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아픔을 묻어둔 곳 넘어 ‘공감의 공간’으로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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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0   |  발행일 2017-05-20 제16면   |  수정 2017-05-20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박종철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소녀상·세월호 추모공간의 상징성
어떻게‘기억의 장소’만들지 고민해야
누군가의 아픔을 묻어둔 곳 넘어 ‘공감의 공간’으로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박종철이 고문 타살된 509호실.
누군가의 아픔을 묻어둔 곳 넘어 ‘공감의 공간’으로
서울시청 옆 서울도서관 3층 ‘세월호 추모공간’.

우리 개인에게는 상징적인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놀던 학교 운동장, 취업 준비를 위해 밤 늦게까지 공부하던 도서관처럼 말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도시에도, 사회에도 상징적인 공간이 있기 마련이고, 이러한 상징적 공간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때론 슬픈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공간의 사회성이다. 책은 우리에게 건축은 무엇이며, 특정 건축이 만들어내고 기억하는 공간에 대해 주목한다.

저자는 김근태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전기고문을 당하고, 박종철이 물고문을 당했던 ‘남영동 대공분실’과 일본군 위안부들의 비극적 삶이 담긴 ‘평화의 소녀상’, 인간과 짐승의 시간이 공존했던 ‘서대문형무소’, 노란 리본으로 물결치는 ‘세월호 추모관’ 등을 다룬다. 저자가 강조하는 건 우리가 마땅히 느껴야 할 ‘공감’이다. 누군가의 아픔이 깃든 기억의 공간은 또 누군가에게 사무치는 공감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가장 먼저 다루는 곳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고문을 은폐하고 투신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소형 창문과 비명 소리만 울려 퍼지도록 고안된 벽면, 자기가 가는 곳이 몇 층인지 알 수 없도록 심리적 압박을 주는 나선형 계단까지. 지금은 인권보호센터로 바뀐 이 ‘악의 공간’을 저자는 둘러본다. 그리고 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성스럽고 아름다운 공간 ‘경동교회’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동일 건축가의 너무나 다른 건축을 설명하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악의 양면성을 비교하며, 건축가의 윤리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의 아픔을 묻어둔 곳 넘어 ‘공감의 공간’으로
서울시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 ‘평화의 소녀상’.

다음은 ‘평화의 소녀상’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다 저자는 평화의 소녀상을 ‘고통의 기억이 만들어낸 건축적 공간’이라 말한다. 소녀상의 조형적 특징과 상징,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비상식적 풍경 등 이 공간의 건축적 의미와 가치 등을 설명한 후 서울 성미산 끝자락에 위치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으로 안내한다. 입구에서 지하 전시관을 거쳐 2층 추모관으로 이어지는 관람 동선과 각 전시공간의 특성들을 건축적 관점과 사회역사적 맥락에 따라 설명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서소문 순교성지’에서는 근대적 일망감시 체계인 ‘판옵티콘’ 형태를 보여주고, 옥사에서 사형장에 이르는 건물 배치를 설명한다. ‘서소문 순교성지’를 둘러보며 이 일대가 조선시대 행형장의 중심이 되었던 유래를 되짚는다. 동학 지도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참수된 비극의 장소가 특정 종교에 의해 대표되어서는 안 되며, 역사의 현장으로 이 땅의 무늬와 곁을 고스란히 되살려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묻어둔 곳 넘어 ‘공감의 공간’으로
김명식 지음/ 뜨인돌/ 264쪽/ 1만5천원

마지막 장에서는 베를린에 있는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를 다루며 ‘끔찍했던 기억을 미적 형태로 재현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논쟁에 대해 한 발 더 나아가 ‘건축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아낸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서울도서관 3층’을 찾는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거대한 아픔으로 존재하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임시 추모공간에서 저자는 “‘공간화된 아픔’에는 아픔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책은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이 풍부하게 담겨 있지만, 일반 시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진 자료와 역사적 맥락 해설이 주를 이룬다. 각 장에 저자와 시민들이 나눴던 이야기도 정리돼 있어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 쏟아지고 있는 고통과 아픔의 빗줄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우기의 한복판에 있다”며 “그럴수록 우리의 존재와 개인과 공동체적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떻게 저 고통에 참여할 것인지, 사회적 고통을 어떻게 기억의 공간으로 형태화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고 답을 구하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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