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발목 잡힌 IT한국 성장, 동남아 국가에도 밀린다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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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1 07:36  |  수정 2018-06-21 07:37  |  발행일 2018-06-21 제21면

한국은 ‘한때’ IT(정보기술) 강국이었다. 1990년대 말 정부는 국가 전략으로 인터넷 진흥정책을 추진하면서 신기술 창업과 벤처기업 성장을 적극 독려했다. 덕분에 한국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인터넷 환경을 자랑하게 되었고 IT 벤처 열풍도 불었다. 이때 이해진(네이버 창업주), 이재웅(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주), 김택진(NC소프트 대표), 김정주(넥슨 대표), 김영달(아이디스홀딩스 대표) 등 젊은 스타 CEO가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IT강국이란 호칭은 옛말이 돼버렸다. 여러 지표에서 한국의 IT산업이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10년간 VC 투자 증가율 2.2% 불과
지난해 1천억원 투자 받은 기업 없어

태국·싱가포르 등 동남아 4국 급성장
저렴한 창업비용·고급인력 등 강점

韓 핀테크 이용률 32% 세계 평균 수준
클라우드 준비 정도도 글로벌 중위권


20180621

◆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밀리는 IT 한국

최근 성장 조짐을 보이는 동남아 스타트업이 크게 늘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반면에 한국 기업들은 동남아 기업들에 크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15일 내놓은 ‘아세안 4개국 TIMS 스타트업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TIMS 국가에서 최근 10년간 연평균 벤처캐피털(VC) 투자 증가율은 54%에 달했다. TIMS는 아세안 주요 4개국인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를 뜻한다.

한국의 VC 투자 증가율은 2.2%에 그쳤다. TIMS의 투자 증가율과 비교하면 25배 차이가 난다.

아세안 각국은 스타트업 시장에서 각자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태국은 저렴한 창업비용, 인도네시아는 스마트폰 사용인구 9천만명이라는 거대 시장, 말레이시아는 효율적인 IT 인프라와 고급 인력, 싱가포르는 글로벌 핀테크 및 블록체인 허브화 등이 강점이다.

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오미세고·토코피디아 외에도 동남아시아에서 우버를 넘어선 싱가포르 차량공유 업체 그랩, 오토바이 배달로 성공한 인도네시아의 고젝 등이 많게는 2조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반면에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1천억원 이상 투자금을 유치한 기업은 없었다.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국내 기업은 숙박 애플리케이션 업체 ‘야놀자’다. 2회에 걸쳐 800억원을 유치했다. 네이버가 투자한 ‘우아한 형제들’도 총 유치금액은 350억원에 그쳤다.

보고서는 IT 강국이던 한국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발전 속도가 더뎌졌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의 원천 기술력은 높지만 문화적·지리적 폐쇄성과 불필요한 규제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핀테크 이용률, 중국·인도에 뒤져

한국의 지난해 핀테크 이용률은 32%로 세계 20개국 가운데 중간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핀테크 이용률은 중국·인도가 각각 69%와 52%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핀테크는 금융과 정보기술(IT)의 융합을 통한 금융서비스로, 페이 서비스 등 간편결제·지급 서비스, 피투피(P2P) 금융서비스, 간편송금, 로보어드바이저 등 자산관리 서비스 등이 주요 분야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6일 ‘핀테크 주요 트렌드와 시사점’ 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는 글로벌 컨설팅·회계 법인 언스트앤영(EY)이 산출한 2017년 핀테크 도입지수(핀테크 이용률)에서 한국은 32%로 세계 20개국 평균인 33%에 근접한 수준으로 나와있다. 핀테크 이용자는 한 달에 2개 이상의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지난해 세계 평균 이용률은 33%로 집계됐다.

캐나다(18%), 일본(14%), 벨기에와 룩셈부르크(13%) 등 금융산업이 일찌감치 발달한 나라들은 이용률이 낮고 신흥국이 평균 이용률이 높은 편이다. 금융 인프라와 관련 규제가 덜 발달했으나 IT는 성장속도가 빠른 나라들에서 핀테크가 활성화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국내 핀테크 산업은 최근 몇 년 전까지도 불모지에 가까웠으나 2016~2017년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난해 말 기준 기업 수가 223개로 늘어났다. 지급·결제 분야가 91개 업체로 41%를 차지하며 가장 많고, P2P(투자자와 차입자 사이의 거래를 중개하는 방식) 금융 분야가 87개 업체(39%)로 뒤를 잇는다.

국내 간편송금 서비스 선두주자인 ‘토스’(2015년 2월 출범)는 한국기업으로서는 처음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 35위로 진입했다.

◆클라우드 준비 정도는 글로벌 ‘중간’ 수준

최근 전 세계 클라우드 컴퓨팅 정책 평가에서도 한국은 중간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IBM 등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구성된 BSA 소프트웨어 얼라이언스가 지난 3월 발표한 ‘2018 BSA 글로벌 클라우드 컴퓨팅 스코어카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24개 주요 IT 경제국의 클라우드 준비도 종합 순위에서 12위를 기록했다.

BSA 글로벌 클라우드 컴퓨팅 스코어카드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채택 및 성장을 위한 각국의 준비 수준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데이터 보호 △보안 △사이버 범죄 △지적 재산권 △국제 표준 및 국제적 조율 △자유무역 촉진 △IT 준비도와 광대역 배치 7개 분야에서 24개국의 법률 및 규제 현황을 평가한다.

한국은 데이터 보호, 보안, 사이버 범죄, 국제 표준 및 국제적 조율, 자유무역 촉진 등 부문에서는 각각 중위권 또는 이보다 밑도는 성적을 기록했다. BSA 소프트웨어 얼라이언스는 한국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하고 있고, 이 법이 데이터를 취급하는 기업과 조직에 매우 엄격한 요건을 부여하고 있어 클라우드 컴퓨팅에 중요한 데이터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데이터 보호 분야에서 24개 조사 대상국 중 11위에 머물렀다. 반면에 IT 준비도와 광대역 배치, 지적 재산권 부문에서는 각각 3위와 5위의 높은 성적표를 받았다.

보안은 중위권에 조금 못 미치는 15위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아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부 정부 기관의 보안 요구조건이 관행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다. 일부 IT 제품은 보안 평가를 위한 국제 공통평가 기준(CC)을 이미 통과했음에도 한국에서 추가적인 테스트 요건을 부과했다. 글로벌 IT 기업의 한국 시장 진출 시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 것이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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