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선]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발자국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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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1   |  발행일 2019-03-21 제30면   |  수정 2019-05-01
예술과 기술은 사실상 하나
고도의 과학원리 찾기 위해
예술적인 영감도 필요한 법
아무런 보상이 없다고 해도
가치있는 일은 할 수 있어야
20190321
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 연출평론가

지난 토요일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모반’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걸고 창단한 극단의 공연소식을 전할 때마다 시니컬한 웃음을 띠며 “너는 힘도 좋다. 아직도 나라를 구할 기세로 사는구나”하던 친구로부터였다. 곱게 묶은 리본을 푸니 하얗고 네모난 도자기 접시가 나왔다.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서 왼쪽 위 귀퉁이 사이로 다섯 개의 발자국이 찍힌.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처음 디딘 발걸음같아 보였다. 올 초, 간절한 마음을 품고 내달린 5년의 극단 활동에 지쳐 두어달 나를 가두고 지낼 무렵, 문득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굳은 벽에 작은 틈을 내는 일이 왜 이리 힘들고 외롭냐”고 푸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에 위로를 전하려던 듯 접시바닥에 무뚝뚝하게 붙어있는 메모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네 걸음은 언제나 사람과 예술을 향해 있었고, 마음에 자국을 남겼다.’

친구의 민망한 노트에 ‘나는 예술가인가? 도대체 예술가란 무얼 하는 사람인가’하고 자문해 보았다. 문화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천재 예술가들을 연구해 온 베레나 크리거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예술가란 정신적 활동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정의는 르네상스시대를 거치고서야 만들어졌다. 중세까지만 해도 신에게 받은 재능을 수행하는 모방적 수공업자로 취급되다가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서야 천부적 재능에 더해 독창성을 발휘하는 창조자로 바뀐 것이다. 신 중심의 위계질서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의 이행이라는 엄청난 변혁을 겪고 얻어진 인식의 변화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또 다른 변혁, 즉 4차 혁명의 시대에 예술가는 어떤 존재일까. 곧 사라질 직업과 새로이 생겨날 직업의 목록을 보면서 모든 직업은 사회적 쓸모에 의해 소멸·생성된다는 냉혹한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예술가란 직업은 어떤 연유로 존재하고 있는가. 예술의 효용이 즐거움에 있다면 그것은 생존과 상관없는 문제일 터.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야 하는 대중은 이 호사스러운 일에 돈을 쓰고, 창작자들은 재능과 시간을 쏟아 붓고도 가난과 불확실한 미래를 견뎌야 한다는 말인가. 특정 상품이 생산되는 데는 소비자의 욕구가 필수 요건이듯이 예술과 예술가의 존재여부도 마땅히 그 쓸모와 향유자의 욕구에 따라 결정될 것 아닌가.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자조적 우스개가 떠돌 만큼 과학기술의 우월한 효용성이 강조되는 지금, 예술과 기술이 하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다소 위안이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예술과 기술이 통합된 개념의 단어 ‘테크네(Techne)’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예술적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기술과 장인정신을 포함한 단어였다. 예술가요 과학자였고, 기술자이면서 창조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좋은 예다.

테크네가 로마시대에 아르스(Ars)로 변용되고 근대에 들어 실험중심의 과학이 발달하면서 예술과 기술로 분리되긴 했지만 예술이 본질적으로 쓸모 있는 분야였고, 예술가 또한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던 건 분명하다. 사실 예술과 과학은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왔다. 영화와 뮤지컬로 큰 성공을 거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과학의 발전에서 영감을 얻었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음악 덕분에 시간과 공간을 결합한 상대성이론을 창안할 수 있었다. 그는 고도의 과학적 원리나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영감에 의한 놀이와 같은 행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적 IT 회사가 앞다투어 회사 내에 예술가를 위한 창작공간을 지원하고 직원과 예술적 영감과 창의력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내가 크고 작은 무대를 만들면서 안게 된 경제적 부담을 알게 된 제자가 물었다. “그러면 왜 연극을 하나요?” “정말 가치 있는 일은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답하면서도 나는 말끝을 흐렸다. 이제 친구의 선물을 받고 보니 내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을 알겠다. 닫힌 마음에, 그리고 높은 벽에 자국이라도 남기는 일.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 연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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