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찬, 세간 다 버리고 음반 한 트럭만 싣고 피란 와 개업…향촌동 음악다방 '르네상스'

  • 김봉규
  • |
  • 입력 2020-07-16   |  발행일 2020-07-16 제21면   |  수정 2020-07-16 08:04
1951년 문 열어 2년여간 운영
구상·신상옥·최은희도 단골

2020071601000648900027531
대구 향촌동 '르네상스'가 있었던 건물의 최근 모습. 관광객들이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대구 중구 향촌동 '르네상스'는 6·25전쟁 당시 1·4 후퇴 때 박용찬이 대구로 피란오며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음반과 관련 기기 등을 가져와 1951년 문을 열었다. 이곳은 전쟁에 지친 예술가들이 위안을 받고 활력을 얻는 공간이 되었다. 시인 구상을 비롯한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 그리고 피란왔던 영화인 신상옥·최은희도 자주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남한 음악애호가들을 위한 성지'가 되었던 르네상스는 1953년 휴전으로 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 박용찬이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1954년 서울로 옮겨 종로구 인사동에서 6년간 문을 열었다. 그후 1960년 12월 서울 종로1가 영안빌딩 4층에 자리 잡은 이후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곳은 곧 음악학도들과 문화예술인, 클래식 음악애호가들의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며 명소가 되었다. 문인 김동리·전봉건·신동엽, 음악가 나운영·김만복, 화가 김환기·변종하 등이 유명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시인 천상병은 음악에 빠진 표정이 벽면에 걸린 베토벤 석고 두상을 닮았다고 해서 '쁘띠베토벤'이란 별명을 얻었다.

르네상스는 1987년에 문을 닫게 되고, 박용찬은 1만3천여 종에 달하는 음반과 오디오 기기 등을 문예진흥원에 기증했다. 박용찬은 호남 갑부의 아들로, 일제강점기 일본 명치대 유학시절부터 음반을 수집했다고 한다. 피란길에서 세간살이는 다 버리고 오로지 음반 한 트럭만 애지중지하며 싣고 대구로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음악 애호가였다. 그의 클래식 음악 사랑은 에튜드 기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1994년 8월,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향촌동 '르네상스'가 있었던 건물(단층)은 현재도 남아있다. 대구문학관 뒤 골목 안에 있는데, 지금은 '판코리아 식당' 간판이 달려 있다. 건물 벽면에 '르네상스'가 있었던 곳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다. "6·25 당시 박용찬이 개업한 음악감상실. '폐허에서 바흐의 음악이 들린다'고 외신에 소개되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