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긴 여름장마 끝에서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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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0 07:59  |  수정 2020-08-10 08:03  |  발행일 2020-08-10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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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의 시작 부분처럼 무섭고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6월 장마는 쌀 창고, 7월 장마는 죽 창고'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양력으로 보면 8·9월의 비는 그 피해가 크다. 학교에서도 지난 7월 사나흘 연속 내리는 비로 누수가 많아 비상이 걸렸다. 대구 혁신도시의 자랑이라고 할 만큼 깔끔하고 쾌적한 신설교인 우리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작년에도 누수가 있어 잡아내기도 하고 늦가을 시공업체에 하자보수를 요구하여 선제적 대응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다시 올 장마에 여기저기 양동이를 가져 놓는 불상사가 생겼다. 몇몇 학교에 연락해보니 학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문제가 없는 곳은 없었다.

감사하게도 주무관과 행정실장이 잠시 비가 소강상태에 들 때마다 옥상에서 땀이 콩죽이 되어 흐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시중에 성능이 엄청 좋아진 실리콘이 많이 나와 있었다. 낡은 실리콘을 일일이 떼어내고 솔로 작은 먼지와 찌꺼기를 쓸어낸 다음, 하나하나 마른 휴지로 물기를 제거하고 실리콘을 발랐다. 해가 어정쩡하게 뜬 습도 높은 날, 그늘이라곤 없는 옥상에서 쪼그리고 몇 시간씩 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학교의 누수는 크랙에 의한 누수로 방수층 균열 때문이다. 일정 기간을 두고 옥상 방수층 공사를 1차로 하고 충분히 마를 시간을 둔 다음 또다시 방수공사를 하는 과정이 몇 차례 있어야 하는데 공사기간에 쫓겨 급하게 마감을 한 것이 누수의 가장 큰 원인이다. 요즘은 대부분 빗물이나 눈이 재빨리 흘러가도록 급한 경사의 지붕을 하지 못한다. 옥상에 수십 개 냉방기 실외기가 놓이고 위급한 화재시 옥상은 대피장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그러다보니 옥상 바닥면의 경사도를 정밀하게 맞추지 못한 이상, 여기저기 물이 고이고 특히 다른 구조물(환기구, 피뢰침)등과 공사시기가 다른 면과 면이 만나는 지점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자주 현장을 육안으로 살피고 면밀히 관찰해야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도 마찬가지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난 후 결과를 보니 코로나로 인한 학업 누수가 심각하다. 짧은 방학이지만 학교마다 학업 누수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제는 대학생과 맺어진 혁이가 시원한 회의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가정폭력을 피해 전학 온 학생이다. 입을 좀처럼 열지 않던 아이가 조금씩 말문을 트고 가끔 옅은 웃음으로 반응하는 건 눈부신 풍경처럼 가슴 안에 불안을 걷어낸다. 우리 개개인도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인생의 위기에서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작은 누수를 미리 감지하고 살피고 돌봐야 할 것이다. 장마에 쓸려간 흙더미 웅덩이 위로, 잠시 비치는 햇살 사이로 잠자리가 날고 있다.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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