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뮤직톡톡] 스윙댄스와 반항의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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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6   |  발행일 2018-04-06 제39면   |  수정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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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밴드 반주에 맞춰 스윙댄스를 추고 있는 백인 남녀.

마치 믹스커피에 들어가는 설탕과 프림처럼 음악 장르와 댄스는 상호 보완제다. 각각의 음악 장르마다 춤의 장르도 공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옛날 궁중에서 귀족들이 파티하며 남녀가 신체 접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왈츠’라는 장르였을 것이다. 근대로 접어들며 스윙댄스와 우리나라에서만 왜곡돼 전해진 블루스. 이 밖에 삼바·탱고 같은 음악 장르들은 모두 춤과 상생의 관계다.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미국의 주류음악은 빅밴드가 연주하는 ‘스윙음악’이었다. 1930년대 미국의 무도장에서도 역시 빅밴드 연주에 맞춰 수많은 백인 남녀 커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사교댄스를 추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재즈는 어렵다’라는 말대로라면 감상하기도 어려운 장르에 맞추어 남녀가 어떻게 춤을 추었을까. 40년대 이전까지는 재즈라는 장르는 어려운 음악이 아니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조차도 스윙댄스 열풍이 일어날 정도였다. 듣기조차 어려운 재즈였다면 쉽게 대중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어려운 재즈’는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30년대 후반 극장과 무도장에서 연주하던 뮤지션들은 음악의 다양성을 기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남녀가 짝을 지어 춤출 수 있게 하려면 적당한 템포에 귀에 속속 들어오는 멜로디를 리듬에 실어서 연주해야 한다. 여기서 적당한 템포는 일반적인 심장 박동 수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 즉 100~140의 템포로 연주하는 것이다. 이 템포는 현재에도 적용이 된다.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댄스그룹들의 음악 또한 이 템포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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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매일같이 똑같은 레퍼토리로 연주를 하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딘가?’라며 자신의 음악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내 음악은 춤추는 자들의 사교를 위한 것에 불과한가’ 그런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급기야 고급적 욕망을 가진 재즈뮤지션은 생계를 위한 비즈니스 연주를 마치고 자그마한 카페에 따로 모여 그들만의 연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 ‘비밥(Bebop)’이라는 장르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비밥이란 놈이 ‘재즈는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주를 했을까? 어떻게 하면 어렵다는 소릴 들을 수 있는 장르를 만들어 낼 건가? 일단 그들은 더 이상 사교댄스를 위한 템포, 즉 춤추기 적당한 템포의 연주를 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빠른 템포이거나 엄청 느린 템포로 연주했다. 또한 박자를 뒤틀어 연주하는 ‘변박’을 첨가하였다. 여기에 ‘학교 종이 땡땡땡’ 같은, 누구나 아는 멜로디를 피해서 처음 듣는 음률의 연주를 한 것이다. 쉽게 말해 모르는 멜로디에 박자를 셀 수조차 없는 템포로 연주를 해버린 것이다.

여기엔 인종 차별적 요소도 작용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밥의 창시자들은 대부분 흑인이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백인들이 모여든 곳에서 연주하는, 다시 말해 춤추기 위해 동원된 흑인 뮤지션이라는 현실이 싫었던 것이다. 실제로 비밥 곡들을 들어 보면 손으로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빠르다. 가장 빠르게 들어본 곡은 거의 템포가 400에 이르며 들을 때마다 이 양반들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음악 장르계의 F1인 셈이다.

드럼을 연주하는 나도 300에 가까운 템포로 연주하지만 한 번에 한두 곡 정도만 연주가 가능하다. 그만큼의 체력과 순발력이 받쳐줘야 된다. 여기서부터 음악은 사교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감상용’ 장르가 되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비밥재즈’라고 부른다. 혹자들은 비밥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혁신적 음악이 탄생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새로운 음악은 하늘의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고 치밀하게 연구를 거듭해 나온 장르도 아니다. 일종의 ‘반항심’에서 파생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반골의 성향을 가진 이들이 제법 있다. 내 딸도 조금 있으면 반항의 사춘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무작정 다그치지 말고 왜 그러는지 반항의 이유라도 ‘다정하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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