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저 옵서예”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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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0   |  발행일 2017-11-10 제33면   |  수정 2017-11-10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제주도
감귤·흑돼지·몸국·고기국수·옥돔…
‘환상의 섬’ 제주로의 가을 美食여행
토박이 삶 그대로 ‘낭푼밥상’ 별미
20171110
멀리 한라산 정상부가 눈에 덮이면 서귀포시 감귤원의 귤빛은 더욱 극채색의 기운을 뿜어낸다. 중국에서 발원해 일본을 거쳐 서귀포에 상륙한 온주귤은 한때 ‘대학나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제주 경제의 척추 구실을 했다. <서귀포시 제공>

19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뻔질나게 제주도를 들락거렸다. 처음엔 안 보이던 게 이젠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제주도를 한 줄에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놀기에는 ‘천국’, 살기에는 ‘지옥’!

일단 ‘제주 관광욕’의 본질부터 탐구해보자. 고작 며칠 ‘룰루랄라 버전’, 비경에 취해 탄성만 질러대고, 온라인에 뜬 유명식당들 스탬프 찍듯 방문하고, 마지막엔 공항 매점에 들러 감귤, 오메기떡, 서귀포산 제주은갈치, 제주초콜릿 등을 한 보따리 사갖고 휙 사라지는 관광객. 사실 제주도엔 왔지만 진정 제주도의 ‘속살’을 본 건 절대 아니다. 껍데기 제주도다. 그들은 여전히 육지에서 놀다간 것이다.

관광객은 제주도 토박이만의 괸당(관계)·수눌음(품앗이)문화를 알 턱이 없다. 해녀라지만 그건 관광객에겐 한갓 포토존에 불과하다. 그녀만의 저주같은 생활의 지층이 보일 리 없다. 누군 제주도를 ‘육지의 제2중대’라고 했다. 제주도 상권이란 것도 실은 육지자본이 그려놓은 것이다.

제주올레 특수 등으로 인해 ‘한달만 제주도에서 살기족’도 폭증한다. 그들 역시 진짜 제주도를 캐낼 수 있는 내공은 아니다. 최소 1년은 살아봐야 된다.

모 렌터카 본사를 찾기 위해 택시를 탔다. 토박이 기사였다. 그는 미소를 잃은 사람 같았다. 내가 본사 주소를 거듭 확인해주었지만 반응은 냉랭함을 넘어 시종 나를 외면하는 표정이다. 속사정이 있었다. 제주도는 오랫동안 유배의 고장이었다. 육지의 슈퍼갑인 선비들이 한철 잘 놀다(?)갔다. 광복 직후엔 4·3학살로 인해 제주인이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자연 육지것들에 대한 원망이 분출될 수밖에.

제주도에 산다는 것과 제주도에서 논다는 것. 엄격하게 구분해야 된다. 돈 쓰러 오는 관광객은 풍광에 반해 거기서 영원히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거기 살 수 있는 두 부류가 있다. 막장인생이거나 먹고노는 졸부이거나. 섬의 현실은 섬뜩하다.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세화리, 월정리 바닷가 핫플레이스는 이미 평당 수천만원대. 서울 강남 뺨칠 정도다. 정착민을 위한 일자리도 거의 없다. 고작 게스트하우스, 커피숍, 식당 정도.

치명적 습기는 관광객한테는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는 반년도 안 돼 벽지가 곰팡이투성이로 된다. 뽀송뽀송한 빨래도 언감생심. 다들 얼마 못 견디고 육지로 줄행랑친다.

요즘 ‘이효리 로망’이 화제다. 하지만 효리는 환상 속 제주도에 감금돼 있다. ‘서울식 욕망’으로 제주도에 살고 있는 것이다. 효리 때문인지 유명 가수들이 많이 자릴 잡았다. ‘제주도 푸른밤’의 작곡자인 최성원을 필두로 장필순, 조동익, 효리의 멘토인 윤영배, 재즈보컬리스트 강허달림, 마지막엔 강산에까지 가세했다. 육지에서 온 예술가들은 소낭 등 빈티지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연대한다. 패거리들은 올레족과 묶인다. 그 흐름이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거리를 축으로 이합집산된다. 또한 두모악갤러리도 여행가의 성지로 발돋움했다. 서울에서 들어온 문화게릴라 중 가장 에너제틱하게 노는 친구가 김백기다. 현재 그는 서귀포문화밧데리충전소 대표. 현재 대구에 사는 사윤수 시인과 권기철 화백도 잠시 거기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다.

◆가장 제주스러운 음식

이제 먹는 얘기로 넘어가자.

‘가장 제주도스러운 음식이 뭐지?’ 제주도 가는 지인들이 툭하면 기자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도 생각해 본다. 어떤 게 가장 제주도스러운 거지? 감귤, 흑돼지, 고사리육개장, 몸국, 대방어, 보말성게국, 해물뚝배기, 은갈치, 옥돔, 자리물회, 고기국수, 오메기떡, 빙떡…. 나는 ‘낭푼밥상’부터 알려준다. 제주도의 얼굴 같은 밥상이기 때문이다. 육지의 둘레밥상과 비슷한 밥상. 개인용 밥그릇을 낼 겨를이 없었던 해녀들은 한꺼번에 떠먹을 수 있는 세숫대야만큼 큼지막한 양푼 같은 유기 푼주에 밥을 담아 함께 퍼먹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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