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역설…저신용자는 ‘대출절벽’ 우려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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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3   |  발행일 2018-01-13 제12면   |  수정 2018-01-13
20180113

정부가 다음 달 8일부터 법정최고금리를 연 24%(현재 연 27.9%)로 낮추기로 했다. 법정최고금리 인하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으로 신용상태가 좋지 않아 대부업체 등을 이용해야 하는 저신용자 등의 이자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들에게 ‘대출 절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수익을 내기 힘들다고 판단한 등록 대부업자들이 폐업하고 음지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고, 규모있는 대부업체가 수익률을 생각해 저신용자 대출을 꺼리면서 결국 불법 사금융시장에 노출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정부가 불법 사금융 단속 등 원론적인 대책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빨려들어갈 우려가 있는 저신용자들이 실질적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동시에 피해 예방을 위한 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낮아진 최고금리, 그러나 그림의 떡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은 대부업 최고이자율을 25%까지 인하하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10월 법정최고금리를 인하하는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안과 이자제한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8일부터는 법정최고금리가 24%로 이전보다 3.9%포인트 낮아지게 됐다. 기존 대부업과 금융기관 법정최고금리는 물론 10만원 이상 사인 간 금전거래 시 최고금리도 연 25%에서 24%로 인하된다.


文 대통령 ‘이자부담 완화’ 대선 공약
내달 8일부터 年 27.9%→24%로 내려

신용대출 취급 대부업체 35곳중 28곳
162만 추정 저신용자 ‘대출제한’ 고려
소규모 대부업체 수백곳 폐업 이어져
불법 사금융시장 규모화 가능성 제기

저신용자 맞춤형 대출상품 개발 필요
고리 사채 피해예방 교육도 서둘러야



2002년 대부업법 제정 당시 연 66%였던 최고금리는 꾸준히 인하돼 2007년에 49%, 2010년 44%, 2011년 39%, 2014년 34.9%, 2016년 27.9% 순으로 지속적으로 내려오다 이번에 24%까지 떨어진 것. 인하할 때마다 대부업체의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금리가 하락추세였기 때문에 충분히 내릴 명분이 있었다. 2007년 말 5%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25%까지 내려간 만큼 대부업체도 돈을 빌려오는 금리가 낮아진 만큼 대출 이자도 내려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은 것.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11월 기준금리가 6년5개월 만에 인상됐고, 올해 들어서도 2차례 정도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업체 금리는 인하로 방향을 잡은 것. 이자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저신용자를 위해 최고금리를 내렸다는 당위성은 인정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대부금융협회의 금리비교 공시에 따르면 대부업체로부터 직접대출·중개대출을 포함해 신용대출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27.9%에 가까운 금리를 적용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대 금리를 제공하는 업체는 공시에 나온 42곳 대부업체 가운데 8곳에 불과하고, 전체 대출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가 채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법정최고금리가 곧 대부업체의 기본금리 또는 사실상 최저금리인 셈이다.

이런 탓에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대부업체 이용객은 3.9%포인트 이자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문제는 최고금리가 낮아지면서 수익률을 고려한 대부업체가 대출조건을 까다롭게 하면서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저신용자가 늘어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대부업체가 상대적으로 돈을 갚지 못할 확률이 높은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 대출을 대폭 줄일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한국대부금융협회가 러시앤캐시, 산와대부, 웰컴론 등 신용대출 취급 대부업체 35곳을 대상으로 법정최고금리가 연 25% 밑으로 떨어질 경우 경영 전략을 조사한 결과, ‘대출 축소’ 의견을 낸 곳은 19곳, ‘대출 중단’은 9곳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80%가량이 대출 제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것.

앞서 지난해 10월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공개한 금융위 비공개 내부문건에 따르면 최고금리 인하로 대출시장에서 탈락하는 저신용자 수는 최소 38만8천명, 최대 162만명으로 추정된다.

일부 업체들은 최고 금리 인하로 경영이 악화될 경우 대출만기 연장도 거부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대출 만기를 갚기 위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지난 1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17년 상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대출 거래기간은 3개월 미만이 25.5%,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이 15.5%, 6개월 이상 1년 미만이 21.6%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3개월 미만의 단기 이용자가 4명 중 1명 이상일 정도로 급하게 돈을 빌려 쓰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중 1년 미만 거래자 비중은 2016년 하반기 대비 단기이용 비중(59.3%)보다 3.3%포인트 증가한 상황이다. 또 돈을 빌린 이유는 생활비가 절반 이상(55.0%)을 차지했고, 직업군 별로 보면 회사원(60.5%), 자영업자(18.8%), 주부(5.5%) 등의 순이었다. 신용등급별로 보면 7~10등급이 전체의 75.6%에 이르렀다.

◆문닫고 음지로 들어간 대부업체들

최고금리 인하로 수익악화가 우려되면서 소규모 대부업체는 벌써 문을 닫고 있다.

금융위의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6월말 등록 대부업체 수는 8천75개로, 2016년 말보다 579개 줄었다. 특히 금융위 등록 대부업체는 1천80개로 229개 증가한 반면, 지자체 등록 대부업자는 6천995개로 808개 줄어들었다. 줄어든 지자체 등록 대부업체 중 개인대부업체는 798개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2016년 3월 법정 최고금리가 34.9%에서 27.9%로 인하된 이후 대형 대부업체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영업을 확대해 나간 반면,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중소형 대부업체 중 개인 대부업체는 감소 추세를 보인 때문이다.

구조적 수익성의 저하와 부실 자산 확대 등으로 대형 대부회사를 중심으로 시장지배력을 확대해 나가는 등 시장의 규모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을 닫은 대부업체들이 영업을 중단한 게 아니라 음지로 들어가 사실상 불법 대부업체 형태로 영업을 계속해나면서 불법 사금융 시장이 커졌을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이들 불법 대부업체는 저신용자에게도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빌려준 뒤 엄청난 이자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2016년 사법당국과 소비자로부터 의뢰받은 불법 사채 거래내역 310건을 분석한 결과, 연 평균이자율이 2천279%로 나타나 이용에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는 관계기관·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한 대부영업 감독 개선 TF 운영을 통해 대부업 감독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대부업자의 영업단계별 불건전 행위를 예방하고 서민 대상 신용공급자로서의 책임성 강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상환능력 고려없이 무분별한 대출을 하지 않도록 영업행위별 책임성을 강화해 여신심사역량을 제고하고 △손쉽게 빚을 권하는 대출관행 개선을 위해 대부중개시장의 영업질서 확립을 추진하고 △소비자 피해 우려가 큰 만큼 최소한의 역량을 갖춘 업체만 영업이 가능하도록 진입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으로 대출만기 연장 거부로 불법 사금융 시장에 빠져드는 사람을 보호해줄 수 없다”면서 “이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이 아니라 제도권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방안, 그리고 제때 갚을 수 있는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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