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박정희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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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5   |  발행일 2017-10-25 제31면   |  수정 2017-10-25
[박재일 칼럼] 박정희

1979년 10월26일, 박정희의 암살 소식을 나는 대구시립도서관 앞 지프차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로 들었다. 고3으로 지금의 수능시험인 예비고사를 앞둔 자율학습 기간이었고, 도서관 앞에는 심상치 않게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내일로 딱 38년 전이다. ‘유신헌법’, 이것은 민주헌법이라 할 수 없다고 사회시간 자투리에 흥분한 기억은 있었지만,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킨 그해 1961년에 태어나 줄곧 박정희 시대를 살아온 고3 청년은 그래도 나라가 걱정돼 꽤 우울했다.

이듬해 우리는 엄청 데모를 했다. 5·18 광주사태 직전까지 일주일 내내 서울역으로 명동으로 몰려다녔다. 상가 주인들로부터 ‘학생들 도대체 왜 데모하느냐’며 핀잔을 많이 받았다. 중년의 신사는 지하철에서 지쳐 돌아가는 우리를 거의 경멸의 눈으로 봤다. 예나 지금이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데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박정희 시대의 여운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남유진 구미시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고 평가했을 때 나는 의아했다. 아무리 전대미문의 업적을 남겼다고 해도 근대 정치인을 신격화하는 표현은 좀 그렇다고 여겼다. 남 시장에게 물어봤다. 진짜 그런 표현을 썼느냐고. 그렇다고 했다.

5천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게 한 그 공(功)이 지대하다고 했다. 하늘이 큰 인물을 하나 내려준 것이라고. 더구나 자신은 박 대통령이 태어난 고향의 자치단체장이고, 그를 기리는 것은 한편 자연스럽다고 덧붙였다.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워도 이해는 됐다.

‘독재자 박정희’를 여전히 맹비난하는 부류도 있다.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은 지난해 말 탄핵정국의 거리 집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정희 100주년 동상을 광화문 광장에 세우겠다고 하는 데 찬성한다. 단 조건부다. 광화문 지하 100m에 묻으면 찬성한다”고 했다. 그 특유의 독설이다. 집회 참가자들이 깔깔 웃으며 박장대소했다. 그날 누리꾼들은 최고의 답이라고 환호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행성과 행성 간의 거리처럼 간극이 크다.

박정희식 정치를 정치학에서는 흔히 개발독재라고 평한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를 유보할 수 있다는 논리로 압축된다. 실제로 박정희는 그랬다. 그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했다. 대신 기업들에 근로자의 노후를 보장할 퇴직금 제도를 강요했다.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교사·공무원·군인에게는 박봉을 강요하는 대신, 국가 성장 후 보상한다는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오늘날 세계적 부러움을 사고 있는 의료보험제도도 그가 착근시켰다. 그가 한때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같은 사회주의적 정책의 배경이 이해된다. 어쨌든 그는 자유를 유보한 대신 압축성장에 성공했다. 제3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사례다.

100년전 1917년 11월14일 태어나 1979년 자신의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당한 정치인 박정희는 ‘자기 성공의 실패자’로도 평가된다. 자신의 정책이 성공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정치적 입지는 좁아지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역사적으로 경제성장이 고조되면 될수록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중산층이 커지고, 이는 더이상의 정치적 독재를 용인하지 않는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급성장한 중국의 미래를 앞으로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우정사업본부가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무산시켰다. 1년 전 발행한다고 결정했다가 번복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이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이 바뀌면 알아서 기는 전형적인 속성일 것이다.

신격화도 정치에서는 금물이지만, 또 한편 정치를 무오류의 세계에서 재단하는 것 또한 굉장히 위험하다. 정치는 결점을 가진 인간이 하는 것이지 신(神)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동상을 세우지 말자는 주장은 있을 법하지만, 동상을 지하 100m에 묻겠다는 데는 해학을 넘어 섬뜩함과 함께 퇴보를 느낀다. 우표도 그렇다. 우표수집가의 취미를 정치가 제한하면 곤란하다. 그렇게 해서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전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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