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의 잇드라마] MBC 수목드라마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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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6   |  발행일 2016-08-26 제40면   |  수정 2016-08-26
주체적 인간의 탄생, 우리 시대 히어로를 투영한 새로운 판타지 드라마
[이민영의 잇드라마] MBC 수목드라마 ‘W’

드라마 ‘W’(송재정 극본, 정대윤 연출)는 웹툰과 현실이라는 두 세계를 절묘하게 엮어낸 판타지 드라마다. 가상과 현실, 시공간의 뒤섞임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는 이미 많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활용되어 왔다. 그런데 ‘인현왕후의 남자’(2012),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2013) 등을 통해 타임 슬립에 기초한 판타지 로맨스의 색다른 차원을 암시했던 작가는, ‘W’에 와서 기존의 작품을 넘어서는 인물을 구현해 내면서 판타지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판타지 드라마에서 많이 취하는 기법 중 하나인 타임 슬립은 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불행한 현재를 만든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욕망을 충족시키는 구조를 취한다. 그래서 타임 슬립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요소로 종종 이용된다. ‘W’ 역시 타임 슬립이 공간 슬립으로 바뀌었을 뿐 불가능한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는 시공간의 교차라는 판타지의 기법을 그대로 취하고 있다.

공간 슬립을 통해 웹툰 속으로 들어간 오연주(한효주)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상형이었던 웹툰의 주인공 강철(이종석)을 만나고 그와 결혼해 꿈꿔왔던 그대로의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긴다. 그런데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 자체의 달달함에 중심을 둔 일반적 로맨스 드라마와 달리 ‘W’에서는 이 과정이 과감하게 생략된다. 연애와 사랑에 대한 오연주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데 집중된 7화의 장면들은 여성 시청자들의 욕망을 환상적으로 대리 충족시켜 주지만 이러한 충족감은 단 1회에 그친다. 이것은 이 드라마의 중심 서사가 이상적 남성과의 멋진 로맨스라는 여성 판타지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민영의 잇드라마] MBC 수목드라마 ‘W’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 집중하고 있는 것은 강철의 성장과 그의 행동이다. 현재 9화까지 방영된 ‘W’는 강철이 의심하고, 자각하고, 자유의지를 갖게 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면서 욕망의 대상에 불과했던 만화 주인공이 피와 살과 생각을 가진 주체적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오연주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 강철이 살고 있는 웹툰의 세계, 상식적으로 절대 접합될 수 없는 이 두 세계는 범인의 칼에 찔려 죽어가던 강철이 ‘맥락 없는’ 자신의 죽음을 의심하는 순간 뒤섞인다. 그간의 사건들이 맥락 없었던 이유가 만화이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 강철은 자신의 세계가 전부 가짜인, 완전히 조작된 세계라는 것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세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순간 만화 속 세계는 정지한다. 그리고 ‘자각한 자에게 내려진 형벌’(4화)처럼 강철은 홀로 살아남는다.

강철의 자각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간의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한 모험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자각한 강철은 모험을 시작한다. 차원의 문을 넘어서는 순간 강철은 인간의 본질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오디세이에서 세계를 의심하고 그에 저항했던 돈키호테로 진화한다. 물론 강철은 돈키호테보다 훨씬 비극적인 고전 영웅에 가깝다는 점에서 오디세이와 돈키호테의 어디쯤엔가 자리할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 왜 죽었는지, 자신이 왜 불행해야 하는지를 묻는 강철에게 신을 자처하는 창조주, 만화가 오성무(김의성)는 히어로의 성장을 위한 흔한 설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강철은 ‘불행한 과거를 가진 히어로의 숙명’이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설정값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죽음을 선택한다. 물론 숙명은 강철뿐 아니라 만화 속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한강에 투신한 강철이 시공간의 틈 속에 갇혔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강철을 죽이도록 설정된 범인의 설정값과 그의 존재 이유 때문이다.

이제 강철은 만화 속 인물들의 설정값을 바꾸고자 시도한다. 존재 이유가 사라진 윤소희(정유진)가 소멸되려는 순간 강철은 “당신 아버지가 만든 빌어먹을 숙명… 캐릭터의 설정값. 존재 이유. 잔인하지 않나. 어떻게 태어나서 존재 이유가 단 하나뿐일 수 있는지”(8화)라며 자신들이 속한 세계의 부조리를 비판한다. 나아가 소멸되고 있는 소희에게 존재의 이유를 다시 부여함으로써 그녀를 살려낸다. 이러한 강철의 행동은 앞으로 전개될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강철의 성장과 변화는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주체적 인간이 탄생했음을 보여주며, 그 주체로부터 세계가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판타지 로맨스들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실현 불가능한 세계를 묘사함으로써 현실에서는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을 대리 충족시키는 판타지의 기능상, 드라마 속 강철의 성장과 변화는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웹툰 ‘W’의 창조주 오성무가 만화 속 등장 인물들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회지도층이 민중을 개, 돼지라는 값으로 설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만화의 설정값을 변경시키고자 하는 강철은 이 시대에 필요한 히어로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의심과 자각, 행동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변화시키는 강철의 모습은 드라마 ‘W’가 보여주고자 하는 우리 시대 히어로의 모습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myvivian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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