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언택트 시대 '한국 블록버스터'

  • 유선태
  • |
  • 입력 2020-08-14   |  발행일 2020-08-14 제39면   |  수정 2020-08-14
'7말8초' 흥행법칙 노린 대작의 사투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길어지고 있다. 여러 산업계가 휘청거렸지만 특히 관객들을 직접 만나야 하는 문화예술계의 타격이 컸다. 영화계 또한 극장으로 향하던 관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에 대형 배급사들이 자사 블록버스터를 좀 더 많은 스크린에 걸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른바 '7말8초' 흥행 법칙이 깨졌다.

CJ ENM은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마지막 1년을 그린 뮤지컬 영화 '영웅'(윤제균 연출)을 추석 이후 개봉하기로 결정했고, 롯데컬처웍스는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해 고립돼 버린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의 목숨을 건 탈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모가디슈'(류승완 연출) 개봉을 올 하반기로 늦췄으며, 메리크리스마스 역시 한국영화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블록버스터 '승리호'(조성희 연출) 개봉을 추석 시즌으로 연기했다.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되는 기간이기도 한 이 무렵이 극장가 1년 장사의 흥망을 결정짓기 때문에 관계자들의 시름은 깊을 것이다. 200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들은 통상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아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데, 언택트 시대에 대규모의 집객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개봉일을 확정하고 난 다음 확진자가 급증할 경우에는 대규모 손실 우려도 있다.


clip20200812151254
clip20200812151324

'반도' 연상호 감독

'부산행' 이후 아포칼립스 세계관 확장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 연출
개봉후 한달여간 관객 372만명 동원


영화 '침입자' '결백' '#살아있다'가 연이어 개봉하며 언택트 시대 집객의 가능성을 보여줘 그래도 몇몇 블록버스터들이 어렵게 개봉을 결정짓고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반도'(7월15일 개봉)는 데뷔작으로는 이례적으로 1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K-좀비를 대표하는 '부산행'을 만든 연상호 감독이 '염력'의 부진을 딛고 선보이는 신작으로,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부산행'에서 이어지는 연 감독의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확장한 작품이다. 영화는 부산행 이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리는데 부산행이 닫힌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반도'는 도심이나 항구처럼 드넓게 열린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렸다.


특히 폐허로 변한 도심에서 펼쳐지는 총격신과 대규모 카체이싱 장면은 그간 한국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개봉 첫 주말 18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반도'는 11일까지 372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clip20200812151503
clip20200812151533


'강철비2:정상회담' 양우석 감독

남북문제 포기하지 않는 한국 대통령
北·美 지도자 배우 4명 일급연기 압권
잠수함 액션 쾌감, 관객 160만명 동원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2: 정상회담'(7월29일 개봉)은 전작인 '강철비'와 느슨하게 설정을 공유하면서 남북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난감함과 무력감,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한민국 대통령 역의 정우성, 단순한 악역이 아닌 신념을 가진 애국자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진가를 입증한 곽도원, 북 지도자의 전용 헤어스타일인 올백 머리와 북한말과 영어까지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준 유연석,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나'를 입에 달고 있으면서 배고프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자기중심적인 미국 대통령 역의 앵거스 맥페이든, 이상 네 배우가 보여주는 일급의 연기로 캐릭터 드라마의 재미를 보여주는 한편 한반도 주변의 역사·정치·군사적 상황을 보여주는 외교전과 함께 독도 앞바다 속에서 한국과 일본, 미국 잠수함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긴장감을 가르며 나아가는 '백두호'의 모습은 여태껏 보지 못한 잠수함 액션의 쾌감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강철비2: 정삼회담'은 11일까지 16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clip20200812151611
clip20200812151639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원찬 감독

신세계 황정민·이정재 7년만에 재회
암살자와 추격자의 처절한 사투 담아
스타일리시 액션, 관객 241만명 동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8월5일 개봉)는 홍원찬 감독이 현실밀착 스릴러 '오피스'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468만명을 동원했던 '신세계'의 콤비였던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가 7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다.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암살자 '인남'과 그를 쫓는 추격자 '레이'의 처절한 추격과 사투를 그린 하드보일드 액션물로, 쫓고 쫓기는 극한 상황 속에서 두 주인공이 몸과 몸을 부딪치는 액션이 무척 스타일리시하다. 연출을 맡은 홍 감독은 '추격자' '황해' '내가 살인범이다' 같은 추격 장르의 각색을 도맡으며 그 장르의 노하우를 몸에 제대로 익혔다. 전작 '오피스'는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되기도 했다. '기생충'과 '곡성'을 촬영한 홍경표 감독이 촬영을 맡아 로케이션이 다양한 영화에 걸맞은 다채로운 장면과 공간에 따라 액션 스타일을 달리한 부분은 일급이다. 영화는 지난 11일까지 241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렀다.

지난 7일 나온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CGV가 2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고 한다. 올해 2분기 영업손실이 1천30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91.37% 감소한 416억원으로 집계됐으며, 당기순손실은 1천749억원으로 적자 폭이 증가했다. 일부 극장만 문을 닫거나 시간을 축소해 운영을 이어왔지만, 대부분의 신작들이 개봉을 연기하면서 이런 실적을 냈다. 임차료와 인건비 같은 고정비 영향도 컸을 것이다. 6월부터 신작들이 조금씩 개봉을 하며 실적 개선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에 대해 최병환 CJ CGV 대표는 "올해 2분기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최악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비용을 절감하고 극장 사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며 "언택트 서비스·모바일 트랜스포메이션·구독모델 등 새롭게 연구하고 있는 신규 사업모델에 대한 도입을 앞당기고 미래 지향적인 극장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언택트 시대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의 멀티플렉스들이 방역과 소독에 이어 관객들의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을 공식 도입했다곤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OTT로 몰리는 관객들의 불안도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31번 확진자와 신천지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대구 역시 11일 현재까지 39일째 지역 감염자가 나오고 있지 않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지구상에 코로나19가 종식이 되어야만 한숨 놓을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때까지 한국영화의 근심도 깊어간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