만들어진다.

#3. 여럿이 함께, 얼음 땡

학계에서는 화산폭발로 한번 불에 구운 셈인 화산암이 단열효과를 높여 바깥의 열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것도 얼음골 형성에 한몫한다고 설명한다. 얼음골 근처의 930번 도로에서는 많은 애추지형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얼음골만 얼음이 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는 애추의 지형지세와 태양에너지와의 관계에 답이 있다.

얼음골의 경사면은 북쪽을 향하고 경사각이 매우 크다. 이로 인해 태양빛이 잘 들지 않는데, 한여름철 남중고도일 때도 얼음골 사면이 받는 일사량은 평지에서 받는 일사량의 15%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얼음골 앞에는 무장산이 불과 30m 내외의 간격으로 버티고 서있다. 이처럼 비교적 깊은 곡벽으로 둘러싸여 상대적으로 일사량이 적은 것도 얼음골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얼음골은 예부터 ‘잣밭골’이라 불려 왔다. 잣나무가 많은 골짜기라는 뜻이겠다. 잣나무는 해발 300~1천900m 되는 고지의 험준하고 양지바른 비탈에서 자란다. 주로 험한 바위산에서 볼 수 있다고 하니 얼음골을 잣밭골이라 한 연유를 알 만하다. 무포산이나 무장산이 ‘안개를 품었다’는 뜻을 지닌 것도 역시 얼음골의 하계 동결현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얼음골 약수를 냉천이라 하며 보약 대접하는 것 또한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물에 어느 병이 대적하겠냐는 신망이 아니겠나. 얼음골에 얼음을 얼게 하는 일, 얼음이 얼어서 생겨난 일, 얼음을 녹게 하는 일, 이 모든 것은 여럿이 함께하는 ‘얼음, 땡’이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전임길 객원기자 core8526@naver.com

▨ 참고= △청송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한국의 지형 △자연지리학사전 △한국의 하계 동결현상 분포지에 관한 지형학적 연구, 전영권, 대구가톨릭대학교 △한반도 얼음골의 지형적 특성과 결빙현상, 김윤이
공동기획: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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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골 응회암 암벽인 탕건봉은 여름철에는 시원한 폭포수가 흐르고, 겨울철에는 거대한 빙벽이 된다.

 

■ 여름엔 폭포 겨울엔 빙벽...얼음골 ‘탕건봉’ 두 얼굴

얼음골의 응회암 암벽인 탕건봉은 여름 동안 폭포가 된다. 청송군이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뉴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1999년 8월에 설치한 인공 폭포다. 더울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얼음골에서 폭포는 그 매력을 배가시킨다.

겨울이 되면 폭포는 폭 100m, 높이 62m의 거대한 빙벽이 된다. 얼음의 질이 좋아 전국에서 많은 빙벽 등반팀이 찾아오며 빙벽 애호가들과 전문 산악인의 빙벽훈련장으로 이용된다. 2011년에는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 대회가 이곳 청송 얼음골에서 열렸다. 

 

대회는 앞으로 2020년까지 얼음골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얼음골 근처에는 8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촌과 인공 암벽장, 오토캠핑장 등도 들어서 있다. 계곡에는 가족과 어린이들을 위한 전통얼음썰매장도 운영된다.

 

☞ 여행정보
청송읍에서 31번국도 포항방향으로 가다 930번 지방도를 타고 영덕방향으로 간다. 

내룡리 보건소를 지나면서부터 여러 애추 지형을 발견할 수 있다. 

얼음골 주변으로 클라이밍 아카데미, 청룡사, 해월봉, 얼음골, 무장산 정상 등을 잇는 ‘빙벽밸리’도 조성되어 있다. 

데크로드(1천830m), 해월봉 등산로(3천560m), 무장산 등산로(3천270m) 등 세 가지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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