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부역자들

  • 허석윤
  • |
  • 입력 2017-01-23   |  발행일 2017-01-23 제31면   |  수정 2017-01-23
[월요칼럼] 부역자들

요즘 일본의 기세가 등등하다. 군국주의 회귀 행보에도 거리낌이 없다. 아베 정권은 벌써부터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머지않아 평화헌법도 개정해 언제 어디서나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일본은 한편으론 군국주의 야욕을 위장 내지 미화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도 열심인데, 무엇보다 부끄러운 과거사부터 지우려고 혈안이 돼있다. 그들로선 최대 아킬레스건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어떻게든 이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최근 일본은 한일위안부합의를 내세워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 급기야 위안부합의에 따라 자신들이 지급한 10억엔을 보이스피싱당했다는 막말까지 내뱉었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때 어떤 이면 약속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코 이대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돈 몇 푼에 일본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에 대해 면죄부가 주어져선 안 된다. 과거 일제가 군 위안부로 끌고간 한국 여성은 20만명이나 됐다. 그들 대부분은 10~20대로 꽃다운 청춘을 피워보기도 전에 일본 군대가 주도한 집단 강간의 희생자가 됐다. 그 당시 지옥 같은 그 곳에서 우리의 어린 딸과 누이들이 흘렸을 피눈물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그런데 이 천인공노할 범죄가 모두 일본인의 손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군 위안부를 조달하는 일에는 일본인보다 한국인 모집업자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일본 군대에 어린 소녀를 팔거나 끌고간 한국인 조력자들은 지금껏 단 한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안타깝긴 하지만 일제 부역자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한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친일세력을 청산 못한 선대의 업보는 지금의 후손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친일 청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친일 세력이 독재 군부와 산업화 세력, 또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반공 세력으로 화장만 바꿔가며 떵떵거리면서 잘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현 기득권 체제의 뿌리인 친일 세력 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보수층이 극력 반발하고 나섰다. 좌파의 편협한 역사 인식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시대착오적 발상, 친일 후손들에 대한 연좌제라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연좌제 논란과 관련해 “친일한 사람들은 이미 다 죽었는데 뭘 청산하자는 것이냐. 그 후손들까지 찾아내 단죄하려는 것이냐”며 맹공을 퍼붓는다.

예상된 일이다. 친일 청산은 말 꺼내기조차 쉽지 않은 지난한 과제다. 일제 치하에 이어 광복 후에도 70여년간 우리 사회를 사실상 지배해온 친일 세력을 척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제의 부역자들은 누구보다 약삭빨랐고 권력도 셌다. 이런 부류들은 지금도 큰 변함이 없다. 이런 부류는 단순히 친일파 후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친일을 정당화하고 그 정신까지 계승하려는 자들이다. 이른바 국내의 뉴라이트 같은 세력이다. 이들은 신보수주의란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사실상 친일을 미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한국이 일제 덕에 잘살게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는 것만 봐도 이들의 실체를 알 수 있다. 더구나 종군위안부도 강제 납치가 아닌 일종의 취업 사기였다고 주장한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황당한 궤변이지만 더욱 문제는 이 같은 친일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려는 뉴라이트 추종자들이 학계와 정계, 재계 등에 두루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친일과 독재미화에 방점을 둔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에도 대거 참여했는데, 어쩌면 우리 역사와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려 한 현대판 부역자라 할 만하다. 물론 이들은 유신독재 정권과 박근혜정권의 국정농단 부역자들과 맥락이 닿아 있다. 부역 대상과 형태는 다를지언정 권력 추앙을 공통 분모로 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완장을 찬 부역자들이 날뛴 세상은 늘 끔찍했다. 우리 사회가 바로 서려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국민을 괴롭혀온 권력층 부역자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허석윤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