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민자기업보다 못한 비수도권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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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7   |  발행일 2018-08-07 제26면   |  수정 2018-08-07
인천공항 직통 KTX 폐지
공항철도 수익보장 의혹짙어
지방 편의보다 민자기업 우선
비수도권 세계화에 악영향
文정부 공정사회추구 말로만
[화요진단] 민자기업보다 못한 비수도권
윤철희 편집국 부국장

비수도권 자치단체의 강력한 반대에도 결국 공기업 코레일은 잇속을 챙기는 선택을 했다. 감독기관인 국토교통부도 의례히 코레일의 손을 들어줬다. 태생부터 말 많았던 동대구역과 인천공항을 오가는 KTX노선이 이렇게 폐지되면서 다시 한 번 비수도권 국민의 서러움을 곱씹게 됐다.

인천공항행 KTX는 2014년 첫 운행을 시작했지만, 그 출발부터 비수도권에선 탐탁잖게 여겼다. 정부가 인천공항 일극의 원 포트(One Port) 정책에 쐐기를 박기 위한 조치라는 의혹에서였다. 이 노선은 인천공항철도(AREX)를 건설할 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인천공항 개항 후 8년 만에 2단계에 걸쳐 간신히 개통된 공항철도가 턱없이 적은 이용객으로 ‘혈세 먹는 하마’라는 비난이 잇따르자 수요 확보 차원에서 개설된 것이다. 여기다 당시 공항 접근권을 내세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전략도 한몫했으리라.

여하튼 ‘환승 없는 편리함’을 내세워 KTX가 운행되는 비수도권 지역의 의혹 어린 시선을 무마했고, 경부선의 경우 하루 평균 2천여명이 이용할 정도로 나쁘지 않은 결과를 이어나간 것 또한 사실이다. 국토부가 이 노선 계획 당시 예상했던 이용자 수는 2016년 1천400여명이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AREX 노선 자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다. 인천 청라지구 등 신도시가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공항철도 용도보다는 이 지역 주민의 출퇴근 노선으로 변질된 것이다. 개통 당시 하루 1만7천여명 수준이던 이용자 수는 최근 22만여명으로 늘었다.

코레일이 지분을 넘겨준 민자기업 AREX(국민·기업은행 컨소시엄)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비수도권 지역민의 불편을 도외시한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동대구~인천공항 노선은 수익성이 어느 정도 보장됨에도 이번에 ‘도매금으로 날려버렸다’는 의혹이 나온다. 이는 코레일이 공기업의 경영적인 측면에서 배임 의혹과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적폐’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공기업의 상궤를 벗어난 행위에 울화통이 치밀지만 이 또한 백 번 양보해 지역민이 불편을 감수할 수는 있다. 서울역이나 광명역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힘들지만 환승에 따른 비용이 직통보다 싸다는 얄팍한 상혼에 못이기는 척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지리에 생경한 외국인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비즈니스나 국제행사 참가를 위해 외국인을 서울역이나 광명역에서 환승을 거쳐 대구로 초청한다면 이들은 십중팔구 고개를 흔든다. 거점공항 접근권은 국제 비즈니스는 물론 의료관광·컨벤션산업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당연히 글로컬(Glocal·지역의 세계화)로 나아가려는 대구나 광주 등 비수도권 주요 도시엔 치명상이다. 글로컬은 수도권의 패권주의에 맞선 비수도권의 생존 방책이다. 대구가 통합신공항 건설에 목을 매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에 인천공항 직통 KTX노선 운행이 큰 몫을 했다는 점은 국토부나 코레일 역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당장 광주에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내년 광주에서 열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이들의 불편은 불문가지다. 이 대회에는 20여개국 선수·임원만 1만5천여명이 참가한다. 대구에서도 A병원이 지난 2월부터 인천공항을 통한 러시아권 의료관광객 유치를 포기했다. 이 병원의 담당 의사는 “외국인 환자들이 접근성 떨어지는 대구에 오기를 꺼려한다”며 “이런 하드웨어를 확보하지 못하면 대구시의 의료관광 사업은 성공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렇게 수도권의 무한탐욕에 휩쓸려 비수도권의 주요 도시마저 경쟁력을 잃어가면, 그 폐해를 무엇으로 어떻게 메울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분권화·균형발전을 국정 정책기조로 내세웠지만, 정부 부처나 공기업은 대놓고 비수도권을 홀대하는 현 상황, 이게 이 정부가 그토록 추구하고자 하는 공정사회일까.윤철희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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