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과메기 원조 '청어'의 귀환

  • 임성수
  • |
  • 입력 2020-02-07   |  발행일 2020-02-07 제38면   |  수정 2020-02-07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마리째 그대로 말린 통마리 청어과메기.

2020013101001040800043252
2020013101001040800043255
독일 함부르크의 명물인 청어와 햄버거의 환상적인 궁합이 돋보이는 '청어버거'.
2020013101001040800043253
일본의 새해 요리인 도시락 형태의 '오세치요리'. 여기에도 청어알이 포함돼 있다.

화수분처럼 내줄 것 같았던 바닷물고기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명태가 그랬듯이 식량 자원을 너머 포항지역 산업의 아이콘이자 문화로 등극한 과메기의 주인공 꽁치도 위험하다. 대신, 원조 자리를 내주며 뒷자리로 밀려났던 청어가 다시 호명되고 있다. 본래 청어자리였으니 원상회복이라 해야 옳을까. 청어도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어획 방식만이 아니라 이제 기후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2020013101001040800043254
내장을 제거하고 말리는 배지기 청어과메기.
2020013101001040800043256
독일의 명물인 '청어절임'.
2020013101001040800043257
일본 교토의 명물인 청어와 메밀소바의 환상적인 궁합이 돋보이는 '니싱소바'.



눈 꿰어 말린 '관목청어'→과메기

초겨울~초봄 산란, 살 찌고 가장 맛나
조선시대도 영일만이 어획량 70% 차지
덕장서 얼고 녹기 반복, 기름 배어 숙성

'눈 본 대구요, 비 본 청어다'라는 속담이 있다. 대구는 눈이 오는 겨울에, 청어는 봄비가 온 후에 잡히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조기잡이 어민들만 진달래꽃을 기다렸던 것이 아니었다. 청어 잡이 어민들도 진달래꽃 피면 청어 배에 돛을 달았다. 초겨울부터 초봄까지 영일만으로 산란을 위해 들어온 청어를 많이 잡았다. 비 온 뒤 형산강을 타고 내려오는 풍부한 영양염류는 산란을 앞둔 청어들에게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이곳에서 잡은 청어를 먼저 나라에 진헌한 후에 고기잡이에 나섰다고 한다.

남해의 진해만으로도 청어가 많이 들었다. 그곳에 모자반 등 해초에 알을 낳았다. 그곳에 유배되어 기이한 물고기를 기록한 '우해이어보'(김려·1803)에는 청어는 '구워서 먹으면 무엇보다 맛이 있는 진귀한 물고기로, 해주의 청어가 제일'이라고 꼽았다. 김려는 유배지 진동만에서 청어를 잡고 모자반을 채취하는 것을 보았다. '난호어목지'(서유구·1820년경)를 보면, 청어를 '겨울이면 관북의 먼 바다에서 나고, 늦겨울에서 초봄에 동해를 따라 남해로 돌아 영남의 먼 바다에 이르고 더욱 번성한다. 또 서해를 돌아 황해도의 해주 앞바다에 이르면 더욱 살이 찌고 맛이 있다. 청어는 조류를 따라 천 마리, 만 마리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3월이 되어서야 그친다'고 했다. 청어의 생태적 습성을 잘 기록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청·경상·전라·황해·함경도 지역에서 청어가 잡힌다고 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영일만은 청어의 주산지였다. 한 때 전국어획량의 70%를 기록할 정도였다. 동해안은 소금이 귀해 식염으로도 부족할 판이니 그 많은 청어를 염장할 소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다행스럽게 청어는 덕장에 말리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기름이 배어 들고 숙성이 되었다. 이 때 청어의 눈을 꿰어 말렸다 해서 '관목청어(貫目靑魚)'라 했다. 경상도에서는 '목'은 '메기' '미기' 등으로 불린다. 관미기보다는 '관메기'가 익숙하지 않았을까. 입에 달라붙지 않아 'ㄴ'이 탈락하면서 발음이 자연스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니싱소바' 독일 '청어버거'
달콤하게 조린 청어와 메밀국수 조합
새해 먹는 청어알 포함된 '오세치요리'
밀빵에 채소·염장한 청어 넣은 간단식

일본 도쿄에서 맛본 '니싱소바'는 날 놀라게 했다. 사실 우리도 해산물을 넣어 국물을 만들거나 직접 해산물을 넣어 먹는 국수나 칼국수가 있기에 놀랄 일도 아니다. 생선은 비리다는 선입관에서 비롯된 오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청어국수를 맛볼 수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니싱소바는 달콤하게 조린 청어와 메밀국수의 조합이다. 에도시대 많이 잡은 청어를 말려서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과메기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일본을 대표하는 소바에 더해진 점이 흥미롭다.

도쿄 곳곳에는 절인 청어와 생메밀 면을 파는 곳도 많다. 청어조림, 청어알스시, 청어알젓도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새해 첫날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오세치요리(御節料理)에도 청어알이 포함된다. 소금에 절이거나 말린 청어알은 자손번영을 의미하며, 장수를 의미하는 새우(海老), 검은콩, 흰살생선, 붉은 당근과 흰 무, 토란, 연근 등을 국물 없이 찬합에 담아 정월에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청어국수보다 더 놀랐던 음식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맛본 '청어버거'다. 독일의 작은 섬 랑어옥에서 청어버거로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 일정도 있어 간단한 식사로 선택한 것이 버거와 음료였다. 그렇다고 버거가 절대 패스트푸드는 아니다. 섬에서 생산한 밀로 만든 빵과 채소 그리고 염장한 청어로 만들었다.

청어만 아니라 연어와 대구와 새우를 넣은 버거를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맥주와 생선을 넣은 버거는 그들의 일상이지만 여행자에게 독특한 맛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들 지역은 청어 잡이를 기반으로 발트해와 북해를 장악하고 부를 축적했던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도시들이다. 한자동맹 이후에는 대서양 청어잡이의 주도권은 네덜란드가 장악했다. 발트해에 가득했던 청어가 사라지고 북해 남부의 네덜란드에 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네덜란드는 해양업이 발달한 나라였다. 국가와 기업이 함께 청어잡이 어법과 염장법을 개발하고 금어기를 정하고 어족자원을 관리했다.

구룡포 집집마다 청어 덕장
꽁치는 잘라 먹고 청어는 찢어야 제맛
배 따지 않고 통째 말린 통마리 과메기
내장 제거하고 말리는 배지기 과메기

찬바람이 불면 구룡포 사람들은 집집마다 빈터에 덕장을 세우고 청어를 뼈와 내장을 제거하고 덕장에 내건다. 이후에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다만 눈과 비를 조심해야 하고 반으로 갈라 등을 마주 대고 다닥다닥 걸어 놓았기 때문에 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일이다. 구룡포 시내에서 벗어나 삼정리 해수욕장에는 건장대가 줄지어 세워져 오징어가 꼬들꼬들 말라가고 있었다. 나중에야 그곳이 삼정리로 과메기로 유명한 어촌임을 알았다.

삼정리해수욕장과 맞닿은 민가 처마 옆으로 과메기가 걸려 있었다. 청어였다. '이게 진짜 과메긴기라, 무거봐라'라며 한쪽을 쭉 찢어 건넸다. 꽁치과메기는 가위나 칼로 잘라 먹지만 청어과메기는 찢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 배를 따거나 반으로 쪼개지도 않은 채 짚으로 엮어 말렸다. 마치 굴비를 엮어 놓은 모양새다. 소설가 김동리도 '청어 한 마리를 배도 따지 않고 소금도 치지 않고 그냥 얼려 말린 것'이 과메기라고 했다.

진짜 과메기라며 주민이 건네준 통과메기 껍질을 벗기자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쭉 찢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비릿할 것으로 알았는데 그냥 먹어도 맛이 괜찮았다. 달짝지근하고 씹힘이 기분 좋았다. 국산 꽁치만 사용한다고 붙잡는 집도 있었다. 그럼 꽁치도 수입 한다는 말인가. 사실이다. 과메기용 꽁치는 대부분 북태평양에서 포획된 것이다. 원양어업으로 잡은 꽁치도 있지만 수입 꽁치가 구룡포에서 손질이 이루어진다.

과메기는 '통마리'와 '배지기' 두 가지 방식으로 숙성된다. 통마리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세척해서 굴비처럼 엮어서 보름 정도 말려야 한다. 배지기는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후 세척을 해서 대나무(꼬치)에 걸어서 말리는 것으로, 3~4일이면 상품으로 유통된다. 과메기는 온도가 중요하다. 영하 5℃에서 영상 5℃의 기온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람이 잘 부는 곳이 좋다. 구룡포 삼정리 바닷가에 과메기 덕장이 가득 찬 이유이다. 그런데 요즘 날씨도 예전 같지 않지만 미세먼지라는 불청객 때문에 해풍에 의존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해서 자연건조 대신에 인공건조기를 이용해 냉풍으로 말리기도 한다.

꽁치 자리 대신한 청어
中 남획·수온 변화, 꽁치 어획량 급감
60년대 청어가 대세, 원래자리 되찾아
호미곶 과메기 축제…지역 산업 성장

꽁치 어획량이 크게 줄고 있다. 일본의 요리우리신문을 보면(2019년 8월21일자), 2008년 35만t의 어획량이 2017년 8만t으로 줄었다. 그 원인을 웰빙 식문화의 보급으로 꽁치를 잡는 나라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1958년 57만5천t을 잡았던 것에 비하면 7분의 1 정도로 줄어든 수치이다. 꽁치는 태평양 공해를 지나 일본 근해 배타적경제수역으로 떼를 지어 이동한다. 그 중간에 중국과 대만 등이 공해에서 남획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연안으로 올라오는 꽁치가 줄었다. 여기에 수온변화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원양산과 수입물을 더 해도 생산량은 크게 감소했지만 청어 어획량은 늘었다. 그 결과, 꽁치 대신 청어 과메기 비중이 늘고 있다. 국내 한 대형마트의 판매량을 보면 2016년 청어과메기는 10%에 불과했지만 2017년 30%, 2018년 46%, 작년엔 절반을 넘어섰다. 보통 125g 정도의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었던 것이 이제는 100g 정도로 줄었다. 꽁치어획량은 줄어들었지만 과메기 수요량은 늘고 있다. 꽁치 자리를 대신한 것이 청어다. 사실 꽁치 자리는 원래 청어자리였다. 1960년대까지 청어과메기가 대세였다. 그런데 1970~80년대 청어 어획량이 급격하게 줄었다. 국산 청어 어획량이 줄고 꽁치가 많이 잡히면서 바뀌었다. 최근 다시 역전되어 꽁치 어획량은 줄고 청어가 제자리를 되찾았다. 국내산 꽁치 대신 대만산이나 원양산으로 대체하기도 했지만,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가격경쟁력도 떨어져 청어가 제자리를 찾고 있다.

과메기는 지천으로 잡히던 청어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해 바닷바람이 잘 드는 곳에 걸어둔 것이 효시였을 것이다. 단순한 발상이 지금은 수백억원에 이르는 지역산업으로 성장했다. 포항 호미곶에서 매년 과메기축제가 열리고 있다. 구룡포에는 과메기 거리도 조성되었다. 구룡포읍과 포항 3개면(동해·장기·호미곶)이 과메기 특구로 지정되었다. 이제 포항의 특산물이 아니라 전국화에 성공했다. 겨울만 아니라 사철 먹거리로 공급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의약품, 과자, 화장품 등으로 사업 아이템을 다각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어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것도 신기루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