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결백' 신혜선 "상업영화 첫 주연…스크린 속 내모습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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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2 07:59  |  수정 2020-06-12 08:05  |  발행일 2020-06-12 제39면

신혜선5


농약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린 엄마 변론 변호사
진실에 다가갈수록 수상한 정황과 드러난 민낯
일 얘기 안하던 아빠가 시나리오 읽고 적극 추천
어둠속에 발버둥치는 엄마의 알지 못했던 아픔
배종옥 선배님 따뜻한 격려, 캐릭터에 쉽게 이입
감정 템포·눈물 타이밍 조절, 섬세하게 그려내

연기자 꿈 이뤄 너무 좋아 쉴 틈 없이 작품 활동
어떤 배역도 어색하지 않기위해 계속 노력할 것

대형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정인이 딜레마에 빠졌다. 로펌 대표에게도 "죄에 예민해야지 돈에 예민하면 안되잖아요"라며 거침없이 직언을 쏟아낼 만큼 직업적 윤리와 신념을 중시해왔던 그다. 그가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엄마(배종옥)의 변론을 맡게 되면서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추악한 진실과 마주했다. 오래전 가족과 등진 채 살아온 정인이지만 치매에 걸려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살인 용의자로 모는 건 애초부터 무리한 표적 수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수상한 정황과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마침내 민낯을 드러낸 불편한 진실이 그를 충격에 빠뜨린다.

2012년 드라마 '학교 2013'으로 데뷔 후 '아이가 다섯' '비밀의 숲' 등을 거쳐 그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황금빛 내 인생'으로 명실상부한 라이징 스타로 등극한 신혜선이 정인을 연기했다.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에 더해진 강단 있는 모습으로 영화의 처음과 끝을 책임진 그는 '신혜선이 곧 개연성'이라는 세간의 평가처럼 순간순간 변화하는 인물의 표정과 복잡한 감정선을 밀도 있고 섬세하게 그려냈다. "발음의 정확도는 물론, 감정의 템포와 눈물의 타이밍까지 조절하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박상현 감독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코로나19 여파로 영화가 두 차례 연기됐고 드디어 지난 10일 개봉했다. 상업영화 첫 주연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개봉을 정말 학수고대했다. 아직까진 조금 조심스러운 감이 있긴 한데 모두가 지금처럼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을 잘 한다면 (극장이) 조금씩 활기를 띨 수 있지 않을까 나름 기대를 해본다. 한편으론 첫 주연작이라 너무 많이 긴장되고 부담된다. 내 얼굴이 커다란 스크린 화면에 나오는 게 익숙지 않아서 시사회 때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되는 모호한 상태로 보느라 집중을 못한 것 같다."

▶'결백'은 촘촘한 이야기와 연출, 배우들의 유기적인 조합이 돋보인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비슷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속도감과 몰입감이 굉장히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하고 그 안에 개발과 투기, 정치인과 검찰의 유착 등 감춰진 비밀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는 과정이 과하지 않고 덤덤하게 그려져 있어 좋았다. 정인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는데, 사실 아빠가 나보다 먼저 시나리오를 읽고 적극 추천해줬다. 아빠와는 가급적 일 얘기는 안하는 편인데 대뜸 '네가 이 영화에 나오는 걸 보고 싶다'고 하더라. 영화가 엄마의 결백을 밝히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끈끈한 가족애가 녹아 있던 점이 좋았다고 했다."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개성이 강하고 뚜렷하다. 그 중심에 있는 정인을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잘했고 욕심도 제법 있는 아이가 정인이다. 그가 아버지의 학대와 유일한 버팀목인 엄마의 보호까지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혈혈단신으로 집을 도망치듯 뛰쳐 나온다. 그리고 갖은 고생을 한 끝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후에 실력 있는 변호사가 된다. 그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상처를 받았겠나. 그런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정인이 어떤 신념과 목표를 가졌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가족은 있지만 늘 혼자라고 생각했기에 자아와 자격지심이 엄청 강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인 캐릭터를 위해 참고한 게 있다면.

"제시카 차스테인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미스 슬로운'을 감독님이 추천해줬다. 이미 전에 봤던 영화이기도 한데 감독님이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대충 의중은 알게 됐다. 사실 그보다는 많은 분의 배려와 도움이 나에게 큰 힘이 됐다. 특히 엄마 역할로 나온 배종옥 선배님의 따뜻한 배려와 격려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선배님이 엄마인 채화자로 분장한 모습을 처음 봤을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평소 지적이고 아름다운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너무 작고 나이 든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울컥했다. 덕분에 촬영 내내 극중 캐릭터에 쉽게 이입할 수 있었다."

▶배종옥 배우와 마주치는 장면이 많지 않았음에도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좋았다. 연기적 호흡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선배님과 나는 캐릭터상의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촬영하는 내내 친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리를 뒀다. 너무 친해져 버리거나 선배님이 분장한 모습에 익숙해져 버리면 연기집중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 점을 우려한 선배님은 내가 분장실에 들어오는 것도 철저히 막았다. 보통은 어느 정도 촬영이 진행되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먹을 것도 같이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번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정말 선배님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리허설을 할 때도 절대 내 눈을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솔직히 선배님을 마주하면 나도 몰래 울컥해졌는데 그 감정을 참느라 힘들었다. 그렇게 겨우 참고 있다가 촬영에 들어가면 비로소 내 감정을 쏟아냈다. 아이 컨택을 하면서 대사를 치는 선배님을 쳐다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배종옥 선배님이라는 게 지워지고 깊은 어둠이 느껴지는 치매 걸린 불쌍한 엄마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선배님에게 물리적·감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연기하는 내내 배종옥이라는 배우가 지워져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놀라웠고, 오랫동안 다양한 역할을 많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열정이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연기자로서 내가 본받아야 할 모든 것을 다 갖춘 분이다."

▶'결백'은 다양한 주제와 함께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관객들이 어떤 점에 주목하면서 보길 바라나.

"'무죄 입증 추적극'을 표방하고, 영화 제목도 '결백'이다. 때문에 정인이 엄마의 결백을 밝히는 과정과 누가 범인이고, 이 여자(화자)의 과거는 어땠는지 등을 주목하면서 보게 된다. 이런 장르의 영화를 많이 본 관객이라면 처음부터 누가 범인이고, 어떤 반전이 일어날지를 대충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영화다. '결백'은 모녀의 얘기이고, 변호사로서 신념을 중시했던 정인의 선택과 엄마와 딸의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과정에서 엄마라는 여자, 엄마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풀어 간다는 점에서 기존의 남성 중심으로 견인되던 추적극과 확실한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을 주목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엄마의 무죄를 밝히려는 정인의 선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누구든 죄를 지으면 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인이다. 스포일러라 자세한 설명은 못하겠지만 엄마의 변론을 맡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꺾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정인이 그냥 이해됐다. 정인은 암흑 같은 구덩이에서 탈출해 빛이 있는 곳으로 나왔지만 자식들을 위해 희생만 했던 엄마는 여전히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그런 엄마의 인생이 불쌍하고 안타까웠던 정인은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정인의 마음과 선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를 꿈꿨다고 들었다.

"취학하기 전부터 이쪽 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다른 건(직업) 아예 쳐다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구체적으로 연기자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단순히 남들 앞에 나서는 직업을 선망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드라마를 보고 즐거워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나도 TV에 나오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내 정체성을 찾아가던 시기에도 꿈은 항상 이쪽이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에 비례해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데뷔 초 공백기를 제외하곤 쉴 틈 없이 작품 활동을 해왔던 이유다. 육체적으로 피곤해도 절대 쉬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고, 주연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찍고 있는 지금이 그래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고 감개무량하다. 그냥 '꿈을 이뤄서 너무 좋아요'가 아니라 정말 정말 좋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뭔가.

"내가 재밌을 것 같은 작품을 고른다. 작품이 전체적으로 재밌는 것도 좋지만, 아직 신인이라 작품을 철저하게 보는 것보다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내가 재밌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런 작품 위주로 선택을 하는 편인데 그 과정에서 도전과 열정의 불씨를 던져주는 캐릭터들이 가끔 있다. 이번 정인 역할도 그랬다."

▶차기 작은 배종옥과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된 사극 드라마다. 당신의 첫 사극 도전이기도 한데.

"tvN에서 방영하게 될 '철인왕후'인데 퓨전 사극 코미디다. 현대를 살아가는 자유로운 남자 장봉환의 영혼이 조선 시대 중전 김소용의 몸 안에 갇혀 벌어지는 이 이야기에서 김소용 역을 맡았다. 사극이지만 나만 현대인 역할이라 사극 말투나 복장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 대신 캐릭터가 좀 독특하다. 그게 좀 걱정이 되지만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다."

▶대중에게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여기까지 온 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내가 작품을 접하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을 보는 분들도 똑같이 느껴지도록 잘 전달하고 싶다. 그러려면 어떤 작품에서 무슨 역할을 해도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는 한 쉬지 않고 소처럼 일하고 싶다."(웃음)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키다리이엔티·소니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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