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정선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總圖)’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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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20   |  발행일 2019-12-20 제39면   |  수정 2020-09-08
수려한 금강산 길 따라 겸재 정선의 예술세계 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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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금강내산총도’, 비단에 수묵담채, 36.0X37.4cm, 171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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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시간이 만든 공간이다. 눈길이 되었다가 꽃길이 되고 낙엽이 쌓여 공간이 된다. 예술가에게 길은 작품을 잉태하는 사색의 공간이다.

찬바람이 쏴한 산길을 오른다. 수많은 발자국에 낙엽이 쌓인 길이 반들거린다. 나목들 사이로 햇살 받은 길이 숲을 가른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작품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總圖)’에도 보이는 길이다. ‘금강내산총도’는 웅장하고 수려한 금강산의 모습을 담고 있다. 험준한 산세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산허리를 감싼 길이다. 첩첩이 쌓인 바위 사이로 난 길은 물길과 함께 흘러 그림에 변화를 준다. 정선의 초기 작품이다. 젊고 싱싱하다.

정선은 백악산 아래 유란동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을 일찍 여윈 그는 가장으로서 어머니를 극진하게 봉양하였다. 38세의 늦은 나이에 위수를 시작으로, 영남지역의 하양과 청하 현감을 지냈다. 80세에는 종3품 첨지중추부사로 승진해 당상관이 되었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끊임없는 정진으로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화가였다.

일찍이 진경문화를 이끌어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문하에 들어간 겸재는 진경시의 대가 사천 이병연(李秉淵, 1671~1751), 풍속인물화의 대가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 1686~1761)과 성리학을 배우며 진경시대를 이끈다. 평생지기인 조영석은 겸재에 대하여 몇 편의 글을 남겼다. 그중 겸재의 ‘구학첩(丘壑帖)’에 “정선이 다 쓴 붓을 땅에 묻으면 무덤이 될 정도”였다고 적었다. 이병연과는 평생 시와 그림을 주고받으며 화업을 다졌다.

이병연이 1710년 금강산 초입에 있는 금화현에 현감으로 부임하자 1711년(辛卯) 정선을 금강산에 초대한다. 당시 금강산 기행에 나설 때의 표정을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 1648~1722)이 시로 남겼다. “다른 여러 벗들이 손 맞잡고 옷자락 펄럭이며 가는데 하물며 삼연 또한 따라가겠다면야 더 말하겠는가. 신묘년 한가을 상순에 몽와”에서 여행에 들뜬 이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김창집의 동생 김창흡과 백석(白石) 신태동(辛泰東, 1659~1729), 정선 등이 함께 금강산을 유람했다. 당시 36세인 정선은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림 13점을 ‘신묘년 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으로 만들었다.

정선은 1712(壬辰)년 이병연의 가족들과 두 번째 금강산 기행에 오른다. 기행을 마치고 금강산을 그린 작품 30점을 이병연에게 준다. 그는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을 만들어 간직하다가 김창흡과 같이 정선의 그림에 각각 제화시(題畵詩)를 써 붙이고 ‘금강산 시화합벽첩(詩畵合壁帖)’을 만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후세에 전하지는 않는다. 세월이 흘러, 72세에 ‘해악전신첩’ 21폭을 다시 그려서 진경산수의 절경을 남긴다.

‘신묘년 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에 들어 있는 ‘금강내산총도’는 정선의 초기작품으로, 화려하고 수려하진 않지만 신선한 기운이 가득하다. 누구에게나 화가의 초년 작품은 있다. 그 작품에서 화가의 기량을 가늠한다. ‘금강내산총도’는 정선의 나이 59세에 ‘금강전도’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이 작품은 정선의 대표작으로 길이 남는다.

‘금강내산총도’에는 길이 심장의 혈관처럼 흐르고 산봉우리와 각 고을마다 이름과 장소를 표기해 놓았다. 그림 속에 표현된 길이 산속을 밝히는 전등 같다. 여행지에서 볼 수 있는 안내판처럼 회화에 운치를 더해 만든 18세기의 그림지도다. 당시 경제가 안정이 되고 여행 붐이 일어나면서 나라에서는 화원에게 명소를 그림으로 그려서 수록하도록 했다. 화가들도 저마다 명소를 사생하여 첩으로 남기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중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가장 많이 그렸다. 요즘으로 치면 여행안내 그림책이다.

‘금강내산총도’는 부감법으로 금강산을 훤히 내려다보이게 그렸다. 왼쪽에는 미점을 찍은 토산을 그렸고, 오른쪽 앞에서 뾰족한 바위가 길을 경계로 다섯줄로 나뉘어 웅장하게 서있다. 칼바위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길이 있어 정겹다. 금강산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서 그림으로도 충분히 유람하게 한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금강내산총도’라고 적어 놓았다.

정선에게 주역을 배운 근재(近齋) 박윤원(朴胤源, 1743~1799)은 “겸재 노인은 산수를 잘 그렸으니 80여 세에도 필력이 더욱 신기로웠다. 작은 그림이지만 그 형세가 웅건하고 넓어서 신비롭고 그윽하며, 얕고 깊어 멀고 가까움에 그 신묘함이 가득하다”며 감탄했다.

화가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다. 가다가 돌아서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걸음을 옮긴다. 초년기의 작품에는 풋풋한 정신이 흐른다. 노년으로 갈수록 화법은 기름지고 능숙해진다. 명작은 초년작품이 있어 가능하다. ‘금강내산총도’의 길을 따라 정선의 예술세계를 유람한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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