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7] 청송의 혼, 樓亭<2> 다채로운 마음의 공간 - 망미정·우송당·애국정·영모재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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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8   |  발행일 2017-06-28 제13면   |  수정 2021-06-21 16:52
절경을 바라보다 문득…‘임’을 떠올리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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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읍 용전천변 10여m 높이의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망미정. 1899년 청송부사 장승원이 푸른 용전천과 방광산의 절경에 감복해 지은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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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를 벗한다’는 뜻을 가진 우송당. 1931년 파평윤씨 윤상영이 그의 할아버지 윤두석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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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읍 금곡3리에 위치한 애국정. 국화를 유독 좋아했던 할아버지를 위해 손자가 지은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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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집안의 재사인 영모재. 마을의 심장부에 위치한 정자는 공동의 유교적 공간이자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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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미정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용전천 물길.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의미하나 일반적으로 누(樓), 정(亭), 당(堂), 대(臺), 각(閣), 헌(軒) 등을 아울러 일컫는다. 누정은 자연과 합일한다. 물과 돌과 나무와 빛 속에 누정은 또 하나의 자연이 되고 시인묵객들을 끌어당겨 스스로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누정에는 또한 세움의 뜻과 마음이 서려 있다. 장소를 택하고 목재를 고르고 구조를 정하고 이름을 짓는 모든 행위와 결과에는 지조와 은둔과 추모와 같은 다채로운 내면이 새겨져 있다.

#1.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집, 망미정

청송읍의 동쪽 용전천변에 10여m 높이의 절벽이 있다. 절벽 아래에는 여울물이 감돌아 능히 용이 살 만한 깊은 소를 이루는데, 절벽의 허리에는 용이 승천하다 스친 흔적이 베인 상처처럼 남아 있다. 또 언제 용이 날아올라 천지가 흔들릴지 모르는 절벽 위 가장자리에 함께 날아오를 듯 턱을 살짝 치켜세우고 서 있는 정자가 있다. 망미정(望美亭).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고종 때인 1899년 청송부사 장승원(張承遠)이 푸른 용전천과 방광산의 절경에 감복해 지었다는 정자다.

예전 이 일대는 맑은 솔밭이 그윽했다고 한다. 지금 주변에는 풀·나무 하나 없이 하늘만 넓어, 먼 데서 바라보이는 정자의 뒷모습은 도도하고 쓸쓸하다. 그러나 점점 다가가면, 일정한 너비로 서있는 기둥들 속에 세로로 나뉜 벽과, 가로로 나뉜 벽과, 하나의 작은 창을 가진 벽과, 허(虛)로 채워진 벽이 유쾌한 대조와 즐거운 비례의 표정을 짓고 있다.

망미정은 절벽 바위의 정수리들을 초석 삼고 그 위에 그랭이질 한 네모기둥을 정면 3칸 측면 2칸 골격으로 세워 팔작지붕을 얹고 있다. 정면에서 보면 가장 오른쪽이 대청마루로 용전천 물길이 남쪽으로 둥글게 굽어지는 방향으로 활짝 열려 있다. 왼쪽 두 칸은 방으로 전면은 툇마루다. 두 칸 모두 문이 있으나 창은 가운데 칸에만 작게 나 있다.


1899년에 부사 장승원이 지은 망미정
용전천과 방광산 절경 한눈에 들어와
격변의 시대 고뇌의 공간이었을지도…

손자가 조부위해 지은 우송당·애국정
선대와 후대의 애틋한 관계 느껴져
파평윤씨 오랜 그리움 담긴 영모재
공동의 유교적 공간이자 구심점 역할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자들은 대개 사방이 개방된 모습이었다고 짐작되는데, 그때의 사방 개방된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은 이후 정자의 원형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구들이 있는 온돌방은 조선시대에 와서 확산되었다. 대개 정자는 즐기며 휴식하는 유식(遊息)의 공간이었으나 거기에 폐쇄된 공간에서 학문을 통해 수양하는 장수(藏修)의 공간이 더해진 것은 16세기 사림이 형성되면서였다.

부사 장승원은 백의에 의관을 장정하고 선비들과 시를 읊으며 막걸리를 즐겼다고 전한다. 그러나 방산 허훈이 쓴 ‘망미정시’를 보면 장승원은 ‘면류관을 쓰고 패옥을 차고 궁궐에 들어갔다가 외직으로 뛰쳐나와 청송고을을 맡았는데’ ‘외로운 이 삿갓만 한 정자에 앉아 강물만 가끔 내려다본다’고도 하고, ‘서방미인(西方美人)’, 즉 ‘임금을 바라본다’고도 했다. ‘망미’ 속에 감춰 모신 님은 임금님이었던 걸까. 격변의 시대에 장수의 공간은 고뇌의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2. 관계를 이어가는 집, 우송당

망미정 동쪽에 또 하나의 정자 우송당(友松堂)이 자리한다. ‘소나무를 벗한다’는 이름에 답하듯 주변에는 몇 그루 소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 있다. 우송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형태로 대청을 가운데 두고 좌우가 방이다. 대청에는 문을 달아 때론 방으로 때론 마루로 자유롭게 변신한다. 전면에는 툇마루에 멋진 계자난간을 둘렀고 후면에는 소박한 쪽마루를 두었다. 기둥머리와 화반은 큼직하고 화려하다. 당(堂)은 당당한 집채를 말한다. 우송당은 당당하다.

우송당은 1931년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상영(尹商榮)이 지었다. 이 일대는 그의 할아버지 윤두석(尹斗錫)이 즐겨 산책하던 곳으로 우송당은 손자가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지은 집이다. 조선시대 어린 손자의 교육은 주로 할아버지가 맡았다고 한다. 아들이 아닌 손자가 조부를 기린다는 것은 그러한 시간과 관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송당의 당당함 속에 너그러움과 엄격한 질서가 동시에 느껴진다.

우송당과 망미정은 서로가 완상의 대상이 된다. 다만 우송당은 절벽에서 조금 물러나 자리한다. 정자 앞 천변 길은 풀밭 속에 걸음의 흔적으로 나있다. 풀이 자라는 속도보다 사람들의 걸음이 잦은 걸 게다. 정자에서는 저 길이 먼저 또렷하다. 이는 손자 상영이 조부의 걸음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방식이 아닐까. 시간에 시선을 내어준 것, 이것은 시선이 닿는 곳에 먼저 시간을 내어주는 우리의 걸음으로 이어진다.

#3. 오래 그리워하는 집, 애국정과 영모재

청송읍의 남쪽, 용전천 너머는 금곡리(金谷里)다. 사방 산으로 둘러싸인 구릉성 평지마을로 ‘금이 나던 곳’이라 하여 금곡이다. 이 마을에도 손자가 할아버지를 위해 지은 정자가 있다. 금곡3리의 애국정(愛菊亭), ‘국화를 사랑하는’ 정자다. 홀로 황국을 사랑했다는 노인은 문숙공 윤관의 후예다. 그는 글 읽는 농부로 한가할 때는 지팡이 짚고 마을(굿바들, 청송읍 금곡리)을 소요했다 한다. 만년에 휴식할 곳을 정했지만 정자를 짓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손자 양주가 할아버지의 이루지 못한 뜻을 슬퍼하며 지은 것이 애국정이다.

애국정은 우송당과 거의 같은 구조다. 대신 양쪽 측면에 문이 있고 그 앞에 자연석이 계단으로 놓여 있다. 대청 문 위에는 가로로 긴 광창이 있는데 아름답고 정교한 꽃살로 가득하다. 어느 후손의 근사한 마음인지 대청 문고리에 마른 솔가지가 꽂혀 있다. 애국정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애국정기’에 ‘신축(辛丑)사월’이라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애국정 마당에는 그네 의자와 수도가 있다. 동리의 후손들은 들일을 하고 여기 흔들흔들 의자에 앉아 애국정의 시간에 스며드는 걸까. 할아버지와 손자, 선대와 후대의 관계가 보다 가깝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애국정 맞은편으로 보이는 것은 길가 축대 위의 둥그런 둔덕이다. 시선은 막혀 있지만 들꽃들 가득해 유정하다. 정자를 에둘러 정원도 조성되어 있다. 국화는 보이지 않지만 혹 모른다. 가을날 도연명의 집처럼 집 둘레 가득 국화꽃 피어날지.

금곡2리는 초막골이라 불린다. 조선 명종 때 윤씨 효자가 초막을 짓고 시묘를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안길로 제법 올라가면 등마루 선의 마지막 즈음에 파평윤씨 집안의 재사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대문은 잠겼고 담은 높아 대문 틈새로 속을 들여다본다. 재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에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둔 구조다. 전면과 측면에 좁장한 쪽마루가 보이고 양쪽 방 앞에만 계자난간을 세웠다. ‘영모재창건기’에 보면 재실은 예부터 있었지만 지금의 건물로 지은 것은 1823년이라 기록되어 있다. 일은 많고 힘은 적어 햇수로 3년간 여러 후손들이 힘을 모아 지었다고 한다.

영모재는 있는 듯 없는 듯, 재실인 듯 아닌 듯, 그러나 마을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공동의 유교적 공간이자 정신적 구심점이다. 대문 앞에는 작은 텃밭이 있고, 재사의 오른쪽에는 금곡리 농부들의 피로 해소실이 자리한다. 일할 때도 쉴 때도 그들의 뿌리, 그들의 구심점은 가까이에 늘 존재한다. 잊으나 잊지 않는 것, 그렇게 오랜 그리움으로 뒤를 따르는 것이 ‘영모’일 터. 마음이 담긴 건축은 만들고 지키는 사람의 자부심을 키워주고 보여준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 기획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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