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가버나움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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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5   |  발행일 2019-01-25 제42면   |  수정 2019-01-25
“참담한 세상에 왜 태어나게 했나요” 아이들의 고통
20190125

베이루트 빈민가에 살고 있는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출생기록조차 없어 제 나이도 정확히 모른 채 살아온 소년이다. 부모에게 평생을 착취당해온 그는 길거리에서 동생들과 과일주스를 팔거나 동네 슈퍼마켓에서 배달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간다. 어느 날 아끼는 여동생 사하르가 슈퍼마켓 주인인 아사드에게 팔려가듯 결혼을 하게 되자 부모님을 원망하며 집을 떠난다.

‘가버나움’은 12세 소년의 눈을 통해 바라본 레바논의 비참한 현실을 그린다. 다소 익숙한 설정과 소재지만 사실성에 기반한 레바논 하층민의 참담한 현실은 영화적 감흥을 넘어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수갑을 찬 자인이 법정으로 끌려 나오는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살해 혐의로 수감된 그는 자신의 부모를 고소했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게 그 이유다.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하다”며 “그럴 바엔 애들을 그만 낳게 해달라”고 말한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자인 부모의 얼굴에선 억울함과 절망감이 비쳐진다.


12세 소년이 바라본 레바논 하층민 비참한 현실
거리에 방치된 아이들, 정부·어른 무책임 지적



자인의 숨겨진 사연을 보여주기 위해 시선은 다시 그의 과거 일상으로 돌아간다. 동시에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 같은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레바논의 현실은 사실 영화보다 나을 게 없다. 자인처럼 부모로부터 어떤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로 넘쳐나는 베이루트 슬럼가에서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베이루트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대부분이 “죽었으면 좋겠다. 좋은 말도 못 듣고 배고픈데 먹지도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한 소년의 악전고투기를 따라가던 카메라는 빈곤과 질병,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빈민층과 불법체류자들의 삶도 놓치지 않는다. 특히 누구보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거리에 방치된 채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는 건 견디기 힘들다. 자인 역시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지만 집을 뛰쳐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아프리카 불법체류자 라힐을 만나 도움을 받지만 라힐의 한 살 아들 요나스를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

영화는 자인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의 기본적인 삶은 물론 꿈과 희망까지 앗아간 어른들과 정부의 무능, 무책임을 지적한다. 누구보다 밝고 천진난만해야 할 자인의 얼굴과 눈빛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과 어두움은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길거리에서 캐스팅된 자인 알 라피아를 포함해 출연진 모두 비전문 배우로 구성했다. 덕분에 연기라고는 믿기 어려운 사실적인 접근이 시종 특별한 울림과 감동을 전한다. 2018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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