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밀양 아북산 내일동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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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4   |  발행일 2020-02-14 제36면   |  수정 2020-02-14
허공 서 있는'달빛 문' 열면 낮에도 밤에도 환상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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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문은 아북산의 가파른 산세를 이용해 만든 전망대로, 밀양 시내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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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관아의 삼문. 담장 아래에 선정비가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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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관아 맞은편에 있는 밀양아리랑시장.


밀양 읍성 동문을 통과한다. 최근에 복원하여 말갛고, 지금도 공사 중인 듯 몇몇 사람들의 느린 노동이 보인다. 동문은 아동산(衙東山)과 아북산(衙北山) 사이에 걸쳐져 있다. 밀양 관아의 동쪽에, 그리고 북쪽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밀양 읍성은 조선 성종 때 처음 돌로 쌓았다. 이후 읍성은 1902년 경부선이 놓이면서 파괴되었고, 1934년 다리를 건설하면서, 1937년에 아북산 북쪽에 묻힌 납석(蠟石)을 캐내면서, 6·25전쟁 때 아동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지금은 아동산 산등성이와 동문 주변에 읍성이 복원되어 있다. 동문을 통과한 길은 치켜든 고개를 숙이듯 쓰윽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 읍성의 한가운데에 내려섰다. 거기에는 수많은 공덕비를 앞세운 밀양 관아의 삼문이 높이 서 있었다.

조선 성종때 처음 돌로 쌓은 밀양읍성
축조 당시 100여칸 관아, 축소돼 복원
건너 아리랑 시장, 영남 첫 만세 운동
수직으로 치솟은 비탈면 서있는 마을

도심 내려다 보는 일몰 명소 '달빛 문'
가장 단순한 미로 같은 달빛쌈지공원
백중놀이 표현한 벽화길·별 달 굽이길
낙후 동네서 내일문화예술마을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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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읍성 북성 쪽 '별 달 굽이길' 입구의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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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쌈지공원. 저수조의 콘크리트 창이 그대로 액자가 되었다. 소규모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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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북산 내일동의 '별 달 굽이길' 골목.


◆아북산 내일 5통

밀양 관아는 2010년에 복원된 것이다. 밀양 읍성이 축조될 당시에 100여 칸으로 지어졌다고 여겨지지만, 현재는 많이 축소된 형태다. 마당에 두 그루 회화나무가 대단한 기세로 서 있다. 관아의 맞은편 길 건너에 '밀양아리랑시장' 입구가 있다. 장날은 2·7일이다. 관아 담장 밑에 1919년 3월13일, 당시 밀양 장날 이곳에서 영남지방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표석이 있다. 관아를 중심으로 한 사방 일대가 모두 내일동(內一洞)이다. 옛날 시(市)가 부(府)였을 때 부내의 가장 중심이자 첫째가는 동네라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 밀양강 변의 영남루까지 모두 내일동에 속해 있다.

관아 바로 뒤편이 아북산의 남쪽 사면이다. 경사가 70도라는 아찔한 비탈면에 마을은 벽처럼 서 있다. 수직으로 치솟은 길, 횡으로 놓인 길, 꼬불꼬불 뒤엉킨 길속에 집들은 서로의 손목을 꽉 붙잡은 듯이 들어서 있다. 이 마을을 '내일 5통'이라고 한다. '내일 5통 경로당'을 곁눈으로 스치며 수직으로 치솟은 길을 굽은 허리로 오른다. '밀양여고 안심 귀갓길'이라는 푯말이 눈에 띈다. 아북산의 정상 부근에 밀양여고가 있다. 원래는 1954년 납석 광산부지에 설립되었다가 197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전 당시 지역유지들은 아북산의 지명이 본래 아복산인데 누에가 알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이곳에 여고가 들어서면 국모가 날 풍수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달빛쌈지공원

밀양여고 안심 귀갓길을 오르다 허공에 선 문을 본다. 밀양의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곳은 일몰 명소라는 '달빛 문'이다. 밀양강도 보이고 웅장한 영남루도 소소(炤炤)히 보인다. 밀양 관아의 솔숲 우듬지도, 내일 5통의 퍼즐 같은 지붕들도 선명하다. 산정에 가까운 자리, 문 위로는 숲과 하늘이다. '달빛 문' 주위에는 '달빛쌈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은 조금 기이하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충분히 육중해 보이는 벽들이 툭툭 놓여 있다. 문 없는 문, 창 없는 창을 가진 벽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미로 같고, 그리다 만 도면 같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낡은 수도공급시설이던 배수지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배수지를 2017년 공원으로 바꿨다. 저수조의 콘크리트 창이 그대로 액자가 되어 밀양시내를 담고 있고 동시에 소규모 공연을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무대가 되었다. 벽을 타고 담쟁이가 잠들어 있고, 벽 안에는 작은 정원이 자라고 있다. 물 가득했을 벽 속에 이제 햇빛 달빛이 찰랑거린다. 벽 모서리에 드리운 사다리꼴 그림자에 벤치가 숨어 있다. 누군가와 함께 은근히 숨기 좋은 곳이겠다. 달빛 문 밖에 시(詩)들이 늘어서 있다. 김춘수의 '꽃', 천상병의 '귀천', 이성복의 '서해', 김소월의 '초혼',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시들의 길 끝에 밀양여고의 후문이 열려 있다.


◆내일문화예술마을

달빛 문 뒤편 밀양여고 후문과 이어지는 길가에 달빛 주차장이 있다. 그 옆으로 '밀양백중놀이길'이 내리막으로 잇대어있다. 밀양 백중놀이를 표현한 벽화길을 따라가면 '밀양백중놀이전수관'과 '북성경로당'이 나타난다. 그리고 산을 휘감아 내려가는 길 따라 '별 달 굽이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밀양시가 벌인 밀양관아 주변 공공디자인 개선사업으로 만들어졌다.

관아가 있던 최고의 동네였지만 내일 5통은 매우 낙후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과거 광산개발로 산림 훼손이 심각했고 우범지역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쉽게 '폐광이 있던 달동네'라 한다면 실례일까. 밀양 관아 주변의 개선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추진된 사업이었다. 2014년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2015년에는 노후된 옹벽을 고치고 타일 벽화를 그려 넣었다. 2016년에는 밀양여고 주변으로 '범죄예방환경설계' 기법을 적용한 안심골목길을 조성했다. 범죄예방환경설계(셉테드, CPTED)는 어두운 골목길에 폐쇄회로(CC)TV와 가로등을 설치하거나, 외진 곳의 담벼락을 없애 주민들의 자연 감시가 이뤄지도록 하는 등 도시 환경을 바꿔 범죄를 방지하고 주민 불안감을 줄이는 기법이다. 내일 5통은 그렇게 '내일문화예술마을'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북성 경로당 앞 큰길을 벗어나 골목길로 내려선다. 그러면 여기가 밀양 읍성의 북성이 있던 그 즈음이겠다. 둘이서는 나란히 걷지 못할 좁은 길과 작은 문, 작은 창, 작은 옥상, 작은 텃밭 따위를 잔뜩 보았다. 겨우내 보지 못했던 눈과 눈사람도 보았다. 어디선가 불 지피는 냄새가 났다. 이 날은 입춘이었다. 입춘의 매운 추위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지만 볕이 빽빽한 밀양의 아북산 남쪽 자락은 과연 등이 후끈할 만큼 따스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 IC로 나간다. 24번 국도를 타고 밀양대로, 밀양대공원로를 따라 계속 직진해 영남루·시청 방향으로 간다. 밀양대공원로 끝에서 우회전 해 용평로로 직진하면 오른쪽에 밀양 관아가 위치한다. 관아 뒤편 산자락의 마을이 내일 5통이다. 관아 옆길로 계속 오르면 정상 부근에 달빛쌈지공원이 있고 공원 뒤편 오른쪽에 밀양여고 후문, 왼편에 달빛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옆으로 백중놀이길이 이어져 백중놀이 전수관까지 닿는다. 전수관 좌우 아래로 '별달굽이길'이 펼쳐져 있다. 달빛 주차장 외에 관아 주차장이나 마을 골목길에도 주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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