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네 (아)저씨네] 5학년 1반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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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3   |  발행일 2018-03-23 제38면   |  수정 2019-03-20
20180323

드디어 반 배정을 받았다. 5학년 1반. 지난해에 “이제 50대에 들어섰다”고 누군가에게 말을 했더니 그는 “아직 반 배정을 받지 않아서 40대도, 50대도 아닌 경계인”이라고 했다.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이 사용한 용어인 경계인(境界人)은 오랫동안 소속됐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금방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집단에도 적응되지 않아서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경계인은 그가 자리한 위치상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나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그동안 해오지 않았던 생각이나 일을 경험했다.

나에게 50대의 진입은 인생에서 여러 가지 변혁이 오는 것을 의미했다. 연령대마다 조금은 다른 감각의 변화를 겪지만 50대에 접어든 상당수는 자녀를 대학이나 군대에 보내고 오랫동안 떨어지는 과정을 통해 자립심을 키워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어떤 이는 아이가 자립심을 키워야 되지 부모가 무슨 자립심을 키우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자. 부모가 자신은 자립심이 강한 듯 위장한 채 자녀에게 자립심을 강조하지만 정작 부모가 자립심 부족으로 곤란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녀는 대학,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의외로 빠른 속도로 익숙해져 간다. 그에 비해 의연하리라 생각했던 부모가 오히려 외로움에 싸여 방황한다. 특히 전업주부의 경우 자녀 뒤치다꺼리에 정신없다가 자녀가 집을 떠나고 덩달아 할 일이 없어지니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그동안 가족을 챙긴다는 미명 아래 혼자 즐기며 행복을 찾는 자립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다. 빈둥지 증후군은 자녀가 독립해 집을 떠난 뒤에 부모나 양육자가 경험하는 슬픔, 외로움과 상실감인데 가정에서 주된 양육자의 역할을 맡는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갱년기라는 신체적 변화와 비슷한 시기에 찾아오는 빈둥지 증후군은 중년기 여성을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나 역시 아들 둘을 1~2년 사이 잇따라 타지로 떠나보낸 뒤 또래 여성이 겪는 무력감을 잠시나마 경험해봤기에 그들의 말 못할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50대의 반 배정을 받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됐다. 반 배정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본격적인 학교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학생은 학교 생활의 목표한 바를 잘 이뤄내야 한다. 어릴 적 학교 생활이건, 50대에 들어선 이의 학교 생활이건 궁극적 목표는 다양한 공부를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목표지향적 삶’에서 ‘과정중심적 삶’으로 그 방향을 틀어야 한다.

요즘 개념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다. 개념미술은 종래의 예술에 대한 관념, 즉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는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미술적 제작태도를 가리킨다. 우리 삶 역시 개념미술처럼 발전해야 한다. 완성된 것보다는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

목표지향적인, 속도 위주와 채워나가는 삶에서 벗어나 느리고 비우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 생활은 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것도 있지만 많은 학생이 함께하는 만큼 학교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동체적 삶을 위해서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을 배려하는 삶의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 이기기 위해 경쟁하고, 이 경쟁 속에서 남을 짓밟고 앞서가기보다는 타인과 호흡을 맞춰 걸어가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늘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둔해진 몸과 정신이 민첩하게 움직이질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자신을 담금질하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내실 있는 삶을 다져나가야 할 때가 50대가 아닐까.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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