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개악보단 無爲가 낫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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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3   |  발행일 2020-08-13 제26면   |  수정 2020-08-13
지난해 강사법 해고자 양산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우려
흉물스러운 조형물도 개악
무위 관통하는 사조는 자율
능력없으면 그냥 내버려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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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1 지난달 인천국제공항공사 새 로고(CI) 시안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보는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치킨집 광고도 아니고 뭐 저따위야." 불사조를 상징했다는데 살찐 닭 또는 오리 몰골이었다. 혹시 복고 디자인? 사물 형상을 그대로 디자인하는 로고는 1970년대 아류다. 지금 사용하는 로고는 매끈하고 세련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걸 세금을 퍼부어 개악을 하겠다고? 어이가 없었다. 며칠 후 브랜드 디자인 전문가 손혜원 전 의원이 "현재의 로고가 백배는 낫다"며 인국공을 저격했다. '참이슬' '처음처럼' '엔젤리너스 커피'가 손 전 의원의 네이밍 작품이다. 인천공항공사는 비판이 잇따르자 로고 변경을 중단했다.

#2 지난 7월부터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도통 들어맞지 않는다. 일기 체크가 일상이 된 시대에 엉터리 예보는 짜증을 돋운다. 장기예보, 주간예보, 초단기예보 다 빗나갈 때가 많다. 올여름은 역대급 폭염이라더니 긴 장마에 휩싸였다. 일본기상청의 한국 예보보다 적중률이 낮다니 한심하다. 해외기상청의 일기예보를 챙기는 국민이 늘면서 '기상 망명족'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인터넷에도 비난이 넘친다. '날씨중계청' '기상오보청'…. 빵빵한 슈퍼컴퓨터에 기상관측 전용 위성까지 갖추고도 엉터리 예보라니. 지난 6월 도입한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에 의구심이 쏠린다. 영국형 모델을 쓸 땐 낙제점은 아니었다. 780억 원이란 거금을 들인 한국형 모델 도입 결과가 이 모양이라면 개악이 분명하다.

윈스턴 처칠은 "올바른 방향으로라면 바꾸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개악이라면 다르다. 기실 개악만큼 나쁜 게 없다. 돈과 시간 낭비에다 부작용과 정책 혼선까지. 개악으로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지난해 시행한 강사법이 그랬다. 많은 강사들이 보따리를 쌌고, 강좌 수가 줄어들면서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이 제약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 개혁도 개악이 우려된다. 해외 정보망이 없는 경찰에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이관하는 것도 개악에 가깝다. 지방자치제 이후 곳곳에 흉물스러운 조형물이 세워졌다. 이 역시 세금만 빨아들이는 개악이다.

개악보단 무위(無爲)가 낫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경구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이 바로 무위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으니 함부로 이리저리 뒤집지 말라는 의미다. 장자는 무위이치(無爲而治·아무것도 하지 않고 능히 다스린다)란 황금률을 남겼다. 무위를 관통하는 사조는 자율이다. 경제적으론 시장주의를 지향하고 정치적 저류(底流)는 공화정, 민주주의다.

무위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임대차 3법은 굳이 법제화할 이유가 없었다. 임대차는 부동산 문제의 본류도 아니다. 부동산 투기수요는 차단해야 하지만 전월세는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에 맡기는 게 낫다. 2016년 서울 월세 비중이 전체 임대차 계약의 60.5%였으나 2020년 4월엔 전세 비중 68.5%로 역전됐다. 그동안 갭투자가 횡행했음을 방증한다. 이제 갭투자를 봉쇄했으니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될 게 뻔하다. 괜히 임대차 3법을 만들어 정부가 독박 쓰는 꼴이 됐다.

흔히 실력은 없으면서 부지런한 자를 최악의 상사로 꼽는다. 이런저런 간섭이나 지시로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현안마다 분탕질만 해대는 정부가 딱 그짝이다. 이러면 국민이 괴롭다.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라. Let it be.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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