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코 후미코 여사 ‘독립유공자’ 서훈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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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5 07:27  |  수정 2018-11-15 07:27  |  발행일 2018-11-15 제2면
박열 의사 日 부인…사후 92년 만
가네코 후미코 여사 ‘독립유공자’ 서훈

일제강점기 일왕 암살을 계획했던 문경 출신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의 일본인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여사<사진>가 사후 92년 만에 독립유공자가 된다. 국가보훈처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가네코 후미코를 독립유공자로 선정해 발표한다. 박열 의사는 1990년 국가유공자로 서훈됐다.

문경에 있는 박열의사기념관은 지난해 영화 ‘박열’ 개봉 이후 국민적 지지와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4월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동안 박열의 지원자로서만 알려져 있던 가네코 후미코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서 그 업적을 당당히 인정받게 됐다.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태어났으나 당시 아버지가 그녀를 입적시키지 않아 무적자로 친척집을 전전하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 이후 고모의 양녀로 들어가 충북 청원군 부용면(현재 세종시 부강면)에서 약 7년간 모진 학대를 당했다. 1919년 3·1운동 때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에 크게 감명을 받아 그 해 일본으로 돌아가 여러 사상가들과 교유하며 아나키스트가 됐다. 그녀는 1922년 3월 도쿄에서 박열을 만난 뒤 재일 조선인 아나키즘 항일 운동에 투신, 박문자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옹호하고 일제 탄압 정책에 항거했다. 두 사람은 1923년 10월 일본 왕세자 결혼식에서 일왕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유입하려다 계획이 누설돼 체포됐다. 가네코 후미코는 사형 판결을 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1926년 7월23일 23세의 나이로 의문을 남긴 채 숨졌다.

가네코 여사 묘소는 당초 문경읍 팔영리 주흘산 자락에 조성됐으나 일제의 철저한 감시 속에 방치된 채 잊혔다가 1973년 아나키즘 독립지사들이 뜻을 모아 묘역을 정비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2003년 박열의사기념공원 조성과 함께 가네코의 묘소도 문경 마성면 오천리 박열의사기념관 옆으로 이장됐다. 박열의사기념관은 2003년부터 일본 가네코 후미코 연구회와 교류하면서 홀수년 7월23일 문경에서 가네코 추도식을 열고 있으며 짝수년엔 일본 야마나시에서 갖고 있다.

문경=남정현기자 nam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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