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병 앓고 있는 경북도향

  • 김봉규
  • |
  • 입력 2020-02-09 15:30  |  수정 2020-02-09 15:33  |  발행일 2020-02-11 제24면
김봉규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병가로 한 달 동안 쉬었다 복귀했는데, 피진정인의 이런 괴롭힘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직장을 다녀야 할 지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 뿐입니다. 진정인이 피진정인으로부터 이토록 집중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정인과 피진정인의 사용자인 경상북도가 알고 있으나 경상북도는 이에 대해 오히려 진정인을 징계하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북도립교향악단 단원인 진정인이 지난해 12월 대구지방고용노동청장에게 낸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의 결론 부분 중 일부다. 피진정인은 백진현 경북도향 상임지휘자이다. 진정인은 진정서를 통해 많은 구체적 괴롭힘 사례들을 적시하면서 '피진정인으로부터 당한 모욕감과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심한 모멸감과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 중'이라며 직장내 괴롭힘을 중단시켜 진정인을 보호할 조치를 취해주기를 간청했다.

단원 중 진정인만 이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새 지휘자가 부임한 후 신경안정 관련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는 단원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술을 마실 줄 아는 단원은 술로 버티다가 몸이 견디지 못하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을 먹으며 견딘다고 한다. 대부분 단원들은 빨리 상임지휘자의 임기가 끝나기를 바라면서, 오는 10월 임기가 끝나는 백 지휘자가 연임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장 염려하고 있다.

경북도향이 중병을 앓고 있다. 중병은 백 지휘자가 2018년 11월 새로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부임 초기에 "전에 내가 마산시립교향악단에 있을 때 불만을 예기하거나 자기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결국 다 사표 쓰고 나갔다"고 말하는 등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이후 단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지휘자의 언행이 이어지면서 단원들이 같은 단원을 합주 방해로 경북도에 고발하는 일이 일어나고, 지휘자에 대항하기 위한 노조가 만들어진데 이어 또 다른 노조까지 출범했다. 이런 와중이니 단원들(80명)간의 분위기는 엉망으로 흐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없음은 물론이다.
많은 단원들은 지휘자가 지휘 능력도 인정할 수 없는데다 독선적이고 실망스런 리더십으로 교향악단을 이끌어가면서 '지옥 같은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며 사태 해결을 갈망하고 있다. 백 지휘자는 지난해 10월 교향악단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우려하는 비상식적 방식으로 단원들을 대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결과는 말한 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교향악단을 비롯한 경북도립 예술단에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경북도가 무책임하고 무사안일한 태도로 임한다는 단원들의 불만을 사는 현실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청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그걸 떠나 예술단에 대한 경북도의 진정한 애정과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싶다. 지휘자의 자신에 대한 성찰이 절실함을 물론이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김봉규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