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프랑스 에트르타(Etretat)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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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4   |  발행일 2018-09-14 제37면   |  수정 2018-09-14
세기의 예술가들에 영감 준 은빛 해안과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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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즈 다몽 위에서 본 알바트르 해안과 팔레즈 다발.


85m 석회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팔레즈 다발’
괴도 뤼팽이 보물 숨긴 삐죽한 바늘 형상 바위
자연주의 작가 모파상이 이름붙인 코끼리 바위
기이한 아름다움 세기의 문인·예술가들이 감탄

모네가 담은 인상 화풍‘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모파상과 인연 닿은 곳…거장의 예술적 오브제
비탈길 오르면 마을·해변 조망 팔레즈다몽 언덕
파란하늘 배경으로 평원에 솟은 노트르담 교회


한번 보면 절대로 잊히지 않는 풍경, 그것이 프랑스 에트르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이곳은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이 쓰고 그리며 영감을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에트르타는 노르망디 레지옹 센마리팀 데파르트망에 있는 작은 도시다. 이곳의 명성은 단연 알바트르 해안을 끼고 있는 팔레즈 다발과 다몽 절벽의 기이함과 아름다움 때문이다.

이곳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 이곳이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때문이다. 그녀에게 진상할 굴을 이곳 바다에서 채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을의 아름다움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세기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던 알퐁스 카에 의해서였다. 그는 풍자소설 ‘파 디에즈’로 명성을 날렸는데, “친구에게 처음으로 바다를 보여줘야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에트르타를 선택할 것”이라며 에트르타의 아름다움을 알렸고, 이후 수많은 명사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유명 관광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를 에트르타로 이끈 것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손바닥 크기의 삼중당 문고본으로 책상 밑에서 몰래 읽었던 그 소설의 감동은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는데, 그 소설의 배경이 이 도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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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즈 다몽 위의 노트르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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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즈 다몽 위에서 본 마을

벨기에 브뤼헤에서 에트르타까지는 380㎞나 되는 거리였지만 잔느의 슬픈 일생이 묻어 있는 그곳을 찾아간다는 생각에 운전도 즐거웠다. 노르망디 해안도로의 한적한 풍경을 즐기다보니 해가 제법 어둑해서야 에트르타의 예정된 캠핑장에 도착했다. 바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람에 묻어오는 내음이 바다가 가까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비좁은 암막 텐트 한 쪽을 제쳐 별빛을 들여 놓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나를 깨운 것은 신선한 해풍에 실려온 새소리였다. 후각과 청각이 한꺼번에 깨어나면서 바다를 처음 보는 알퐁스 카의 친구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에트르타 다운타운은 크지 않았다. 한번만 지나가보면 다 외울 것 같은 작은 마을길을 급히 빠져나갔다. 방파제 가까이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자 ‘처음 본 바다’가 거기 있었다. 굵은 자갈돌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바다 가까이로 가보는데 해변을 에워싼 하얀 절벽이 시선을 빼앗는다. 모파상이 ‘코끼리가 코를 바다에 담그고 있는 모습’이라고 형용한 그 코끼리 바위였다. 주인공 잔느가 자살하려고 섰던 바로 그 바위였다.

모파상을 ‘자연주의’ 작가로 키워낸 것은 이곳 에트르타의 자연이었던 것 같다. 그는 노르망디 투르빌쉬라르크에서 태어났는데, 8세 때 부모가 별거하면서 어머니를 따라 이곳 에트르타로 와서 자랐다. 그는 에펠탑을 보고 싶지 않아 에펠탑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한데,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란 그가 파리의 거대한 철탑을 혐오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어쨌든 이 해변에서 가장 인상 깊은 풍경은 모파상에 의해 이름 붙어진 ‘코끼리 바위’다. 85m의 석회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팔레즈 다발로 불린다. 이 바위 앞에는 또 삐죽한 바늘 형상의 바위가 함께 서 있다. 바로 모리스 르블랑의 ‘기암성(奇巖城)’에서 괴도 뤼팽이 보물을 숨겨둔 바위다. 그 속은 비어 있고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비밀창고로 쓰인다는 설정은 실물로 보니 더욱 그럴 듯했다. 이 소설에서 뤼팽은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이 경치와 이별하는 것이네. 얼마나 아름다운가?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하늘, 좌우로 연결된 에트르타의 절벽, 절벽에 연결된 세 개의 문. 세 개 모두 이 성의 주인을 위한 개선문이지. 그리고 성주는 바로 나였네. 모험왕! 에귀이유 크뢰즈의 왕! 기괴하고 초자연적인 왕국!”이라고 슬프게 읊조린다. 보물보다 더 귀한 경치라니. 내가 이곳을 보지 못했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대사이지만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이 절벽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모리스 르블랑이 ‘절벽에 연결된 세 개의 문’이라고 한 것은 세 개의 코끼리 바위를 말한다. 이 세 바위는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라 엄마, 아빠, 아기 코끼리로 부르기도 한다. 가장 안쪽에 있는 아빠 코끼리는 두툼한 덩치로 듬직해 보이고, 가운데에 있는 엄마는 콧날이 날렵하다. 엄마 오른쪽에 있는 녀석은 작고 뭉실한 게 통통한 아기 같다. 아빠 코끼리는 엄마 코끼리 언덕에 올라야만 볼 수 있으며, 엄마 코끼리는 해안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팔레즈 다발이고, 아기 코끼리는 언덕 위에 교회가 있는 팔레즈 다몽이다.

모파상과 르블랑 외에도 이곳에 흔적을 남긴 문인 예술가들은 수 없이 많다.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는 아들과 함께 한동안 거주하기도 했으며,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레 미제라블’의 빅토르 위고와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 푸르스트, 작곡가 쟈크 오펜바하 등도 이곳에 머물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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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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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르타 다운타운 광장

이곳은 특히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마티스, 부댕, 루소, 들라크루아 등 수많은 화가들이 이곳을 그렸다. 당시 상업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유명 화가 쿠르베 역시 에트르타 절벽에 사로 잡혀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모네는 ‘폭풍 후의 에트르타’를 그리고 있는 쿠르베를 보고 “그것이 내게 벅찬 일일지라도 쿠르베가 그림을 훌륭하게 완성하고 나면 나 역시 에트르타의 절벽을 그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방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쿠르베가 사실적으로 이곳의 풍경을 그렸다면 모네는 이곳의 인상을 담으려 했던 것이다.

모네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에트르타 인근의 르아브르(Le Havre)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상주의의 출발을 알린 그의 ‘인상, 일출’도 르아브르 항구의 일출을 그린 것이다. 그에게 에트르타는 진작 노르망디 최고의 풍경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그는 볼 때마다 달라지는 에트르타의 바다와 하늘에 주목했다. 그리고 쿠르베의 사실주의 화풍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을 그렸다. 이 그림은 모네가 1883년 2월 무렵 3주간의 이곳 방문 기간에 완성했다. 이 그림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니, 어떤 천문학자는 절벽의 높이와 태양의 고도를 분석하여 ‘1883년 2월5일 오후 4시53분’에 완성된 그림임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1886년까지 매년 이곳의 풍경을 담았다.

이 시기에 모네는 이곳에서 모파상과도 자주 만났다. 그래서인지 모파상이 묘사했던 이곳 풍경을 모네 그림의 ‘인상’과 결부시키는 비평가들도 많다. 어쨌든 두 예술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바로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던 셈이다. 모파상의 대표작들이 이곳에서 집필되었듯이 모네 역시 이곳의 풍경을 50점 넘게 그렸으니, 에트르타의 기기묘묘한 색과 풍경은 모파상의 소설적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고, 모네의 인상주의 화풍을 확립시킨 중요한 오브제이기도 했다.

코끼리 바위를 비롯하여 에트르타의 마을과 해변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은 팔레즈 다몽 언덕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 잠시 비탈길을 오르니 제법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한 노트르담 교회가 황량함을 가려주었다. 1927년 이곳 하늘 위를 날아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였던 낭주세르와 콜리를 기리는 기념관도 있었다. 마을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나무와 흙으로 만든 콜롱바주 형식의 노르망디 전통 가옥이 장난감처럼 올망졸망 늘어서 있다. 마을에서 해안으로 이어지는 대로는 모파상을 기념하여 ‘기 드 모파상 길’이라고 불린다. 이 길 15번지의 르블랑이 살던 집이 ‘아르센 뤼팽의 집’으로 공개되고 있고, 모파상의 기념관도 있다.

이 언덕의 묘미는 이곳이 내어주는 시야와 상념들이다. 절벽 끝에 자리를 잡고 찬찬히 둘러보았다. 흰색 해안이 구분짓는 마을과 바다, 그곳을 하나로 감싸는 푸른 하늘은 시선을 따라 여러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곳에는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파노라마에도 담지 못할 길고 먼 경치, 연속촬영으로도 잡히지 않는 찰나의 색감들, 초목의 움직임으로만 드러나는 바람, 마리 앙투아네트의 식탁에서나 날 법한 바다 내음. 거기에 자살을 결심하고 절벽 위에 서 있는 잔느, 절벽의 둥근 아치 사이를 드나드는 뤼팽, 부러운 눈으로 쿠르베를 바라보는 모네가 겹쳐진다.

이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본다. 떠들고 뻐기며 북새통이다. 모파상이 조용한 마을을 온통 소란스럽게 만든다고 투덜댄다. 르블랑도 이제 그만 가라며 불평한다. 알퐁소 카가 은근히 비꼰다.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장미꽃에 가시가 있다고 늘 불평하는데, 나는 쓸데없는 가시나무에 장미가 핀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마르셀 푸르스트가 거든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보다 새로운 시각을 갖는 데 있지.” 모네는 빙그레 웃으며 반짝이는 은빛 물결을 재빨리 캔버스에 잡아넣는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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