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도시의 달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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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6 07:44  |  수정 2020-01-16 08:02  |  발행일 2020-01-16 제23면


이호원

운전 중이다. 차가운 겨울밤 빌딩 숲 사이를 비집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높은 건물들 틈으로 노란빛이 새어 들어온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과는 다르게 사납지가 않다. 노란빛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다가 나중에야 동그랗게 제 모습을 보였다.

'달'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새해를 맞은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나가는데 말이다. 이제야 저 샛노랗고 탐스러운 달이 눈에 들어오다니 괜히 미안한지 딴생각이 난다.

어젯밤은 아이들 모두 방학을 맞은 첫 주말이라 아이도 어른도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는데 그 중에도 맨 마지막은 나였다. 이러다가 해가 뜨겠다 싶어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암막 커튼까지 꼼꼼하게 쳐진 방안은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그 속에선 눈을 떠봐도 감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세상에 오직 나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꼬리를 물고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차 앞머리를 크게 돌려 신천대로로 접어들었다. 달의 온몸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북대구IC로 올라가는 고가차도 바로 위에 샛노란 달은 또렷하게 박혀 있었고, 그 달을 향해 힘껏 질주했다. 좀 전에 저 달이 건물들 사이로 보였다 말았다 했던 것처럼 어젯밤 그 암흑과 밝은 저 달이 깜빡깜빡 교차된다. 아무리 차가운 도로 위 겨울밤이라도 달이 하나 보이는 것과 아닌 것은 흡사 백과 흑의 차이 같다.

낮에 아이들과 대구교육박물관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다. 춥긴 했지만 해가 밝은 하늘이었다. 특수교육관을 둘러보던 중에 딸 아이가 시각장애인용 점자바둑판 앞에 앉더니 오목 한판 두고 싶다고 했다. "오케이, 그럼 눈 뜨기 없기" 하고 눈을 감았는데 어젯밤 생각이 났다. "다 했니?" "응, 난 했어. 아빠 해." 침착하게 오른손으로 바둑알을 집었다. 흰 알인지 검은 알인지는 알 수가 없었고, 알 위 등에는 조그만 돌기가 솟아있었다. 왼 손가락들로 바둑판 위에 뚫린 구멍들을 더듬거리며 바둑알을 끼워 넣었다. 불편하긴 했지만 딸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서인지 어젯밤 어둠 속에서처럼 낯설지는 않았다.

이제 마지막 신호등이다. "어, 달이 안 보이네. 어디로 갔지." 아내가 말했다. "그러게. 안 보이네. 아마 우리 아파트 뒤에 있을 거야." 지금 눈앞에 보이진 않지만, 그 존재가 분명히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만으로도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은 한결 숙진다.

이호원<다님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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