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위기관리능력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11-12   |  발행일 2016-11-12 제23면   |  수정 2016-11-12
20161112

오늘 저녁에 ‘민중 총궐기’ 집회가 있다. 2주전 시작(경찰 추산 1만2천명, 주최측 주장 2만명)한 집회는 지난주(5일) 아주 규모가 커졌다(경찰 5만명, 주최측 20만명). 오늘은 훨씬 더 많은 군중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5%(4·11일 발표한 한국갤럽조사)인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신뢰를 회복하기엔 턱도 없는 수준이다.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이 여야 영수회담 성사 노력을 하고, 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국회 추천 총리 수용을 약속했지만, 야권은 ‘12일 집회 참석’을 내세우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대통령이 실기(失機)한 듯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위기란 언제든 찾아온다. 종류도 다양하다.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과 같은 리스크가 있고, 세계적 금융위기(2008년)처럼 외부적 요인이 등장할 수도 있다. 진단을 정확히 하고 처방을 내놓는다면 해결하지 못할 위기란 것은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그런 길을 걷지 못했다. 맨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정부내 경고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집권초부터 대통령 수석들은 대통령 면담을 못했다. 어쩌다 건의를 해도 결정은 항상 늦었다. 뒤늦게 엉뚱한 지시가 내려오는 일도 많았다. 누구 하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보신주의다. 공개적인 문제 제기가 어렵다면 대통령 면담을 신청해서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것’임을 깨우쳐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사람은 자리를 내놓아야 했을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공직을 그만뒀다면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최태민씨 문제를 직보한 사람이 있었다. 한 신문사 기자가 그랬고, 중앙정보부와 대통령 민정수석실, 검찰 모두 살아 있었다. 이 정부의 국가정보원은, 민정수석실은 40년 전의 국가 시스템만도 못하다.

대통령 경제수석실의 ‘무모한 집행’도 지적받아 마땅하다. 대통령이 범법을 지시했다면 불법적 요소가 없는 대안을 마련해 보고해야 했을 터다. ‘머리’를 쓰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행정관만 있으면 되지, 수석비서관이 왜 필요한가.

경보 장치가 다 고장났다고 치자. 그러면 사고가 터진다. 그후에도 기회는 있다. 최순실 사고의 첫째 징후는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 과정을 취재하는 기자가 있었다. 청와대도 이 사실을 사전에 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곧 세상에 공개된다는 것을 전제로 선제적 해체 등의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을까.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조사도 이즈음에 있었다. 못 이기는 척 그 조사를 바탕으로 문제를 바로잡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그마저 뭉갰다. 이 기회마저 놓쳤다면 첫 보도가 나온 7월말이라도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부인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쯤은 ‘임기말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때까지 기자는 몰랐지만, 청와대는 두 재단에 비선실세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소상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터진다면 정권적 위기가 닥칠 것임을 피부로 느꼈을 텐데도 청와대는 일방통행식 정국운영을 밀어붙였다.

둑이 다 터진 것은 10월20일쯤이었다. 더블루K 이사 고영태라는 사람이 “(최순실은) VIP 연설문 고치는 게 취미”라고 했을 때다. 청와대는 개헌 카드(10월24일 제안)로 맞불을 놓았다. 이걸로 잠재울 수 있다는 판단은 모금 과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꼼수다.

10월25일 대통령의 1차 녹화 담화 역시 위기관리능력 부재를 낱낱이 드러낸 참사였다. 이미 증거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는데,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으니 말이다. 녹화해서 기자들 질문조차 받지 않은 방식도 정무-홍보감각이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2차 사과담화(11월4일) 이후엔 또 어떤가. 설마 그걸로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수회담, 총리와의 권한 분담 방안, 대통령 탈당, 각계와의 대화 등 후속조치들을 신속하고 깊이 있게 추진했어야 그나마 진정성을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었다. 위기를 예방하지도 못했고, 위기가 닥쳐도 느끼지 못했다. 이런 정부에 뭘 더 기대할 수 있을까. 가슴이 저며 온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